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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16. 2023

내 자기애(나르시시즘)의 극치와 몰락

기죽지 않는 삶

길을 가다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가게에 들어가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면 생각한다.


'내가 매력적이고 예쁜가 봐.'


어디에서 비롯된 이 별난 자기애(나르시시즘)인지 모르겠다. 암튼 나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누군가가 나를 쳐다볼 때,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 스스로 외모가 이상하다든지, 뚱뚱하다든지, 촌스럽다든지, 못생겼다든지, 안 예쁘다는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나 생각으로 자신을 주눅 들지 않게 했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그러했다. 특히 해외에서도 그러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꽤 컸다. 나의 자기애, 나르시시즘의 극치다.


이러한 나의 장점 혹은 자기애는 해외생활을 하면서 특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공간에서 VIP와 함께 서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심지어 국가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비서관, 대사님이나 대기업 임원들을 대할 때도 기죽지 않는 면모를 보였다. 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일개 별 볼 일 없는 너무나 평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담대할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다.


암튼, 스스로 기죽지 않는 나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가까운 친구들은 외모를 꾸미지 않는 나를 안타까워하곤 했다.


사실 현실 속의 내 모습은 세련되지도, 예쁘거나 아름답지도, 날씬한 몸매도, 멋진 외모도 아니다.


'머리 좀 해.'

'옷 좀 사 입어. 왜 옷을 그렇게 입었어.'

'예쁘게 신경 좀 써.'

'염색 좀 해.'

'살이 많이 쪘네.'

'어머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어. 어디 아파?'


내가 듣는 말들이다. 현실 속 나의 자기애, 나르시시즘의 몰락이다.


우리 딸도 나를 닮아서 자기애가 만만치 않다. 누군가가 쳐다보면, 본인이 예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딸아이는 인도에서 아주 어려서부터 살았기에 예쁘다고 인기가 많았으니 주욱 그런 자아상을 마음에 지니고 있어 보인다. 현실 속에서는 다이어트를 한참 해야 해서 엄마의 고민이 한가득이지만 말이다.

나도 돌아보면, 어린 시절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깊이 자리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딸처럼.


암튼 지금 나는 중년의 아줌마지만,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원피스를 좋아한다. 물론 신발은 언제나 편한 신발만 고수한다.

옷은 톤온톤으로 맞추는 편이지만, 편한 옷을 입고, 매일 깨끗하게 세탁기 돌리는 것을 즐긴다.

당연히 색조화장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남편과 화장품을 같이 사용한다. 쓰고 있는 화장품 종류도 아주 심플하다. 눈썹도 그리지 않고, 머리도 감고는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고, 훌훌 털고 빗으로 손질하면 끝이다.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사나 싶지만, 그래도 기죽지 않는다.

비록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내가 바라보는 내가 좀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그래도 종종 나의 나르시시즘은 몰락한다.

슬쩍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도심 속 군중들 틈에서 유난히 후줄근해 보이는 내 옷차림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나르시시즘의 극치와 몰락을 시소 타듯이 즐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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