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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Mar 29. 2024

이렇게 재수하고 성적이 망하면 어찌지?

56_쓸데 없는 고민 할 시간이 없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노력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한 번 생각을 시작하자 손에 펜이 잡히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는 게 갑자기 힘들어졌다.


‘이렇게 재수하고 성적이 망하면 어찌지?’

‘애들 얼굴은 어떻게 봐?’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동안 이런 생각이 났었지만, 그냥 빨리 지워버리고 공부에 집중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를 괴롭힌다.


솔직히 잘 안 되면 재수 하고도 비싼 돈 주고 기숙학원에 가서 뭐 했느냐고 쓴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고, 그저 그런 대학교를 가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았다.

잘 되면 괜찮지만 안 되면 어떤 말을 들을 지 모르겠고, 괜히 앞 날이 깜깜해졌다.


“불안하더라도 펜을 들어 공부하세요. 걱정은 성적 나온 뒤 해도 늦지 않습니다.”


담임 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이 첫 말을 이와 같이 꺼냈다.


“지금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그저 지금 믿을 건 나 뿐 입니다.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서 나오는 불안함을 읽고 더 믿지 못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공부하는 게 답입니다. 괜히 힘들어서 바람 쐰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자리에 앉아서 펜을 듭니다.

학원 생활 초반을 생각해보세요. 그 때 학생들이 학원 적응이 힘들어서 돌아다닌다고 적응이 되던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 찬물을 머리가 쫙 뿌린 듯 소름끼쳤다.

그냥 그 동안 공부한 자신을 믿어야 할 뿐이었다.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데, 다른 사람이 나를 믿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힘들고 지키더라도 일단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였다.


즉,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미리 걱정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주변에 몇몇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공부하느라고 정신 없겠지만, 여러분들이 수능 보면 그 날 바로 학원을 나가야 해서 조금씩 짐 정리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뒤이어 담임 선생님은 퇴소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모교에서 수능 접수를 한 학생은 예비소집에 참석해야 하고, 학원에서 생활하며 놔둔 짐을 한꺼번에 짐을 가져가야 하기에 주말에 가는 것이 좋다.


주소 이전을 해서 수능을 기숙학원 근처에서 보는 학생들은 수능 전날에 기숙사 침대 위와 자습실 책상 위에 짐 정리해서 올려놓았다. 그럼 부모님이 오전과 오후에 학원 방문해서 학생 짐을 모두 가져간 뒤, 바로 수능 고사장으로 가서 학생을 데리고 바로 가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럼 수능 끝나고 학원에 돌아와서 짐 싸면 안 되요?”

“맞아요. 수능 전에는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안 될 것 없지만 추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정기외출 나가는 것처럼 지방으로 가는 학생들을 위해 학원 버스를 운영합니다. 이 버스들이 학원에 들어와서 나가기 위해 부모님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합니다. 즉, 들어왔다가 길이 막혀 나가려고 해도 못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버스가 그렇게 많이 왔다갔다하나요?”

“네. 고사장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버스가 학원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장거리 운행이기 때문에 새로운 버스들이 옵니다. 아마 그 날 20대 정도가 왔다갔다해서 정신 없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1시간 동안 짐싸는 건 불가능하니 미리미리 하는 게 좋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장 좋은 건 부모님이 내가 싸놓은 짐을 챙긴 후 부모님이 수능 고사장에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경우엔 부모님이 자차로 오실 수 없는 상황이라 학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걸로 확정되었다.


“하나 더 참고하면, 학원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좁습니다. 저녁에 부모님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 차가 긁히는 일이 있으니 반드시 참고합니다. 매년 한 두번씩 일어나는 일입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러고보니 학원으로 들어오는 길이 약간 꼬불거리며 좁은 편이었다. 그리고 정기외출 때 운전 실력이 좋지 않은 부모님은 학원에 와서 학생을 데려가기가 겁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학원에 잔류하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이 학생들은 학원에서 실시하는 수능 이후 논술 준비반으로 아직 확정된 것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적에 따라 할 지, 말 지 고를 것이기에 최소 인원이 충족되어야 논술 반이 개설되니 논술 준비하는 학생들은 밖의 학원도 고려해야 봅니다.”


마지막으로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했다.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인원에 따라 폐강하게 되면 급히 논술 수업을 잡아야 해서 굉장히 머리 아플 수 있었다.


“이제 택배에 대해서 이야기할게요. 짐이 많은 학생은 미리 택배로 보내도 되는데, 중요한 물건은 본인이 직접 챙겨갑니다. 수능 끝난 다음 날 택배 회사에서 택배를 가지러 오는데, 학원에서 가는 택배가 200개 정도 됩니다. 당연히 하루에 다 가져갈 수 없고, 주말이 껴 있어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를 봐야 합니다.”

“그럼 미리 보내는 것도 오래걸리나요?”

“11월 첫 주 안에 학원에서 보내는 택배는 빨리 갈 겁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다보니 처음 기숙학원에 들어왔을 때 보다 짐이 많이 늘었다. 게다가 공부하기 위해 구매한 책들까지 한 트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날씨에 맞춰 정기외출 때마다 짐을 계속 가져가서 다른 애들보다는 짐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었다.


“학원에선 따로 짐 정리를 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일요일에 늦잠을 조금만 줄이고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진짜요?”

“따로 짐 정리 시간을 주면 안 되요?”

“네. 그렇게 했다간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녀서 계속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불편해 할 겁니다. 이건 절대 바뀌지 않을테니 시간 있을 때 틈틈이 정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수능 날에 쓸 보온 도시락을 제출할게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수능 날의 식사였다.

낯선 수능장에서 시험을 보는데,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숙학원에 다니던 학생이 아니러라도 이 날은 도시락을 싸서 와야 했다.

기숙학원에는 수능 날 학생들이 먹을 도시락과 간식을 싸주기로 했는데, 도시락 통은 개인이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작년에 다들 썼던 도시락 통이 있어 준비하는 데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정말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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