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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May 24. 2023

아버지의 친구

하늘나라로 보내며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별일 없는 척하시는 친정 아빠의 목소리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 하나밖에 없는 친한 친구 서ㅇㅇ가 어젯밤 11시에 천국에 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역시 그러셨다. 마음이 아파 견디기 어려우셨나 보다. 얼마나 힘드실까...


"저도 저녁때 장례식장에 가볼게요."


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명절 때마다,

휴가 때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셨던 친구분들이다.


세 부부, 그러니까 여섯 분이 늘 함께 하시다가 권장로 님께서 몇 해 전에 천국에 가셨다.

그 후, 다섯이 되어 함께 다니시더니...


6개월 전, 우리 집에도 다녀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서장로 님은 폐섬유종으로 상태가 악화되셔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


그 후 그렇게 아빠 혼자 여자 셋을 모시고 강원도도 다녀오시고, 산수유 구경도 다니시고, 우리 집에도 들르셨었다. 봄이 찾아와 이천으로 봄나들이 가시다가 잠시 우리 북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는 요양병원에 계신 친구를 애타게 찾으며 혼자 여자들 틈새에 있는 걸 서러워하시는 것처럼 하소연을 하셨다. 그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친구와 아빠는 늘 통화를 하셨단다. 곁에 없는 걸, 자주 볼 수 없는 걸 한스러워하시며..

카모마일이 향을 뿜어내고 있다.

남편이랑 같이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갑자기 혼자되신 엄마 친구 진권사님을 보니 눈물이 쏟아져 흘러나왔다. 주책없이 소리 내어 훌쩍이며 울었다.


"아버지가 많이 우셨어."


나를 알아보는 아들이 내게 말을 건넸다.

보는 사람들마다 낮에 오래 머물다가신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고 내게 언질을 주었다.


많이 우셨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보는 이들마다 안타까워하시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황망하실까? 팔순이 넘은 어르신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빠 생각이 더 뿜어져 올랐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챙겨드리지 못한 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언제까지나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그렇게 계실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내게도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늘 마음에 더 담고 챙겨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서장로 님의 딸이 아버지 얼굴 더 보고 싶다고 30일 비행기 티켓을 사놓고 있었다는데, 아버지는 22일에 일찍 하늘나라로 가셔 버렸다.

딸은 모레야 도착한다니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가는 순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가실 분들을 더 살피고 챙겨드려야겠다.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난 얼마나 철없고 어리석은 딸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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