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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Oct 01. 2023

예쁘고 싶은 중학생

보미오면


° 예쁘고 싶은 중학생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는 추가금을 내고 미용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해 본 건데 롤 마는 법을 배우고 난 뒤 내 길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생각 이상으로 손가락을 많이 써야 했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활동을 하던 어느 날, 학원 원장님이 신부화장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다. 수락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부 화장이지만 모델이 되는 것도 좋았, 설레었기 때문이다. 매일 학원에 가서 연을 당해야 했지만 꾸밈을 받으니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도 좋았다. 물론 생각처럼 예쁘기보다는 두꺼운 화장에 달걀귀신처럼 하얗기만 했지만 말이다.




 대회 당일, 새벽같이 출발해서 서울까지 가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멀미가 있어서 푹- 자고 일어나니 서울에 도착했다.

보미는 보육원 행사들이 아니면 서울에 갈 일은 없던 터라, 서울이 그저 낯설었다. 높은 건물들이 어지럽다는 이야기를 실감하기도 했고, 높은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이 어색했다. 대회가 열리는 서울의 코스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보미가 사는 곳은 때구정물의 느낌이 있다면 서울은 정수기의 하얀 생수 같았다.



 북적북적하고 정신없는 사람들 속에 대회는 시작되었고 보미는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 끝이 났고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런웨이 걸을 준비를 했다.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인 데다 넓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이 너무 떨렸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차례가 되어 나갔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은 숨긴 채, 얕은 미소를 띠고 걸었다. 분명 음악도 나오고 시끄러웠는데 보미는 마음속으로 같은 말만 되뇌며 긴 런웨이를 걸었다.

'웃자 보미야 자빠지지 말고 웃자'

넓은 쇼장, 많은 인파 속에 우뚝 솟아있는 런웨이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멋진 모델이 되어주겠노라 생각하며 런웨이를 내려왔다. 정말 심장이  밖에서 쿵쾅쿵쾅 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끝까지 반듯하게 걷고 내려왔다. 다행히 보미를 꾸며 준 언니는 은상을 받았다.  TV에 출연 것도 크게 대단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시골 소녀의 도시 여행은 생각보다 멋진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안경이 갖고 싶은데, 그냥은 사주지 않아서 일부러 시력을 나쁘게 만들었다. 앞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가까이에서 책을 읽으며 기어코 시력이 나빠졌고, 드디어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안경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멋 부리기 시작하면서 안경을 벗었고,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명 렌즈를 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잃어버려서 서클렌즈를 샀다. 바닥에 흘려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 미용렌즈였던 서클렌즈는 보미의 눈을 왕방울만 하게 만들었고 예뻐 보이게 했다.



화이트데이 때엔 신발 안에 사탕이 한 움큼씩 들어있었. 항상 남자 친구가 있었음에도 끊임없는 남자들의 구애에 재미도 있었다. 어깨가 으쓱했달까?


남자 친구가 있을 에는 항상 남자 친구 우선이었고, 절대 바람은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일기를 보니 추파를 던져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애인이 없던 기간은 한 달을 넘기지 않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연애 했다. 사실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인기를 누리고 싶었유지하고 싶어서 추파들을 던져 줬는지도 모르겠다.


2000년도 초반, 중학교 때는 '세이클럽'이라는 인터넷 메신저가 유행이었다. 인터넷으로 타지 사람 소통하기도 했고, 사진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참 '하두리'라는 캠 사진이 핫했는데, PC방에 어느 자리의 캠이 예쁘게 나오는지 알아서 자리 잡기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몇십 장의 사진 중에 예쁘게 나오는 사진을 고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고르고 골라 '세이클럽'에 올리면 선배, 후배, 연합카페에서 예쁘다는 입바른 댓글이 달린다. 그 입바른 소리에도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지고는 했다.



 시내에서 가장 큰 PC방을 보미의 둘째 고모 내외가 운영하고 있어서 공짜로 할 수 있었다. PC방으로 쓰는 돈도 엄청났을 텐데 고모네라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보미가 사고뭉치라는 것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흡연자가 없는 가족이라 담배 냄새도 났을 텐데 흡연이 가능했던 PC방이라 가려졌는지 그 어떤 한마디 없었다. 그냥 어디에서도 안겨있지 못한 보미가 안쓰러워 예쁘다~ 예쁘다~만 하던 고모였다. 항상 속상한 일 있으면 고모한테 말하라며 다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속 이야기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보미를 예쁘게만 생각하는 고모에게 나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그냥 웃고 밥 한 끼 먹고 가는 재미난 조카이고 싶었다.



우리 세모 여자 중학교는 머리 길이 10cm라는 규정이 있었다. 알지만 긴 머리가 예뻐 보이는 걸 어떡하냐고요. 무용하는 후배 제외하고 전교에서 보미가 제일 길었다. 선생님이 계실 땐 묶고 선생님이 안 보이는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엔 풀어헤치는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빨간마후라 친구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한 교실에 모여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수다를 떨면서 뒷걸음으로 가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보미의 뒤를 막고 있는 누군가에게 부딪혔다.


……띠로리…… 선도반 선생님……


"이보미? 머리가 와 그케 기노?"


 보미는 그대로 귀를 잡힌 채 교무실로 끌려갔다. 그리고 정확히 자로 10cn를 잰 후, 한쪽만 · 잘라버렸다.



 잘못한 알고 있었기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고, 그저 한쪽만 짧게 잘린 모양새가 웃겼다. 먼저 식당으로 간 친구들을 찾아가 실성한 듯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야~ 이거 봐래이~ 도덕이 요래 짤랐대이!!! 나 정신병자 같지 않나키키키"


 식당에서 밥 먹던 친구들은 보미의 모양새에 너 나 할 것 없이 폭소를 터뜨렸다.






 학교가 끝나고 시내를 나가면 남, 여 학교 구분 없이 모였다. 남자들도 있는터라 한껏 치장을 해줬는데, 풀 메이크업을 하진 않았지만 고데기로 머리도 볶아주고 훼어니스 로션으로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입술은 빨간 니베아로 발라 주고 눈썹을 그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보미는 예쁜 눈썹을 가지고 있어서 패스했지만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치장이었다.


 한껏 꾸미고 창문을 통해 탈출하던 어느 날, 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하교 후였지만 화장부터 머리를 볶은 거며, 교복에 사복을 더한 복장들까지 걸릴 것 투성이었다.


 사자머리를 한 무서운 선생님이었는데 분필 지우개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우릴 통해 분필 지우개를 털려는 수작인가?' 싶을 정도로 탈탈 털어내셨다.



 여자 선생님에게 맞는 건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중학교 이학년 남자 담임 선생님은 커다란 손으로 얼굴이 벌게지도록 때렸고, 입술에 피가 터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너무 맞아서 단체로 교장실로 찾아가 이르기도 했지만 따로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학교를 나와 길고 긴 평화육교를 지나면 시내로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철도 길을 지나는 육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했는데, 올라서면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래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육교가 출렁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서워서 주저앉는 친구들도 여럿 있을 정도로 흔들거렸다.

우린 '육교는 다 길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태어나서 그보다 긴 육교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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