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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Oct 02. 2023

용돈과 독서의 거리

보미오면


° 용돈과 독서의 거리




 우리의 용돈은 매달 통장으로 들어왔다. 이만 원? 삼만 원? 정도였는데 노느라 바쁜 보미가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가 있는 보육원 아이들은 간혹 돈 달라고도 하던데 보미는 아빠에게 돈 달라는 말을 못 했다. 용돈 달라고 말은 하고 싶었지만 본드로 입을 붙인 것처럼 나오지 않았고, 래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해 본 적이 없다. 차라리 내가 벌어서 쓰는 것이 편했다. 중학생 때는 주말에 일당으로 받는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 보육원에서 책 읽기를 시키기는 했지만, 서 후 독후감을 쓰면 이천 원, 삼천 원씩 주었기 때문이다. 공부방이나 집에도 읽을 책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써서인지 어떻게 써야 읽기 편한지 글 쓰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물론 일기를 쓰며 꾸준히 성장한 것이겠지만 이것은 재능이 되었 학생부터는 그림이 아닌 글쓰기 상을 받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놀 돈이 필요했던 친구들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갈비탕 집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직원으로서 첫걸음을 시작했다. 금 적응하자 손님이 왔을 때 자동으로 '어서 오세요~'를 했고 가실 때는 '안녕히 가세요'가 어색하지 않게 나왔다.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은 급한 불을 끄듯이 기념일이 지나자 차례차례 그만두었었다.  그리고 용돈 나올 구석이 없던 보미만 묵묵히 일을 했다.


 그렇게 보미의 일은 시작이 되었다. 고등학교 내내 쉬는 기간은 있었지만,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다.

 보쌈집은 보육원 친구들과 했는데 젊은 사장님들이어서 재미있었다. 회식도 자주 했고 손님이 없는 날은 일찍 문을 닫고 이른 퇴근을 시켜주기도 했다. 노선이 없던 쪽이었는데, 그런 우리를 가끔 태워주기도 하셨다.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여러 군데 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있다. 다른 고등학교 간 중학교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데, 저렴한 데다 시내 인근이라 손님도 많았다.

 불판은 사용한 물수건으로 잡고 옮겼는데, 고기 던 중에 불판 교체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여느 날과 같이 잡았는데 얇게 잡힌 건지 불을 잡은 것처럼 너무 뜨거웠다. 하지만 깃집 한복판에서 놓치게 되면 기름이 튈 것이고 손님에게도 튈 수 있다는 생각에 놓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전기를 맞은 듯 번쩍 뜨거웠지만 놓칠 수 없었다. 결국 보미의 손가락은 온통 물집이 잡혔고, 며칠을 쉬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상황에서도 실수하지 않겠다는 고집이었다. 보미는 이런저런 짧은 아르바이트들로 안 해본 식당 업종이 없을 정도였다.


 가장 오래 일을  곳은 횟집이다. 많은 스끼다시에 접시 수 엄청난 데다 도자기 그릇 무게도 상당했. 그리고 술 는 손님들이 많아서 터치가 있으려 하면 도망 나오기 바빴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오래 일했던 이유는 사장님 부부의 인심 때문이었다. 

또래의 자녀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아원에 사는 이유 때문인지 잘 챙겨주셨다. 남자 후배의 집이어서 함께 일하기도 했는데 담배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보미의 남자 친구가 오면 슬쩍 빼내 주기도 했다. 어른들이 퇴근한 후에는 가끔 다슬기, 번데기, 치즈 옥수수 등으로 또래 아이들과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회 한 점도 못 먹던 보미는 먹고 어떤 물고기인지 맞추는 정도에 이르렀다. 정리하 남아있는 회를 한 점, 두 점 집어먹다 보니 알게 된 건지 맞추는 스스로도 신기했다. 가끔 회를 가득 넣은 회덮밥을 줬는데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말 없고 무뚝뚝한 사장님은 웃으며 말씀하실 정도였고, 고집불통 유치원생 둘째 아들도 보미를 잘 따랐다. 그뿐만 아니라 후배의 할머니, 고모마저 보미를 예뻐해서 후배 여자 친구가 질투 하기도 했다. 가족여행 갈 때에도 같이 가자고 할 정도니 질투를 하는 것도 이해는 했다.

 일 년 넘게 일해서 보미를 보러 횟집 온다는 손님들도 있. 손님에게 팁도 받았는데 사장님, 사모님께서는 챙겨가라며 보미에게 주셨다. 내가 받았는데도 뺏어가는 사장님들 많아서 말했는데, 다행히 가져가지 않던 좋은 사장님이었다. 물론 시간 초과해도 돈을 더 받지 않던 보미 역시 좋은 아르바이트생이었을 것이다.



