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미치도록 노력했다.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 문구점을 아침 6시 반에 열고, 저녁 11시에 문을 닫았다. 거의 잠자는 시간을 빼고 장사를 한 것이었다.
손님이 없더라도 밤 늦은 시간까지 열고 있었던 이유는 이 집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라도 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손님이 물건을 사러 오지 못할 때는 배달도 했고, 필요한 물건이 있다하면 도매에서 연락해서 물건이 있는지 확인 후 구해오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늦게까지 문이 열려 있고, 없는 물건이 없다는 집으로 소문이 나서 주변 문구점들 보다 장사가 더 잘 될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가게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은 애들이 학교에 갈 때와 끝날 때였다. 아침에는 준비물을 사러 오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꽤 많았다.
지금은 학교에서 모든 준비물을 챙겨주지만, 그 시절엔 준비물은 문구점에서 준비해서 가야 했기에 뒤늦게 전날 저녁이나 아침부터 문구점에 아이의 준비물이 있는지 물어보는 어른들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문구점에 들러 불량식품과 분식을 사먹거나 메달 게임이나 오락을 하러 애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바쁜 아침 시간대에는 아버지가 출근 전에 도와주었고,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하교하는 시간부터는 외할아버지가 가게 일을 도와주셨다.
덕분에 어머니 입장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고 인건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저녁에는 퇴근한 아버지가 가게 일과 청소를 도맡아서 했다. 전에 언급한 대로 아버지는 공무원이어서 출퇴근 시간이 정확했고, 저녁 6시 30분이 되면 가게에 오는 편이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니 정말 주변 문구점들보다 돈을 쓸어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문구점으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2개 있다.
하나는 교장실로의 소환이었다.
갑자기 담임 선생님을 통해 교장 선생님이 나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내가 무언가 커다란 잘못을 지은 것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사회 생활을 잘 하던 직장인이라도 회사 사장님이나 부사장님이 부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되새겨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점심시간에 교장실로 불려가서 이것저것 교장 선생님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기억이 남는 것 2가지였다.
"너희 집이 문구점을 하는게 맞니?"
"가게 연락처 좀 알려주렴."
나는 어린 마음에 의심할 것 없이 대답하며 가게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육복 구입 떄문이었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각 학교별로 체육복과 실내화 가방을 문구점에서 사야했다.
게다가 내가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는 신설이라 초등학교 6학년이 없었고, 1학년부터 5학년까지였다.
즉, 새로 지어진 초등학교여서 체육복 구매를 위한 문구점을 알아보고 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 영향으로 독점으로 학교 체육복을 떼오고 근처 문구점들에게 체육복을 배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추측으로는 이 것도 상당히 많은 돈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두번째는 집이 문구점이어서 좋은 장난감을 먼저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핫한 아이템이 미니카였다. 그리고 빠른 미니카를 가지기 위해선 모터를 바꾸고 충전 건전지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 때, 문구점 앞에는 미니카 트랙이 있었는데 문구점 아들의 특혜로 신상 모터와 충전 건전지를 가질 수 있었고, 튜닝을 위한 미니카 부품들과 가방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비탄 총, 레고 모형 등 원하는 장난감을 필요할 때 가질 수 있어서 떼쓰지 않더라도 덕분에 애들한테 많은 인기와 부러움을 얻었다.
물론 초등학생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리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었다. 만약 그 때 이 물건들을 아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더라도 팔면 이게 다 돈일 텐데 말이다.
어쩌면 또래 애들 사이에서 아들의 기를 살려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런 나를 구박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외할아버지였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그 때에는 애증의 관계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혼이 났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정말 크게 혼이 났다. 그래서 굉장히 외할아버지가 싫었다. 어머니에게도 왜 외할아버지가 나를 미워하는지 하소연 해봤지만 나만 타이를 뿐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후 문득 어느 날 기억이 나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친가에서 나와 이 고생을 하게 된 어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미웠나보다. 그런데 차마 그 화를 어머니에게 풀지 못하고 나를 통해 풀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가 나를 구박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조용히 달랬던 것도 외할아버지가 없으면 가게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그 때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어른의 복잡한 사정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