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다가 가끔은 자학하며, 나를 괴롭게 하기도 하고, 반성을 넘어 자신을 찌른다.
자폐증이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가끔 하나에 몰두하거나 빠져들어가 한참 동안을 머물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야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추스를 때가 있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그 뿌리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어려움이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나의 알 수 없는 골방 같은 심리상태로 빠져들어간다.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자는 진정한 대인배요, 쿨한 인성이지 않겠는가? 나는 아무래도 그것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여럿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욕심이 원인이 될 때가 많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어 한다. 무난하고, 무탈하게.
혹여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인생사의 고난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힘들어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또는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온 모든 이들과 관계에 어려움이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 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 마음이 넓으며 이해심이 많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속아 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친구로 받아주고, 꽤 잘 지냈다. 내게 받아들일 마음 그릇도 이해심도 꽤 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한계에 도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 관계가 끝나는 시점이 도래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얼마 전에 친구와 단둘이서 제주도에 다녀왔다. 태어나서 처음 친구와 비행기를 타고 떠난 2박 3일의 여행이었다. 가까운 지인과 잠시 얘길 나누다가 여행 얘기를 했더니 부럽다고 했다. 자신은 같이 여행 갈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면서.
여행 떠날 친구가 하나쯤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올라갔다. 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어쩌면 실상은 세상에 그분처럼 여행 떠날 친구가 없는 이들도 꽤 많으리라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쉽고 가벼운 일이 또 다른 이에게는 현실과 멀고 먼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만큼 단 둘이서 함께 여행길에 나설 친구를 얻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겠다.
나를 손절한 것 같은 옛 친구를 떠올리며, 나는 요 며칠 나 자신을 꽤 괴롭혔다.
'네가 문제가 있어서 그래,
네가 잘못한 게 있어,
네가 사실 성격이 좋지 않아,
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잖아,
네가 말을 잘 못한 거야,
네 마음이 좁았어,
네가 더 이해 줘야 했어,
네가 나쁜 감정을 표출했잖아,
네가 너무 기대를 많이 했어,
네가 화를 냈잖아,
네 말투가 잘못되었을 거야.'
수많은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아 해결하려면 할수록 나는 더 깊은 나락으로 힘 잃은 낙엽처럼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마음은 나 자신에게 할퀴어 긁힌 상처가 새겨지고, 멍자욱은 시퍼렇고, 핏물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영혼은 시들어져 힘을 잃고, 기쁨을 송두리째 도둑맞았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지난날의 아픔이 떠올랐다.
가끔 문자를 남기며 전하는 내 인사에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건너 다른 이들에겐 먼저 소식을 전해 왔단다.
그 얘기가 왜 그리도 내 마음을 할퀴던지.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편하게 있어주기만 하는 건데, 상대방은 내게 이해를 바란다. 나는 그냥 편안하고 오래된 좋은 관계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배운다.
이제는 내 한계치를 벗어나면 그대로 그냥 흘러가게 두기로 한다. 애를 쓰며 이해심을 넓히거나,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도, 힘에 지나도록 노력하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좋아하다'와 '사랑하다'는 품사의 종류 중에 동사가 아닌가?( '좋다'는 형용사다.) 마음은 움직이고, 관계도 유기적인 것이니 세월 따라, 상황 따라 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 한 사람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며칠 전에 마지막 안부를 물었다. 혹시나 하여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런 답이 없다.
'여기까지구나. 이제 더 이상의 안부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내기로 하자. 좋았던 기억은 간직하고...'
언젠가 다시 연락이 오면 그때 보기로 하련다. 내 마음이 닫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억지로 끌고 가지 않기로 한다. 흘러가는 섭리에 말기며, 사람과의 관계에 연연하기보다는 좀 더 객관화시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다는 내 생각은 욕심에서 나온,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배운 12월의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