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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Sep 27. 2022

꽃을 심는 엄마

기도의 힘과 가을 꽃밭

"엄마, 목소리가 왜 없어졌어?"

목감기로 목이 잠겨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우 일상 대화를 시도하려 해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딸아이가 내게 걱정스레 물었다.


그렇게 지난 며칠 동안은 내게 깊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급히 찾아온 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낮과 밤의 일교차를 넓히는 것을 몸이 견디지 못하고 감기몸살에 걸려버렸다. 앓아누웠다.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워버렸고, 북카페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남편에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커피를 내리든 코피를 내리든 그냥 맡기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던 일을 이제 저질러 버리고 만다. 나이가 든 건지, 인생을 살며 굵어진 건지 모르겠다.

남편의 배려로 이틀을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 혹시 몰라서 딸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서 PCR 검사를 받고는, 다행히도 음성으로 나와 감기몸살약을 처방받아 열심히 약을 복용했다.


누워서도 걱정 가득했던 가을 정원 음악회는 감사하게도 기쁨과 환희 가운데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시골 북카페의 가을 정원 음악회

여전히 한국 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가는 게 힘에 겨워 스트레스 포화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딸아이의 진로를 위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역시나 대안학교나 국제학교에 보내는 게 최선이었을까? 통합교육을 시켜야 할까? 학교에서 아이를 빼내야 할까? 1, 2년 정도 늦어도 괜찮으니 학년을 유급시켜볼까? 잠시 아이를 쉬게 해 볼까? 복지 등급을 받도록 해볼까?


너무나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나를 짓누르며 압박해왔다.


'주님, 제게 밝히 보여주세요~~!'


내게 힘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만 기도하는 것보다 나를 잘 알고 아끼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 사모님,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드렸다.(민앤박님도)

"제가 너무 혼돈스러워요.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해 주세요. 무엇이 딸아이를 위한 최선의 길인지 제가 알게 해 주세요~"


나를 위해 우리 딸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고, 내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뿌연 안개로 덮인 것만 같은 내 눈앞의 불투명하고 두꺼운 막이 말끔히 걷히는 것을 느꼈다. 내게 바로 보는 눈을 열어주신 것이다.

난 지금 영국 웩본부에서 하는 스텝 콘퍼런스에 와있어요.
하나님이 S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렇게 S를 염려하고 돌아보는 사모님을 너무 귀하게 보시고 사랑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기도하면서 마음에 주시는대로 결정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가든 저렇게 가든 S를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예요.
나도 기도할게요. by 레베카 사모님

함께 기도해주시는 분들의 기도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당장 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 요청을 드렸다. 현실은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도 불안해할 만큼, 빼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껏 격앙되고 고조된 목소리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오늘의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다고, 본인이 뭔가 제대로 수행해낸 거 같다고, 딸아이는 자긍심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오늘은 학교에 가정 학습 신청서를 내고 아이를 집에서 쉬게 하려고 했었다.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겠다고, 그러면서 아이에게 맞는 대안학교를 찾아보리라 결심을 하고 있었다. 깊은 고민과 함께.


오늘 나는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

아이의 하굣길에 백암장에 들러서 가을꽃을 여러 개 사 와서 북카페 꽃밭에 색을 맞추어 심고, 오렌지 재스민은 큰 화분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언제까지 꽃을 심을 거야? 할머니 때까지?"


아이가 꽃을 심으며 물어왔다.


"응, 할머니 될 때까지 엄마는 꽃을 심고 싶어."

아이와 함께 심은 가을 꽃밭과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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