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를 알게 되는 날, 나 자신과 마주하는 날들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발견하는 스스로의 모습은 때론 낯설기도 하면서, 어쩐지 익숙하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동행해 왔던 세월의 양 때문 일 수도 있겠지.
내려놓을 용기가 없어서 버티기를 반복하고.
끝도 없는 사기가 충천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면서도, 그깟게 뭐가 중하냐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그렇게 서서히 내려놓는 시간을 마주한다.
내가 내 앞에 서서 내게 말을 걸어오고.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와 혼자 화들짝 깜짝 놀라기도 하고. 불현듯 몰려오는 고독 앞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주로 내게 그런 날들은 나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좋다. 마주하는 그런 날들이.
나는 통제하는 인간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한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요즘 MBTI로 보면 나는 ENFP 엔쁘삐다.
특징들을 찾아보니 뭔가 나 자신과 많이 닮아 있어 근거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ENFP의 특징들을 모아 보니 꽤 비슷하다.
MBTI 가 나를 알려준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니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을 ENFJ로 생각하고 있다가 올 들어서야 내가 NFP임을 알게 되었다는 건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어딘가? 그렇게 서서히 알아가는 게 감사하고 다행이다 싶다.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남편과 함께 영국행을 떠났다. 그때 속으로 나는 나 없는 곳에서 동생이 결혼을 못하게 될 것만 같아 근심을 안고 있지 않았던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언니의 오지랖과 통제. 그런 게 내 안에 있다고 생각이나 했던가? 자신을 보지 못한 어두운 눈이 나를 끌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부분의 동생의 삶에 관여했으며, 심지어 이성교제까지도 신경을 곤두 세웠던가? 그래서 내가 영국으로 떠나버리고 남은 집에서 과연 동생이 어떻게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룰지 캄캄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내가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토록 사랑하고 염려하던 동생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게 될 줄이야. 그것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니. 내가 없는데 어떻게? 한없이 기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없어야 했구나... 하지만 심지어 그때도 깨닫지 못한 나 자신의 둔함에 땅을 치고 싶을 뿐이다.
최근에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만나고 있다. 통제하려고 했던 언니 때문에 상처받은 여동생의 마음을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딸아이도 두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요즘 말을 줄이고 있다. 할 말이 올라올 때 침을 꿀꺽 삼키는 연습 중이다. 동서가 가르쳐준 노하우다. 사실 말이 그리 하고 싶지도 않다. 설명하는 것도 나누는 것도 버겁고 힘이 들어 그냥 조용한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글도 쓰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시간들이. 이제 충분히 차오른 모양이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들, 내 기억 속의 묵상과 삶의 메시지, 단상들. 일상의 수다들도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다시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