보미는 그렇게 돈을 벌어서 용돈을 쓰고는 했다. 그 용돈으로 노는 일에 쓰기도 했지만 책방에서 특히 많이 썼다.


 동네에 만화책, 소설책, 책, DVD, 비디오를 빌리던 큰 책방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 권씩 빌려보다가 중, 고등학생 때는 반전세 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다녔다. 일반 책도 재미있었지만, 그림이 그려진 만화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만화책 기준으로 책방에서 고 가면 이백 원이었고, 빌려 가면 삼백 원이었다. 처음에는 만화책 한 권을 읽는 데에 사십 분씩 걸리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십 분, 십오 분으로 단축되었다.

 한 시간에 만화책 네 권을 보는 건데, 빌려 가는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읽고 왔다. 속독을 만화책, 소설책을 보며 하게 되다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돌려는데, 친구들이 늦어서 항상 첫 번째로 읽었다.


 집에서 공부방도 학원도 가야 하는데, 보미가 보이 않으니 보육사가 책방으로 찾으러 오기도 했다. 그래서 잡혀간 적도 여러 번이지만 창문으로 발견하숨어서 안 걸린 적도 많다.

 어려서부터 너스레를 잘 떨어서 사장님과 정이 쌓인 건지, 보미가 잡혀가며 밉다고 탓을 해서인지 잘 지켜주셨다.

 넓은 책방에 책꽂이를 방패 삼아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건, 아주 스릴 있었다. 책방이라 시끄럽지도 않았, 책을 읽을 수 있던 곳은 중앙 소파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육사가 갈 때까지 잘 숨어있기만 하면 됐는데, 그게 뭐라고 심장은

절구통에 방아 찧듯이 쿵쾅거렸다.


  상대방을 보고 숨어있으 못 찾을 수밖에?

 숨어있다가 보육사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서 계속 읽었다. 물론 집에 가면 분명 혼날 라는 것 알지만 재미를 멈출 수는 없었다.



 한국 만화책, 일본 만화책 따지지 않고 보았고, 한국 순정만화는 그림체만으로도 작가를 구분할 수 있었다. 많이 따라 그리기도 했지만, 보육원에 더 잘 그리는 친구를 보고 이것도 '내가 갈 길은 아니구나!' 깨달았다.


 남성적인 만화책들은 장편이 많아서 많이 읽진 못했지만 원하는 분야, 장르가 있으면 골라가며 읽었다.

 가장 오래 읽은 것은 '테니스 왕자'.

 성인이 되어서야 완결난 만화책인데 그전 내용은 기억도 안 났지만 의리로 읽었다. 무슨 책이든 끝을 봐야 마무리를 한 느낌이어서 완결은 봐야 했다.

 아직도 완결 못 찍은 것은 '유리가면'.

 그림체는 취향이 아니었지만, 만화책이 굵어서 오래 읽을 수 있었기에 시작했는데 작가님이 별세하시면을 못 봤다.




 만화책뿐만 아니라 '인터넷 소설'이 유행이던 시절.

 수업 시간에 교과서 밑에는 항상 소설책이 숨겨져 있었다. 살짝살짝씩 보다가 스토리에 취해 집중하다 보면 어김없이 보미의 이름을 호명하셨다. 결국 뺏겨서 책값 여러 번 물어주었다.


책을 읽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것.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완결에 마침표를 찍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었다.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수업 시간, 시험 기간이든 참을 수가 없었다.


 시험기간에 새로 사 둔 해리포터 책을 꺼냈다가 밤새도록 책만 두 권을 읽은 적있다. 읽기 시작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멈추지 못한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때는 '아무나 책을 내도 작가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터넷 소설들도 있었다. 얼마나 가독성이 떨어지는지 시작하면 웬만큼 끝을 보는 보미가 포기한 책들도 있었다. 소설책 빌리는 칠백 원이 아까워서 좋아하는 작가님 책만 골라서 읽었다.

보미도 써보기는 해 보았지만 프롤로그를 넘겨 본 적이 거의 없다. 역시 창작 글쓰기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 짓기만 일주일 씩 걸리던 일을 생각하면 웃기지만, 어떤 이름이 특이하고 예쁜 이름일까? 고민하고 고민했다. 멀쩡한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아무도 없것이 함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책에서 영어사전으로 파일을 넣어 보았고, 더 지나서는 MP3에 넣어서 보기도 했다. 여러 번 뺏기고 빼앗겨도 끝도 없이 읽었다. 그렇게 공부했다면 서울대는 쉽게 갔을 거라고 친구들이 이야기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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