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면 깎아야 한다고 벼르고 벼르며, 행여라도 남편이 서둘러주길 바라는 달콤한 꿈을 꾸었지만, 역시나다.
남편의 고귀한 눈에는 쑤욱 자란 잔디 따위는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넌지시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비 그치면 잔디 깎아야지 그대로 두면 뱀 나올 거 같아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 못 들은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눈과 귀를 막아버려서 정말 정직하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잔디 이발을 시키지 않으면, 정말 뱀이 어디선가 출몰할지도 몰랐다. 남편은 일찌감치 집을 나서버렸다. 오늘은 못한다고 선전포고를 던져버렸다. 어떡하지?
'그냥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강한 여자다. 할 수 있다. 하고야 말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실행에 옮기는 것만 남았다. 머릿속으로 일의 순서를 계획하며 찬찬히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잎이 무성한 초록 잔디(이발 전)
일단 잔디 깎기를 꺼내고, 전선을 창고에서 가져와 연결했다. 마당 전체를 밀어야 하니 연결 코드도 충분히 준비했다. 작년에 당근 마켓에서 꽤 값을 주고 산 우리 독일산 전기 잔디 깎기는 조금 무게가 나가지만 운전을 잘하는 내게 도전을 주었다. 사실 작년에도 남편과 함께 잔디를 이발시킬 때도 내가 큰 몫을 한 터였다. 이번에는 혼자서 도전해 보는 어드벤처 게임과도 같이 내게 슬슬 불을 지펴왔다.
"윙~~~~!!!"
기계 작동 소리가 크게 울음소리처럼 쩌렁쩌렁 퍼져 나왔다. 조금 잔디 깎기 운전을 하다 보니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땀으로 세수하는 듯했다. 그럴수록 더 집념이 타올랐다. 도전하고 끝까지 완성해보고 싶은 욕구가 나를 휘감았다.
안경을 낀 눈으로 땀이 흘러들어 갔다. 눈이 쓰라렸다. 흐르는 땀을 닦을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었다. 오른손은 전동 잔디 깎기의 손잡이식으로 된 스위치를 꼭 잡고 있었다. 왼손은 행여라도 전선이 잔디 깎기 아래로 들어가 칼날에 닿지 않도록 목에 두른 후 꽉 잡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좀 나아졌다. 윙 소리도 마치 음악 소리 같았다. 윙윙 거리는 소리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박자를 맞추며 마당 잔디밭의 각도와 동선을 구상하며 이발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길쭉하고 뾰족하게 잔디숲을 이뤘던 마당에 초록 잔디 양탄자가 깔렸다.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에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개운하고 행복했다. 푹신푹신 보들보들 탄탄한 잔디밭을 밟으니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초록 양탄자가 된 마당의 잔디
힘들었지만 보람된 임무를 완수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뿌듯하고 가슴이 통통 뛴다. 기쁘다.
저녁에 남편이 칭찬을 날렸다. 맛있는 들밥집에 데려가서 밥을 사줬다. 미안하긴 하나보다. 남편의 눈에도 초록 양탄자 잔디가 예뻐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