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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21. 2024

인도에서 운전면허증을 따다

해외에서 운전하기

해외생활을 하면서 줄곧 운전대를 직접 잡았다.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대단한 도전이지만 늘 그렇듯 더 넓고 확장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어서 그러했다.

영국에서 거주할 때도 용기를 내었다. 마침 우리나라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영국면허증으로 바꿔주는 제도가 있어 당장 찾아가 손에 면허증을 쥐었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연합인 EU국가 어디서든 운전할 수 있는 면허증으로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던 나는 캠핑카를 운전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려 사용 기간은 75세까지로 평생 사용 가능했다.


암튼 그 당시 운전 연수도 받지 않은 채 영국  자동차 회사의 파란색 디젤 복솔 아스트라(Vauxhall Astra), 그것도 매뉴얼(스틱), 거기에다 방향이 완전 반대인 오른쪽 운전대에 앉아 왼손으로 스틱을 움직이며 기어를 바꿔야 하는, 다리도 클러치를 계속 밟아줘야만 하는 어마무시한 차를 운전했다. 처음에는 언덕에서 뒤로 미끄러지기도 하고, 시동이 꺼지기도 했다.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영국 전역을 운전하며 여행을 다녔다. 사실 서유럽 여행을 3주간에 걸쳐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고, 무엇보다 용감한 여정이었다.

영국 복솔 아스트라(출처, 구글)

그렇게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연단된 운전을  처음 인도에 가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동차를 샀지만 살벌한? 인도의 길거리에서 운전할 자신이 없어 처음에는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산제이, 그를 지금도 기억한다.

지인이 장동건을 닮았다고 칭찬했던, 그는 인도 새신랑이었던 그는 딸아이를 무척 예뻐해 주었다.


아무튼 어느 정도 인도 교통 상황에 익숙해지자 다시 용기가 솟구쳐 올랐다. 직접 운전을 해야겠다는 도전 정신이 꿈틀댔다.

근처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운전 연수를 받았다. 떨리고 무서웠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센 격려 세례를 베풀어 자동차를 끌고 조금 한적한 곳으로 나갔다. 남편과 같이 연수를 받았지만 처음에는 주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내가 기사 역할을 자청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긴장되고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조금 멀리 나가는 것도 가능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차선이나 신호등조차도 없는 도로를 운전하는 일은 진땀 흘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운전대를 잡았기에 인도에서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인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한참 동안을 쳐다보곤 했다. 외국인이, 그것도 여성이 운전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인도의 수도 델리라고 해도 분명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인도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 국제운전 면허증을 한국에서 발급받아 갔지만, 유효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매년 국제운전 면허증을 받으러 한국에 나올 수도 없는 터였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인도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누구나 도전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은가?운전 경력, 그것도 해외 운전 경험이 5년 이상되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먼저 동네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운전면허사무소에 등록을 했다. 1000루피(17,000원 정도) 정도니 우리에게는 비싸지 않지만 인도 사람들에게 꽤 비싼 편이다. 그것도 학원마다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 암튼 우리로 말하면 운전면허학원인데, 그리 거창한 곳이 아니다. 아주 작은 사무실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인도 운전면허 학원 안내문(출처, Itzeasy)

일단 간단한 절차를 걸치고 나서 필기시험 예상 문제지를 주었다. 영어와 힌디어 중에 고르라고 해서 당연히 영어로 선택했다. 수업을 절대로 해주지 않고, 필기시험을 위해 혼자 독학을 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라 그냥 혼자 훑어보고 대충 준비를 했다.


먼저  필기시험은 10문항에 6개를 맞히면 일단 합격이다. 요즘은 시험장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시험을 치른다. 한 문제당 30초가 주어진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나는 무난하게 7개를 맞아 합격했다.

필기시험 기출문제는 아래와 같다.

필기시험 기출문제(출처, Itzeasy)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학습 면허증(Learning License)이 주어진다. 그때부터 운전 실기 연습을 실제로 할 수 있다. 물론 동승자가 있어야만 한다. 혼자는 운전할 수 없다. 원칙이 그러하다. 그다음은 실기시험을 위해 RTO(Regional Transport Authorities Offices)에 신청서를 접수하고, 시험 날짜를 받은 다음에 시간에 맞춰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야 한다.


여기서 인도 운전면허시험의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운전면허증을 따는 사람은 자동차가 있어야만 한다. 자동차가 있으니까 운전면허증을 따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암튼 자동차가 없이 운전면허증을 따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자동차를 빌려서 연습을 하고, 바로 그 자동차를 가지고 가서 직접 운전하며 실기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만약 자신  소유의 자동차가 없다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차를 빌려야만 한다.


아무튼 나는 우리 차를 끌고 갔다. 운전면허학원에서 팁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가서 그냥 시험을 보면 된다고만 했다. 나는 따로 실기시험을 위해 연수를 받지 않았다. 실기시험이야 오랫동안 운전을 했으니 별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시험장 상황을 전혀 모르니 어떻게 시험이 진행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학습자 면허(Learning licence)

일단 자동차 앞유리에 빨강색지를 오려서 크게 15센티 길이에 5센티 두께의 ' L'을 붙였다. 이 사인이 없으면 실기시험을 치를 자격이 박탈된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실기시험이 옆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한참을 자동차 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이 진행하는 시험 코스를 살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S'자를 전진하고 다시 후진하는 곳에서 시간이 초과되었다. 탈락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번엔 연습이라 해두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는 탈락과 함께 바로 가서 다시 시험 신청을 했다. 가장 빠른 날짜를 잡았다.


2주 정도 지나 다시 시험장인 델리 RTO에 갔을 때는 여유가 생겼다. 'S' 구간만 시간 초과하지 않고 통과하면 인도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운전실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그곳에서 여자들을 찾기도 힘들었고, 더군다나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어딜 가나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틈을 보이지 않으려 당당하게 담대한 척했다. 주눅 들지 않으려고.

인도 델리 RTO

면허증을 만들어주는 RTO 사무실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즉석에서 사진을 촬영하여 면허증 안에 사진을 삽입했는데, 그 즉석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면허증을 얻는 기쁨을 반은 놓쳐버리고 말았다. 카메라 성능이 안 좋다고, 어쩌면 저리도 이상하게 즉석사진을 찍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평불만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아무래도 가짜 운전면허증이 상용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였다.


그토록 자랑스러운 나의 인도 운전면허증을 사진 한 장이 퇴색시켜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것은 내 어느 가방 속 장지갑 안에 고이 간직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영국에서 면허증을 받을 때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남겨진 비자 기간만큼만 면허증 유효기간을 준다는 것이다. 비자가 갱신되면 운전면허증도 다시 시험을 봐서 갱신해야만 한다.

복잡한 인도다.


여하튼 오늘 나 자신에게 칭찬한다.

수고했고, 용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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