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의 아이들
봄이 미처 오기 전부터 새 학년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린다.
누군가에게는 벅찬 희망과 기대가 가슴을 끌어당겨 발걸음조차도 깃털처럼 가볍게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천근만근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것만 같아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어야만 하는 시절이 된다. 급기야 몸이 아프다고 반응하여 몸살에 시달리게 되고 만다.
변화도 놓여있다. 누구는 대단한 결심을 하여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땅, 그것도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타국행을 택하기도 한다.
상*이는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초기에 알게 된 남학생이다.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가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나도 그를 기억한다. 덩치가 꽤 있으며 듬직해 보이는 아이였다. 새 학년 반 편성표가 발표되던 날, 아이들은 들썩거렸다.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과 달리 상*이는 딸아이와 같은 반으로 배정받았다. 아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를 하던 터에 학기가 시작되어도 그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이 몰려왔다.
"너 학교 안 다녀? 왜 안 보여?"
딸아이가 보낸 메시지에 그의 답장이 허공을 타고 날아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 자퇴했어."
"진짜? 왜? 몰랐어."
다시 더 무거운 답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나 친구들한테 학교폭력 당했어."
"엥? 진짜야?"
딸아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소식을 전달했다.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별일 없어 보였는데,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바로 메시지 하나가 더 달려왔다.
"나 오래 못 산대."
"응?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어?"
"응.. 오래 못 살아."
내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딸아이에게 그의 친한 친구인 세*이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이 꼬리를 물고 와 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머물렀다.
세*이한테 답장이 왔다며 아이가 보여 준 핸드폰 속 메시지는,
"I heard he is dead."였다.
딸아이는 아이들이 장난친다며 그 모든 메시지를 믿지 않았다.
"엄마, 이거 장난이야. 걱정하지 마."
설마 그런 장난을 하겠나 싶어, 나는 친구들과 우리 북 카페에 자주 들르며 친하게 된 희*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서로 가깝게 지내는 아이들이니 소식을 알 것만 같아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희*아, 너 상*이 소식 들었어?"
"네, 중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국제 학교 다닌대요."
"그래? 혹시 학교에서 학교폭력 당했어?"
"아니요, 거짓말이에요."
"그래? 그렇게 말하던데, 그리고. 얼마 못 산다고 하던데 맞아?"
"네, 그건 맞아요.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아마 오래 못 살 거예요."
딸아이에게 얘길 했더니 웃음보가 터졌다.
"거 봐, 내가 장난이라고 했잖아. 얘들이 너무 장난꾸러기야."
뱃속부터 차오르던 걱정이 스르르 사라졌다. 요즘 아이들은 어쩜 그리도 천연덕스러울까? 나는 매번 아이들에게 속아 넘어간다. 청소년 독서 낭독 모임에 아이들이 올 때도 아이들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못 말리는 아이들이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를 마치고 오랜만에 태*이와 정*이도 같이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2학년이 된 아이들의 관심사는 대학교 진학일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대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던 아이들이 변했다. 대학교를 꼭 가겠단다.
"저는 지방 국립대에 가기로 목표를 정했어요. 서울은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 이제 이과로 확실히 정했어요. 국립대 공대 나와서 SK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려고요. 꼭 그렇게 할 겁니다."
"오, 잘했다. 공대를 선택한 것은 진짜 좋은 선택이야. 미래 산업은 반도체지. 목표를 세웠으니 열심히 해보자.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얼마 전 다른 신도시로 이사하고 전학을 간 태*이는 학교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다들 공부하느라 전학 온 자신에게 학생들이 아무 관심이 없다고 내심 서운해했다.
"아무도 저한테 관심이 없어요. 모두 공부만 해요. 전학 가서 일주일 동안 혼자 점심을 먹었는데, 이제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는 친구들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것뿐이에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요."
"학원은 다니기 시작했어?"
내 질문에 인강을 듣고 있다고 했다. 인스타도 끊고, 게임하려고 비싸게 주고 새로 산 컴퓨터도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당근 마켓에서 좋은 값을 받고 팔았단다. 어떤 아저씨가 사 가며 300만 원을 통장에 넣어 줬다며, 그 돈으로 주식을 사겠다고 하는 아이. 세상은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가?
곁에 있던 정*이의 목소리도 꽤나 상기되었다. 하얀 피부의 얼굴빛마저 생기가 번져 붉게 피어올랐다. 뭔가 큰 결심이 있어 보였다. 평소에도 말이 빨라서 가끔 외국인처럼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인데, 이번에는 정*이의 입술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저도 대학교에 가려고요."
"좋다. 전공은 뭘 하고 싶어?"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장애인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오, 좋다. 이제 목표가 정해졌네. 멋지다. 대학교는 생각해 봤어? 근처에 있는 학교가 좋잖아. 강남대학교나 아주대학교, 칼빈대학교도 있고, 많아서 좋다."
"아, 안 돼요. 들어본 학교나 아는 학교는 못 가요. 여기서 400킬로 이상 멀리 떨어진 우리가 잘 모르는 학교에 가야 해요."
공부에 손을 놓고, 학원에 발을 끊어버린 아이들. 무언가가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그 아이들이 다시 대학교에 가겠다며, 목표를 세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꿈을 갖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도 가슴이 뛰었다. 부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태*이 엄마는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잘 알지만,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종종 나는 그들의 엄마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이 마음을 나누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이 엄마는 다른 작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셔서, 아직 한 번도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너희들 엄마를 한번 만나고 싶어. 엄마한테 여기로 놀러 오시라고 해. 내가 연락해 볼까?"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기라도 하듯이 강한 어조로 나를 말렸다. 희*이도, 정*이도 모두.
"저희 엄마는 낯가림이 심하세요."
"저희 엄마는 낯가림 정도가 그냥 보통이 아니에요. 엄청 심하세요."
그렇게 반응하는 아이들이 귀엽고, 깜찍하기도 했다. 엄마만은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나도 거들었다. 속으로는 꼭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말이다.
"알았어. 나도 낯가림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