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_남들이 한다고 따라했다간 망한다.
“분명 오늘 도착한다고 했는데... 왜 명단에 이름이 없지?”
각 층에는 택배 명단 게시판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며칠 전에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오늘 집에서 오는 택배가 도착해야 했다.
기숙학원 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택배다.
주로 많이 주문하는 것은 교재인데 이 교재가 택배가 오는 것조차도 굉장히 즐겁기 짝이 없다.
“드디어 샴푸 왔다!! 이제 빌리는 것도 끝이네.”
“카페인 음료수!! 이거 없으면 공부가 안 되는데 딱 타이밍 맞춰 왔어.”
학원에는 매점이 있지만 가격이 편의점보다 비싸 꼭 현장에서 사야만 하는 물건들을 빼고 택배를 이용하는 편이었다.
택배는 핸드폰 사용 시간에 주문하는데, 이 시간을 놓치면 담임 선생님이 해주는 편이었다.
물론 모든 담임 선생님들이 해주는 것은 아니고,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학원에서 대용량의 음식물과 전자기기가 아니면 주문을 해주어서 편하게 주문이 가능했다.
택배와 함께 먹는 것이야 말로 기숙학원에서 즐길 수 있는 삶의 낙인데, 먹을 것을 주문하면 보통 택배로 작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용량으로 주문하게 되다보니 학원에서 금지해놓았다.
몇몇 학원에서는 이를 허용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의실 뒤와 복도에 택배 박스들이 너무 많아 사람이 지나다니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이러다가 과일이 상하면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에 택배 명단 앞에서 중얼거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식당 급식과 간식으로 종종 과일이 나오지만, 마음껏 먹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어 부모님에게 과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각 반마다 학원에서 설치한 냉장고가 있어 약과 음료수를 보관 가능한데, 종종 애들이 과일을 넣어두기도 해서 보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여겼다.
혹시 누락이 있을까 싶어서 학원 행정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오늘 택배 리스트에는 내 택배가 없었다.
“선생님. 혹시 택배 확인 하려고 컴퓨터 좀 확인해도 될까요?”
“어. 그렇게 하렴.”
부모님이 보내주는 편지를 통해 운송장 번호를 받아 놓은 게 있어 컴퓨터를 통해 확인이 가능했다.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운송장 조회를 해 보니 도착 완료였다.
“이거 택배 기사님이 미리 완료 버튼을 누른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가요?”
옆에 있던 담임 선생님이 내 상황을 확인하고는 말을 꺼냈다.
“하루에 오는 학원 택배만 해도 평균적으로 150개는 넘어서 2번에 나눠서 오는 편이야. 그런데 물량이 많다보니 도착 전에 완료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가끔 있더라고.“
“그럼 제 택배는 언제 오나요?”
“보통 다음 날 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자. 내일도 안 오면 그 때 택배 기사님에게 연락해도 늦지 않아.”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마무리하고 담임실을 나왔는데, 택배가 분실된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렇지만 담임 선생님 말대로 다음 날 택배가 도착했고, 집에서 과일과 함께 얼린 물을 보내주어서 과일이 상하지 않고 신선하게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애들에게도 물어보니 이런 케이스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드는 고민이 있다.
“심야자습을 이제부터라도 해야 할까?”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다보니 공부할 시간을 늘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서는 3월부터 심야자습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과가 끝난 후 1시간을 더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기존 자습 시간에 붙혀 이어서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태블릿으로 그 날의 심야자습을 신청한다. 그리고 23시 30분의 퇴실 시간이 되면 기숙사에 들어가서 씻고 나온 뒤, 12시 10분까지 단체복을 입고 자습실에서 1시간 동안 하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12시 10분에 기숙사 인원 체크를 하는데, 심야 자습을 신청한 학생들을 빼고 진행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는 안 하는 것 같고.”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심야자습을 하는 애들은 5, 6명 정도이다.
다른 반도 거의 비슷한 편인데 심야자습을 하는 학생들은 추천해주곤 했다.
보통 자습실에는 빈 자리 없이 가득 차 있어, 가끔은 사람들에게 숨이 막혀 답답한 느낌이 들곤 하다. 그런데 심야자습을 하는 시간 대의 자습실은 굉장히 널널하여 공부하는 데 오히려 더 쾌적해서 더 집중이 된다고 한다.
반대로 심야자습을 하지 않는 애들은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겠다는 이유에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학원 생활이 쉽지 않고, 잠 자는 시간이 되서 잠을 청한다 해도 바로 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야자습을 하는 것 보다는 잠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역시 이럴 땐!!”
고민으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땐 담임 선생님이 최고였다.
“하지 마!”
“네?”
“절대로 심야자습 하지 마!”
담임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조건 선을 그었다.
“만약에 할 거면 9월 평가원 모의고사 끝나고 해라.”
그리고 말과 함께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대부분 애들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잠이 부족해서 헤롱헤롱 거려서 카페인 음료나 커피로 버티는 거 알아. 그러다가 1, 2교시에 수업 있으면 졸음 버티면서 간신히 듣고 있잖아.”
“그렇긴... 하죠.”
“이 상황에서 심야자습 하면 오전은 그냥 날라가. 그럼 차라리 심야자습 하지 말고 오전에 수업 잘 듣는 게 이득이지.”
“그럼 9평 이후에 하라는 건 무슨 말인가요?”
“9평 지나면 그 때부터는 공부가 멘탈 싸움이라 그 때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전까진 실감이 안 나서 어려울 거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매년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보고 난 후에는 원하는 점수를 얻기 위해 절박하게 심야 자습까지 해서 공부하는 애들이 있었다. 심지어 잠을 자야 하는 기숙사에서 몰래 하기까지 하니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심야 자습을 하는 애들은 3월부터 꾸준하게 하는 애들일 거야. 그리고 이 친구들은 잠을 적게 자도 아침에 졸지 않는 괜찮은 애들일 거고. 괜히 호기심 삼아서 한 번 했다가는 며칠 동안은 힘드니까 웬만하면 하지마라.”
다시 한 번 담임 선생님이 못을 박았다.
이후 저녁 자습 시간에 잘 생각해보니 지금 심야 자습을 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컸고,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이후에도 고민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 7월 모의고사를 응시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