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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쿠다스 Oct 04. 2024

딸이 아이돌을 꿈꾸는 이유

아이와 정말 필요한 대화는 'what'이 아닌 'why'.

 흔히 부모들은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 대학교는 어딜 가려나, 어떻게 해야 잘 보내려나, 뭘 먹고 살아야 잘 살려나’ 고민합니다. 엄마들과 단골 대화 주제 역시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나, 뭘 시켜줘야 하나'와 같은 학습 관련 교육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대화에서 입을 열기가 쉽진 않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나'로서 주체적으로 살길 원하는 만큼 아이 역시 본인에게 주어진 인생의 스토리를 스스로 써내려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엇(what)을 할지는 아이가 선택하는 것이고, what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가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를 아이가 크는 동안 꾸준히 가이드해주며,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계속 질문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저 역시도 아직 11살, 7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저도 해본 적 없는 일이고, 너무 추상적이라 뜬구름 잡는 건 아닐까 저 역시도 생각 정리가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저도 제도권의 학습 교육을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최소한의 주어진 일을 해내고 끈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학습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정 자체를 응원해주고자 노력할 뿐이지요.



 


 최근 아이돌이 꿈인 큰 딸과 오디션 전문반을 등록하기 전에 아이돌을 꿈꾼다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아이돌이 하고 싶은 건지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아이가 what에 얽매이기 보단 'why'를 알고 자신의 가치를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what들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색하며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나(엄마): 엄마는 ‘뭘 하고 살지, 뭘 하고 싶은지’는 너가 정하면 된다고 생각해. 대신 네가 하고 싶은 게 ‘왜’ 하고 싶은지, 그게 네 인생의 방향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같이 찾아가는 게 엄마의 역할 같아. 엄마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첫째: 음… 나도 내가 정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나(엄마): ‘왜’를 알면 스스로 노력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끈기도 생기고 몰입하게 된대. 예를 들어, 엄마가 너에게 “영어 숙제했니? 책 읽었니?”라고 하면서 챙겨야 하지만, 춤은 “춤은 췄니?”라고 엄마가 챙기지 않아도 밥 먹다가도 추고, 하지 말래도 추고, 쉬지 않고 하잖아?

첫째: ㅋㅋ 너무 웃겨. 맞아.

 나(엄마): 지금은 춤이 그저 좋아서 그런 걸수도 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매진할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더라구. 사실 엄마는 지금 이 나이까지도 ‘왜 사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어. 그래서 너도 금방 찾기 어려울 수도 있고, 어른이 될 때까지 고민하게 될 수도 있어. 그래도 지금부터 너가 ‘왜’ 이게 좋은지, ‘왜’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지내다보면 엄마보다 답에 더 금방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얘기해보고 싶어.

 첫째: 응, 해보자!

 나(엄마): 우리는 그냥 엄마아빠가 낳아줘서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사는 게 의미가 없잖아. 어떻게 사는 게 좋은걸지, 어떤 의미를 갖고 사는 게 맞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네가 방황하지 않고 더 보람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첫째: 아~ 그냥 태어났다고 막 사는 게 아니고 더 뿌듯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걸 말하는 거지?

 나(엄마): 응, 그런 맥락에서 너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지 같이 얘기해보자.

 첫째: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모여있으니까 좋아. 노래도 하고, 춤도 하고, 표정 연기도 다 할 수 있잖아.

 나(엄마): 뮤지컬 배우도 노래, 춤, 연기 할 수도 있는데 왜 아이돌인거야?

 첫째: 뮤지컬배우는 대본도 많이 외워야 하고 분장도 엄청 이상하게 해야 하잖아. 전천당 뮤지컬 보니까 배우들 막 얼굴 하얗게 칠하고 그랬어. 그리고 뮤지컬은 한 번 하면 엄청 긴데 노래, 춤, 대사 다 한 번에 외워야 하고 귀찮을 것 같아.

 나(엄마): 아이돌도 뮤직비디오나 CF 찍거나 콘서트에서 분장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대사를 외워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땐 아이돌하기 싫어질거야?

 첫째: 아니! 그래도.. 뮤지컬 배우만큼 자주 하는 건 아니잖아. 아이돌인데 가끔 해야 한다고 하면 하지~

 나(엄마): 그러면 우리 ‘뮤지컬 배우가 싫은 이유때문에 아이돌이 하고 싶다’ 말고, ‘아이돌이 어떤 이유 때문에 뮤지컬 배우보다 좋다’로 얘기해볼까?

 첫째: 그래! 그렇다면, 음.. 팬이 많아서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고 좋을 것 같아

 나(엄마): 아~ 아이돌이 팬이 많아보여서 좋은 거구나. 왜 팬이 많은 직업이 좋아보인다고 생각해?

 첫째: 음..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나를 봐주고 박수 쳐주니까.. 주목 받는 게 좋아.

 나(엄마): 오, 사람들한테 관심 받는 게 좋은 거네! 관심 받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 좋은 거야?

 첫째: 그동안 내가 노력한 게 다 돌아오는 느낌일 것 같아. 뿌듯한 느낌? 내가 더 빛나는 것 같고 그래서 주목받고 그러면 기분도 좋구.

 나(엄마): 너는 주목도 많이 받고 관심 받는 게 좋은 거였구나! 막 소리질러주고 그러는 것도 좋은 거겠네?

 첫째: 응! 은채도 세븐틴 나오는 드림콘서트 갔다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걸 받아보고 싶어서 무대에 서고 싶어진 거래!

 나(엄마): 그렇구나! 근데.. 아이돌이 되긴 했는데 팬도 별로 없고 인기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해?

 첫째: 음… 내가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땐 다른 걸 찾아봐야지.

 나(엄마): 다른 거?

 첫째: 배우는 막 80대가 되어도 하잖아. 그리고 뮤지컬 배우도 나이 많은 역할로도 오래도록 할 수 있잖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걸 찾는 거지!

 나(엄마): 그럼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건가보네? 근데 마침 아이돌에는 너가 좋아하는 춤도 있고, 노래도 있어서 찰떡인거고!

첫째: 응, 맞아! 사랑 많이 받는 걸 느끼고 싶어. 뿌듯할 것 같아. 관심 받는 것도 좋아!

 나(엄마): 엄마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 너는 너를 사랑해?

 첫째: 당연하지!

 나(엄마): 그럼… 너가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이뤄지지 않아도 지탱할 힘이 있을까?

첫째: 음…

 나(엄마): 바로 답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않아도 너가 스스로를 사랑해줘서 중심을 잡고 살아갔으면 해서 얘기해본 거야.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첫째: 응, 알겠어!


사랑 많이 받는 걸 느끼고 싶어. 뿌듯할 것 같아. 관심 받는 것도 좋아!


 


이 대화 한 번으로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마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아니 평생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했다고 생각한 방향이 살아가면서 또 바뀔 수도 있고요. 저 역시 여전히 제 인생의 방향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는 살면서 방향이 희미해질 때 스스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눠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주체적인 아이가 되게끔 돕는 나침반이 저의 또 하나의 역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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