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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13. 2023

여전히 진행 중인 알 깨는 연습

책 속의 한 줄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데미안 by 헤르만 헤세-


이사 오기 전 살던 집 처마 밑에는 제비 가족이 살았다. 부부가 제비 집을 열심히 수리하더니 처마 밑을  터전으로 삼고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관을 열고 나오다가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깨진 알 껍질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던 알 껍질이 분명했다. 때가 되어 알 껍질을 두 개로 쪼개고 나온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현관 위 처마 밑 제비집에서 입을 뾰족이 내밀고 있는 아기 새끼 제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눈도 뜨지 않고 입만 보이는 아가 제비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처마 맡에서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제비들

우리는 그 깨진 알 껍질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얼마 동안은 버리지 않고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 작은 알 껍질 속에서 생명이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엄지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알이 생명을 품고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알 껍질은 단단해 보이기도 하고, 부드럽고 약해 보이기도 했다. 알 속에서 성장한 아기 제비들은 어떻게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어미가 따뜻하게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아기 제비 스스로 알을 깨는 힘을 지니고 있었을까? 어떻게 그리 여리고 여린 아기 새가 그토록 강한 힘을 발휘하여 알 껍질을 깰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에게는 깨지기 쉬운 알 껍질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굳세게 잠긴 강한 철문처럼 깨뜨리기엔 불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에서는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고.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깨뜨려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 알 속에 존재할까? 혹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와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알 껍질을 깨뜨렸을까? 아직도 온 힘을 다해 알을 깨뜨리기 위해 싸우고 있을까?

어떤 나는 이미 알을 깨고 나왔을 테고, 어떤 나는 아직도 알을 깨기 위해 싸우고 있겠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알 껍질을 깨뜨리며, 얼마나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할까?

얼마나 많이 싸워야 할까? 또 다른 나의 탄생을 위해.


알을 깨는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영원히 미완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 치열해져야 한다. 완료형이 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 정신을 놓지 않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현재 내가 깨뜨리며 싸우고 있는 알 껍질은 아이와 남편이다. 도톰한 알 껍질 안에서 일희일비( 一喜一悲 : 순간순간 닥쳐오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가리킨 표현) 하며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이제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닌 독립적인 나로 다시 태어나려고 싸우는 중이다. 알을 깨뜨리고 나온 내 모습을 기대한다. 모든 과정이 완료형이 되어 내가 깨뜨리고 나온 알 껍질을  보고 싶다.

아기 제비가 그리했던 것처럼.

새끼 제비들이 깨고 나온 알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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