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자유와 책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2]
지난 주일 설교의 신명기 말씀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들은 박영선 목사님의 출애굽기 전체를 아울러 말씀해주신 것도 함께 생각이 납니다.
신명기 6장 20-25
20.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1.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22.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
23.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25.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아버지 하나님은 전적인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신6장 21-23)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 이후에 자유를 허락하시며 자유에 따른 명령을 지키라 하시고, 거기엔 반드시 책임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신6장 24-25)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후렴구처럼 어려움을 만날때마다 자유가 없는, 그래서 책임이 없는 애굽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어리석은 원망을 합니다. 자유도 책임도 싫고 별고민 없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나오는 애굽으로 말입니다.
구원 이후에 아버지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광야에서 매일의 삶을 살면서 훈련되고, 자라나고, 아버지의 자녀답게 위대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신하시고 돌보셨습니다. 엄청나게도 사랑의 동등한 대상으로 우리를 바라보시고 사랑이 무엇인지 대화가 가능함에 이르기까지 오래참음으로 키우고 계십니다.
구원받은 자유인으로 사는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엄청난 대의명분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관계의 부딪힘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훈련의 장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실제 필드입니다. 거기서의 그 괴로움이 매일의 트레이닝 과제입니다.
트레이닝 답게 남편, 자녀, 부모와의 관계, 회사동료, 상사와의 관계에서 “매일 비슷한 문제”가 출제됩니다.
매일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트레이닝을 통한 근육이 생기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포용과 이해의 그릇이 커지고, 실력이 쌓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6장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아버지는 그 실전에 필요한 아버지의 교훈과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하십니다. 의미와 목표없이 무작정 가지말고, 손목과 미간과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하십니다.
기계적이고 강박적인 상태에 있으란 말씀이 아닐것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신호등을 바라보며 걸을 때 불안에 떠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신호등을 건너 걸어가고자 하는 곳,
거기를 향해 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변수들, 실전 문제들과 겨루고,
그러면서 배워가고 훈련되어지는 것을 잊고,
신호등의 불 빛 자체가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아 불안해 하는 것은…
아버지가 창조하시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나를 지켜보시는 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오해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