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_마지막에는 정신력과 멘탈로 마무리 공부를 한다.
“정리를 해도 끝이 없네. 이렇게 짐이 많았나?”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이 것부터 치워주시겠어요?”
“네네.”
일요일 오전.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자유시간으로 평소에는 침대에 뒹굴거리며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늦잠을 줄이고 찬혁이와 짐 싸기에 나섰다.
그런데 예상외로 짐이 계속 나와 정리하는데 시간이 계속 소요되었다.
“전 끝이요. 나머지는 수능 전날에 싸면 되고, 이건 집에 미리 보내면 되겠네요.”
“부러워요. 전 보낼 곳이 두 곳이다 보니 분류하는데 오래 걸리네요.”
찬혁이는 짐 정리를 마치니 4개의 박스가 나왔고, 나머지는 하나의 캐리어와 들고 갈 1개의 박스를 따로 빼놓았다.
나와 똑같이 찬혁이도 부모님이 오실 수 없는 상황이라 웬만한 건 미리 택배로 보내고 학원 버스를 집에 갈 때는 최대한 간단하게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방은 다 예약해 뒀어요?”
“네. 미리 주소도 받아놓아서 짐도 보낼 수 있어요.”
내가 수능 끝나고 갈 곳은 서울이었다.
9월 수시 원서 접수를 할 때 B대 논술을 제외한 5논술을 썼고, 이를 위한 논술 학원을 대치동에 예약해 놓았다. 더불어 그곳에서 지낼 숙소도 잡아두었는데 학사를 선택했다.
다른 애들보다 일찍 예약을 시작했기에 호텔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일부러 학사를 골랐다.
호텔에 있으면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을 불러 놀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학사는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야 하며, 들어가면 핸드폰도 반납해야 했다.
그리고 학사와 논술 학원까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고, 학사 안에 자습실이 있어 따로 독서실을 잡지 않아도 되었다. 기숙학원을 벗어나 또 다른 기숙사로 들어가는 느낌이지만, 이게 아니면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우선이었다.
‘만약 여길 안 왔으면 학사를 고르지 않았겠지.’
직접 기숙학원을 겪어보니 관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다 됐다!”
“그럼 학원에서 카트 빌려서 옮겨요.”
학원 교무실에 대형 카트들이 몇 개 있었고, 사전에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선생님들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가능했다.
이렇게 카트를 이용해 박스를 옮겼고,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마쳤다.
전체적인 학원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는데,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능을 집에서 보기로 한 학생들이 집에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몇몇 학생들이 배웅하기 위해 같이 나와 있다.
학원에선 집에 가는 학생을 배웅하러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괜히 짐 들어준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야기를 할 것이고, 공부하기 싫은 애들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길면 11개월, 짧으면 3개월 이상 얼굴을 보며 같이 지낸 사이로 기숙학원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 마치 전쟁터의 전우를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게다가 옮길 짐이 한가득인데 힘들게 혼자 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애들 가는 거 보면 나도 가고 싶을 것 같아.’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 있다.
부모님 차를 타고 애들을 보면, 나도 저 차에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과도 같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만큼 끝까지 책임지고 공부하는 것이 맞기에 참을 뿐이었다.
집에 가는 한 순간은 좋지만, 그곳에 가서 공부하는 게 과연 쉬울까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는 애들과는 미리 인사했다.
연락 방법은 미리 SNS 메신저를 통해 받아놓아 나중에 수능 끝나고 핸드폰 받기만 하면 바로 연락할 수 있었다.
‘졸립다. 자고 싶어...’
이상하게 문제집과 머리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잠자는 시간은 전과 동일하지만, 점점 일찍 일어나다 보니 하루에 굉장히 길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저녁이 되면 피곤함과 졸음이 쏟아져 공부를 위한 집중이 쉽지 않지만, 에너지 음료수를 마셔 졸음을 날려버리거나 서서 공부해서 강제로 잠을 쫓고 있다.
이제는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공부하고 있어 담임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여러분들은 알 겁니다. 수능 날 아침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그리고 수능을 보고 나왔을 때 느낌이지만 내가 잘 봤는지, 못 봤는지 알 겁니다. 그냥 단순히 끝났다는 생각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내가 1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후회 없이 그날을 맞이하면 더없이 행복했던 재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뇌리에 각인시키며 버티며 공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번 수능에서는 결과를 보고 작년과 달리 환한 웃음을 짓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담임 선생님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앞으로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리 수능 전날에 있을 예비 소집에 대해서 이야기할게요. 원래 여러분들은 수능을 볼 학교에 가는 가서 수험표를 받는 것이 맞지만, 기숙학원 특성상 어려운 일이기에 교육청 장학사가 학원으로 와서 수험표를 배부합니다.
그리고 저희 반 학생들의 예비소집을 제가 주관할 것이고요.”
“그럼 저희가 어느 학교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거죠?”
“네. 학교 배정을 비롯해서 자리까지 그날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 학교들의 위치를 고려해서 여러분들이 수능 날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20분에서 30분 정도 될 겁니다.
더불어 제가 여러분들의 신분증을 보관하고 있는데, 예비소집일에 수험표와 같이 확인하고 수험표와 가지고 있다가 수능 당일에 줄 겁니다.”
담임 선생님이 신분증을 보관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종종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안에 있던 신분증도 잃어버린 것이 주효했다.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10월 정기외출을 갔다 온 후 신분증을 걷었다.
“미리 수험표를 받으면 안 돼요?”
“네. 올해에는 누가 될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수능 전날에 책을 다 버리면서 신분증과 수험표를 같이 버리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 사건을 한 번 겪어보았기에, 앞으로 제가 맡은 반에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갑자기 시작되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주변 학생들의 눈에 커지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