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_주변 합격 소식에 괜히 불안해진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냐?”
“네. 이제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은 내 결정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물었고, 단호하게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래. 알았다. 내가 공지사항은 중복으로 이야기하니 괜찮지만, 학원 설문조사가 있을 땐 내 허락 받은 뒤 담임실에 와서 하는 걸로 하자.”
“네. 혹시 몰라서 태블릿 배터리를 완충 시켜 놓았습니다.”
바로 태블릿 반납이다.
원래 9월말까지 사용하고 반납하려고 했었는데, 인강 볼 것들이 좀 더 남아있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기숙학원에 전자기기를 멀리 하려고 들어왔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순수하게 인강 도움 없이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원에서는 진도를 나갈 때 고등학교 때 공부한 것이 있기 때문에 기초와 쉬운 개념을 넘어가고 수업한다. 그런데 각 과목별로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들이 있어, 수업을 예습하거나 어려운 것이 있다면 인강으로 공부하는 것이 수월했다.
그런데 단점도 있다.
자제력이 부족하다보니 가끔 태블릿으로 딴짓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지난번에 걸려 근신을 선 이후 한 번도 태블릿을 인강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할 때 겁을 먹거나 두려움에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렵지만, 다음부터는 해도 괜찮다는 생각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블릿으로 딴 짓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시작하면 또 계속 할까봐, 여기에 한 번 빠져버리면 못 나올 것 같아 아예 다른 용도로는 건드리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 심리가 눈에 보이면 더 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한 달 동안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기에, 이 참에 태블릿도 끊으려는 것이었다.
“큰 결심 했네. 진수야, 그 마음을 잊지 말고 마무리 잘 하도록 하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담임 선생님의 격려에 힘이 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정기 외출 이후 크게 바뀐 것은 학원 시간표였다.
바로 일주일 단위로 총 3주간, 30분씩 기상 시간이 당겨지는데 이만큼 기숙사로 퇴실 시간도 당겨진다.
학원이 있는 용인에서 수능 응시를 할 경우 그 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새벽 5시다. 이는 수능 고사장에 입실 1시간 전에는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수능 당일에 갑자기 새벽 5시에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더라도 컨디션이 멀쩡한 학생이 없기에, 이렇게 시간 차를 두고 시간표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자습 시간이 조정되었다. 수업은 평소와 동일하게 8시부터 시작하고, 저녁 자습 시간이 줄어듬과 아침 자습 시간이 늘어났다.
“와, 그 시간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게 될까?”
“근데 아침에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수능을 저녁 늦게 보는 게 아니잖아.”
“아침에 정신 차릴려면 미치겠네.”
학생들의 반응은 이해하지만 짜증이 났다.
매번 기상 시간인 6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물론 본인들이 선택해서 기숙학원에 있는 것이지만,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 잠을 일찍 자긴 하지만 일찍 일어나야 하는 현실이 암담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불만을 담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간표 조정으로 담임 선생님들의 근무 시간도 조정되고, 그제야 디데이로 수능이라는 것이 오는 것이 느껴지다가 진짜 수능이 코 앞이라는 것이 보이자 들떠 있던 학원 분위기도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공부하는 것으로 마지막 사설 모의고사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
“후우, 성적이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인가?”
11월 사설 모의고사를 가채점을 해보니, 10월과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원점수가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이번 모의고사는 성적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마음 편하게 볼 줄 알았는데,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욱 긴장해서 봤다.
그래도 이번 모의고사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여전히 국어와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아 여전히 고민이지만, 영어와 사회탐구는 안정적으로 잘 나온다. 더불어 한국사도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2등급이 나왔고, 그 후의 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이 나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담임 선생님이 왜 과목별 밸런스를 강조했는지, 영어와 사회탐구이 성적이 먼저 잘 나와줘야 하는지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나중에 2합 기준의 논술 쓸 때 영어와 사회 탐구만 잘 나와줘야 안정적으로 쓸 수 있고, 여기서 크게 실수 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평소 실력대로 성적을 낼 수 있어 정신적으로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앞으로 방심하지 않는 거야!’
하지만 수능 성적이 어떻게 나올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제1순위로 삼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공부에만 신경쓰며 학원 생활을 하던 중 룸에이트는 찬혁이의 사관학교 발표 소식이 나왔다.
“우와와와!!! 저 합격했어요!”
“축하해요! 이제 학교에서 몇 년 다니면 바로 장교로 임용되겠네요.”
찬혁이는 합격 소식을 듣자 방방 뛰며 엄청 기뻐했다.
지금까지 찬혁이와 함께 지내면서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정말 기뻐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관학교에 합격했으니 수능을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이었다. 이제 진로가 정해졌으니 이대로 그냥 수능을 보지 않고 학원을 나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긴 한데, 수능을 보려고요.”
“네?”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깝기도 하고, 전에 생각한대로 지금 사관학교보다 더 좋은 데 갈 수 있을 지 모르잖아요? 일단 사관학교 쪽에는 간다고 해 놓고 수능 본 다음 결정하려고요.”
찬혁이의 생각은 전과 동일했다.
사관학교의 합격이 기쁘긴 하지만,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려는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기숙학원에서 7명이 수능 보기 전에 사관학교에 합격했는데, 찬혁이를 포함해서 3명이 학원에 남아 공부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찬혁이는 수능을 잘 보지 못하더라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 예전보단 마음 편하게 수능에 응시할 수 있어 괜히 부러움이 커졌다.
“나도 잘 할 수 있을까?”
문득 공부하던 중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