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친구
아이의 얼굴에 노란 웃음꽃이 함박 피어났다. 그런가 하더니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건 맞는데, 순간 움찔했다.
"무슨 일이야?"
"엄마, 이거 봐. 이거 봐."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끌어당겼다. 내 얼굴 앞에 상기된 얼굴을 하고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뭘 보라는 건지.
"엄마, 나한테 현아, 그랬어. 진짜."
"그래? 그게 좋아?"
"응, 현이라고 부르는 건 진짜 처음이야. 대박이야."
딸아이가 보여준 메시지는
'지금 가고 있어. 현아.'였다.
"그게 그렇게 좋아?"
"응, 진짜 대박이야. 나한테 현아 그랬어. 다른 애들은 한 번도 그렇게 안 불렀어. 어떻게 그러지? 너무 신기해."
"친구니까 그렇지. 널 친구로 생각하니까 이름을 불러주는 거야. 너도 이름 불러줘."
친구들과 원이가 우리 북카페에 오고 있다는 메시지에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따뜻한 마음이 커다란 감동을 몰고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와서 남자아이가 딸아이에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 적은 거의 없었나 보다. 창*도 있었지만 단둘이서 DM을 보내거나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은 없지 않은가? 주로 엄마들이 만나면서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눴으니 친구이자 친한 이모 아들이었을 테니까.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친한 친구 사귀는 게 꿈이고 기도 제목인 딸아이를 보면 마음이 쓰라린다. 아려온다. 많은 친구가 필요한 건 아니고 좋은 친구 한둘만 있어도 괜찮다고 다독거리지만, 늘 친구가 고픈 딸아이. 그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생겼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초기부터 알게 되어 같은 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원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더군다나 이전한 북카페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으며, 같은 교회 고등부 예배에 초대해 줘서 함께 예배 공동체가 되었으니 더없이 기쁘기만 하다. 아이가 맑고 예쁘다. 성품도 온화하고 유쾌한 밝은 아이라 마음에 든다. 5대째 신앙을 지켜내고 예배하는 고등학생이니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다.
우리 북카페에 놀러 온 원이에게 나의 책 '김치가 바라본 카레 세상 인디아'를 선물했다. 꼭 읽고 싶고, 읽겠다는 의지에 고마워하면서. 학교에서도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원이와 친구들에게 청소년 독서모임을 제안해 두었다. 같이 책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아이들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꿈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름 석 자 성명이나 직책이 아닌 주어진 이름만으로 불린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지금도 "은경아~" 하며,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지금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세월이 오래오래 흐른 후에도 같은 마음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길,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엄마의 애달픈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