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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는 서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원했던 건 부모님과 함께 자는 거 였다.

by 은궐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초등학생 3학년 때,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여기에는 당시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고, 나도 이젠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만 언급하기엔 많이 복잡하다.


어찌되었든 당시 부모님이 가진 재산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부모님이 결혼하실 때 주셨던 천만원과 어머니가 5년간 장사하며 모은 4천만원. 총 5천만원 정도였다.


이 돈을 가지고 부모님이 향한 곳은 외가댁이었다.

외할아버지는 4층 건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1층의 작은 상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근 고등학교가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 생기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당연히 학교 주변에 아파트들이 많았고, 상가 단지에서는 학원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나와 동생을 보살피며 돈을 벌 수 있는 장사가 무엇 일까 고민하다가 어머니는 문구점을 하기로 결정했다. 주변에 문구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설 초등학교가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아버지께서 공무원이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아버지, 아머니, 나, 동생. 4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어머니가 장사를 하면 이 돈으로 저축이 가능하겠다고 여긴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의식주(衣食宙)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남은 건 주(宙), 집의 문제였다.

가지고 있던 여유돈을 문구점 인테리어를 하고 물건을 채우다보니 집을 구하기엔 돈이 빠듯해, 가게 안 쪽에 단칸방을 만들었다.



기억을 떠올려 그 때의 단칸방을 구현했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상가 1층과 2층 사이에 있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뒷문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회색 철문이었고, 통유리 미닫이문을 통해 가게 상황이 한 눈에 보였다. 그래서 밖에서 안을 보지 못하게 통유리 미닫이의 일부는 시트지를 붙여놓았다.


날씨가 더운 날에는 선풍기를 놓았고, 겨울에는 장판에는 보일러를 틀 수 있게 셋팅해놓았다. 가볍게 씻는 건 주방 싱크대를 이용했지만, 샤워 같은 건 공용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 가족은 밥을 먹고 잠을 잤는데,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부모님 중 한 분이 나가서 손님을 응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0평도 되지 않는 공간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넣으니 사람 3명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어서 어머니, 아버지, 나, 동생이 함께 누워 잘 수 없는 공간이었다.


고민 끝에 부모님은 우리 집 둘째 아들인 동생은 유치원생이라 아직은 부모님 손이 필요하다고 보고 같이 지내기로 했고, 첫째 아들인 나를 4층 외가댁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밥은 가게 단칸방에서 같이 먹지만 4층에서 씻고, 잠을 자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보면 외부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비좁은 방에서 자지 않아도 되니 환경적으로는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 4학년이 되는 나는 좋은 환경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있고 싶었다.


덕분에 아침이 되면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한 뒤, 가게 단칸방으로 와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학교 및 학원을 다녀오면 다시 가게 단칸방에서 저녁을 먹고, 잠 자기 전까지 그 곳에서 숙제하고 지내다가 부모님이 잠 잘 무렵이 되면 4층으로 올라와서 씻고 잠을 청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나한테는 굉장히 서러운 생활 이었지만, 한편으론 부모님에게도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난해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한다. 그 놈의 돈이 무엇인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와 이 때의 이야기를 스치듯 지나가며 한 적이 있었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고, 어쩔 수 없었단다. 밤마다 둘이서 속으로 울었고, 이 현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고, 외가 쪽과 네 아버지가 많이 도와줘서 살 수 있었지."


이 말에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가슴이 아팠다.


어린 나도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절박할 정도로 나 보다 힘들었다.

지금은 사정이 훨씬 나아져서 그 시절 이야기를 살짝이라도 꺼낼 수 있지만, 다시는 경험하기 싫을 정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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