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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Mar 18. 2024

올해는 열심히 공부하고, 내년 설날에 얼굴 보자.

53_별 것 아닌 응원에도 울컥할 때가 있다.


점심 시간이 끝날 무렵,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인원 체크를 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와 있는데 칠판 아래 쪽에 핸드폰 가방이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혹시나 싶은 마음에 기대와 설렘으로 담임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다.


“오전에는 잘 쉬었나요? 지금부터 딱 1시간 동안 핸드폰을 나눠줄테니 부모님에게 연락합니다.“

”저, 정말인가요?“

”정말 핸드폰 써도 되요?“

”네. 부모님들에게는 어제 저녁에 연락해 두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연락할테니 꼭 받아 달라고 했으니, 안부 인사 전하며 통화할게요.“


담임 선생님이 반 학생들이 추석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준비한 작은 이벤트였다.

어제 저녁에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연락한터라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얼굴에 다들 기쁜 기색들이 만연했다.


“지금 다른 반은 자습하고 있으니, 강의실 밖으로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모습들이 눈에 보이면 모두 핸드폰은 수거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학생들은 순식간에 앞으로 나와 핸드폰을 가지고 갔다.

4일 전에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했었는데, 늘 핸드폰을 받을 때마다 늘 새로운 기분이다. 그냥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여보세요?

“엄마. 저 진수예요!”  

-진수야. 잘 지내고 있지?

“네. 괜찮아요. 지금 큰 집 이예요?”  

-그래. 옆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있는데 바꿔줄까?


통화음이 몇 번 울리자 바로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말에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달라고 말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밥은 먹고 공부하니?

“네. 할머니. 매끼 잘 먹으며 지내요.”

-그래. 공부하느라고 고생 많네. 올해는 열심히 공부하고, 내년 설날에 얼굴 보자.

“네. 수능 끝나고 시간 나는대로 한 번 찾아뵐게요.”

-우리 진수. 다 컸네.


설날이나 추석에는 모든 친척들이 다 모이는데, 진수의 연락에 모두 힘내라는 격려를 건넸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데, 괜히 친척들의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담임 선생님은 최대한 말을 자제하고 있지만, 애들 사이에서 수능 압박감이 돌아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만약 3, 4월의 자신이었다면 이를 참지 못하고 바로 부모님에게 통화해서 집에 가거나 다른 학원으로 옮겨가고 싶다고 전화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이 곳이 자신에게는 최선의 장소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마음을 굳게 잡고 자리에 앉아 공부하기 위해 애썼다.


하루하루 정해진 공부 스케줄을 따라 생활하다보니 정말 시간이 미친 듯이 빨리 흘러간다.

아니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앞으로 해야 할 공부 범위가 모의고사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 이걸 수능 전까지 모두 풀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다보면 수능 전까지 끝낼 거라고 믿고 식사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에 집중했다.


이렇게 생활하니 주변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신경쓰지 않고 나 혼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끔 담임 선생님이 굉장히 바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누군가 학원 규칙을 어겨 근신을 서거나 강제 퇴소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일주일 뒤면 10월 정기 외출로 수능을 앞두고 있어 잔류하려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계속 말하지만 집에 가서 푹 쉬고 와서 열심히 공부할게요. 정 공부하려면 집 근처 카페나 독서실에 가서 합니다.

여기 있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할 겁니다.”


시간이 지나 벌써 마지막 정기 외출을 앞두고 있었다.

내 결정은 무조건 집에 가는 것이었다. 지난 잔류 경험으로 학원에 남아있으면 정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서 나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지난달 정기외출에 나가서 담임 선생님 말대로 집 주변의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니 나쁘지 않아 이번에도 이용할 계획이었다.

물론 학원에 있을 때처럼 하루 종일 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5~6시간 하고 남은 시간에는 푹 쉴 생각이었다.


“여러분이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모의고사 일정입니다.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9월 초에 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모의고사를 본 적 없습니다. 현재 모의고사는 여러분들이 정기외출을 갔다온 후 3일 뒤에 바로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잔류한 뒤에 모의고사 보고 11월까지 공부하는 건 멘탈이 깨지고 쉽게 복구되기 어려울 거라 봅니다.”


평가원 모의고사를 보는 달에는 사설 모의고사를 보지 않는다.

평가원 모의고사는 보통 6월과 9월 초에 보기 때문에 계산해보면 약 50일 가량의 텀이 있어 모의고사에 대한 감이 떨어져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모의고사를 풀고 있지만 학원에서 아예 날을 정해 수능 시간표처럼 보는 모의고사는 분위기와 압박감이 완전 달랐다.


개인적인 모의고사는 긴장을 하나도 하지 않고 편하게 풀 수 있지만,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는 그 압박감과 긴장을 이겨내고 봐야하기에 이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온전히 제 실력을 못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세한 시간은 미정이지만, 수능 시간에 여러분의 생활 패턴을 맞추기 위해 11월부터 학원 시간표가 조정됩니다. 그 때, 2월에 여러분이 학원 적응 하기 위해 고생했던만큼 힘들 것이니 괜히 잔류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고 옵니다.”


이 말에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서 고민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도 10월 정기외출은 잔류해서 공부하려고 계획 세우고 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


이들 중 몇몇이 물어보니 담임 선생님은 그 결정을 학생에게 넘겼다.


“정말 잔류해서 공부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하지만 네 결정이니 나중에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네가 하는 거니까!”


괜히 결정을 부모님이나 담임 선생님이 해주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학생이 쥐게 되었다.

그리고 미리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연락해 이 결정은 부모님이 아닌 학생들이 하도록 안내되기도 했다.


이렇게 집에 갈 때가 되자 다시 기숙학원에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여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홀로 다니며 공부에 집중했다.


예시로 정말 화장실에 갈 때 빼놓고, 자습실에서 나오지 않으니 괜히 주변의 애들로부터 이야기를 듣지 못해 남들이 어떻게 지내던 어떤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성장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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