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_어른 말 들어서 나쁠 것이 없다.
정기외출 당일에는 30분 이른 기상이어서, 룸메이트들은 기상 종이 치자 얼른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룸메이트들과 사이는 여전했다.
진성이와는 편하게 지내는 반면, 찬혁이는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찬혁이와 계속 거리를 두면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관계에 있어 선을 넘지 않고 예의를 철저하게 지키게 되었다. 덕분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편한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에 봐요.”
“외출 끝나고 보자!”
“어. 나는 좀 더 자고 나갈게.”
진성이와 찬혁이는 아직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내게 인사하고 바로 기숙사를 나갔다.
집에 가는 학생들은 핸드폰을 받고 자차 혹은 학원 버스를 타야 하기에 빨리 움직여야 하나, 잔류를 선택한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 씻은 후 식당으로 향하니 7시였다.
평소의 이 시간이라면 아침 식사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해야 하나, 정기외출 당일에는 다들 집에 가기 바빠 굉장히 한산해 잔류하는 학생들이 곳곳에서 편하게 식사하고 있었다.
‘8시에 인원 체크하니까 그전까지 계획표를 짜자.’
덕분에 편하게 식사를 마치고 강의실로 온 나는 담임 선생님 준 정기외출 기간 동안의 시간표를 보며 공부 계획표를 짜기로 했다.
지금 가장 부족한 공부는 수학이고, 시급한 공부는 탐구 과목이었다.
계획표는 복잡하면 따라 하기 어려우니 심플하게 오전에 수학 인강을 보고, 오후엔 수학 자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저녁에는 탐구 1과목의 인강과 기출문제를 풀며 정기외출 기간에 1 회독을 끝내기로 결정한다.
“인원 체크 끝난 반은 자습실로 이동합니다.”
우리 반은 약 나를 포함해서 7명의 학생이 잔류를 선택했다.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이 각 반을 돌면서 인원 체크를 하고 자습실로 이동하는데, 학원이 조용하니 이상했다.
학원은 기본 1,000명의 학생이 있기에, 쉬는 시간에 이동할 때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함께 부산스러웠다.
그런데 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니 학원이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300여 명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지나가다가 자습실에 있는 학생들의 대충 수를 세어보니 학원에 잔류한 학생들의 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진짜 공부 잘 되겠다.”
자습실에서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었고 누군가 타이머의 소리를 켜놓기도 해서 울릴 때도 있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수가 줄어 학원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해서 최적의 공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획 짠 대로 오전에는 수학 인강을 보고, 오후에는 인강 수업을 바탕으로 자습을 하고, 저녁에는 탐구 기출문제들을 풀며 알찬 잔류 1일 차를 보냈다.
“흐아아암!!”
‘졸려. 자고 싶다.’
잔류 2일 차.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잠이라도 푹 자고 싶지만, 쉽지 않아 계속 졸음을 참기 위해 버티고 있는 과정에서 하품만 쏟아졌다. 이유를 떠올려보니 정기 외출 기간 전부터 파이팅 하며 열심히 공부했고, 어제도 진짜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잔류 기간 동안 학원 시간표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기상 시간이 오전 6시 30분에서 7시로 바뀌며, 각 식사 시간은 기존과 동일하다. 그리고 100분의 자습 시간과 20분의 쉬는 시간이 연달아 계속 이어진다.
“잠 깰 겸 조금만 딴짓할까?”
점심에 맛있는 반찬이 나와 평소보다 많이 먹었고, 자습실 공기가 따뜻해서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제대로 공부한다고 태블릿으로 딴짓을 하지 않았다.
오늘을 포함해서 3일이나 시간이 있는 만큼 태블릿으로 놀아도 괜찮다. 잔류 기간에는 정말 학생들의 관리를 위해 관리 선생님들이 최소한만 존재한다.
즉, 딴짓을 해도 괜찮다는 판단과 크게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밀린 웹툰들 다 봐야겠다.’
이렇게 여유롭게 태블릿을 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굉장히 스릴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주변에 반 애들이 가득해하면서 눈치를 봐야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어 편하게 태블릿을 조작해도 상관없었다.
1화, 2화, 3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웹툰을 보다 보니 훌쩍 1시간이 지나갔다.
“조금만 더 놀까?”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는 시간이 넉넉했다.
그 이유는 오늘 인강 수업 내용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 2시간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복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완결 웹툰 카테고리를 보니 전에 재밌게 봤다가 깜박 잊고 있던 웹툰들이 완결되어 있자 유료로 바뀌기 전에 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렇게 한 편을 보는 게 두 편이 되고, 두 편이 세 편 되어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밥도 먹었고, 이번엔 진짜 공부하는 거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자습 시간이었다.
이제 시간이 없어 아까 밀린 수학 복습을 하기 위해 펜을 잡았다.
‘이게 분명 공부한 내용인데, 너무 어렵다.’
그런데 오전에 인강을 본 수학 공부를 하려는데, 문제 풀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1시간 정도 문제를 붙잡고 봐도 모르겠어서, 다시 인강을 틀어 오전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시청했다.
잔류 3일 차.
어제보다 피곤이 쌓였는지 오전에 더 졸음이 쏟아진다.
그냥 더 잠을 자고 싶어 학원에 두통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다음 회복실에 가서 오전 내내 가서 잤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니 간신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공부해야겠지.’
다른 애들이 다 집에 갈 때 학원에 잔류했던 이유는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목표를 떠올리며 오후에는 자리에 앉아서 어제 하지 못했던 탐구 기출문제들을 풀고, 수학 인강을 보는데 집중이 되지 않고 멍 때리며 강의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진수야! 정신 차리자. 이럼 안 된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계속 멍 때리고 있자 내 뺨을 떄리며 집 나간 정신줄을 붙잡기 위해 눈앞의 인강에 집중했다.
하지만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계속 멍 때리며 방전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녁 자습 시간이다.
이렇다 보니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갈걸!’
담임 선생님 말대로 집에 안 가고 왜 잔류를 선택한 것인지 후회되었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잠도 푹 자면 컨디션도 좋아졌을 텐데, 왜 학원에 잔류해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건지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잔류하는 동안 핸드폰 사용하는 날짜가 들어가 있지만, 담임 선생님이 없고 외출 기간이기 때문에 핸드폰 사용이 없다. 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용하던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자 짜증 난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벌써 애들이 학원이 돌아오는 잔류 4일 차다.
오늘 오전에도 잠이 부족해서 회복실에 가서 잠을 자고, 점심 먹을 때쯤이 돼서야 정신 차렸다.
대부분 오후부터 저녁 식사 시간 사이에 애들이 오기 때문에 오후에는 진짜 마음먹고 공부하기로 생각하는데, 다시 내일부터 학원에 애들이 가득하고 수업도 진행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
“진수야, 잘 지냈어?”
“공부는 많이 했냐?”
시간이 지나 자차로 일찍 온 친구들이 잔류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어보았다.
“물론이지. 탐구 한 바퀴 돌리고, 수학도 많이 끝냈지.”
“오~!”
“진짜 열심히 했나 봐.”
실제로는 마음고생을 엄청하고 계획의 절반도 못 끝냈지만, 자존심 섞인 허세 부린 말을 믿는 눈치였다.
어차피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이제 얼마 안 남은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향해 열심히 달려보기로 마음 스스로 각오를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