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이야기
수수한 차림의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낯이 익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한 잔 시키고는 작은 테이블 위에 소지품을 올려놓는 그녀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바로 발걸음을 옮겨 북카페 책꽂이 앞에서 서성이던 그녀는 한 권의 책을 꺼내왔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책 '안녕이라 그랬어.'를 건네며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우리 북카페의 신간 도서는 10퍼센트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지난겨울에 여기에 온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좋아서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곳이 너무 좋아요."
"아, 그러세요? 이렇게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요. 감사해요."
주르륵 커피 머신에서 내리는 에스프레소를 파란 머그컵에 담아 따끈하고 연한 아메리카노를 완성해서 우드 컵 받침에 올려 냅킨과 함께 내어 드렸다. 이런저런 대화가 시작되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 겨울 두터운 외투를 입고 딸과 함께 근처 향상교회 안에 있는 성인장애인 보호 센터 선생님들과 방문해서 길고 긴 대화를 나누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나요. 모습이 또렷하게 생각이 나요. 다시 뵈니 너무 반갑고 좋아요."
20대 발달장애인 딸을 둔 그녀는 근처에 살다가 딸아이를 위해 남편과 함께 일부러 양지에 있는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몇 해 전부터 딸아이가 클론 병까지 앓게 되어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어야 해서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은데, 그녀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평안해 보였다. 약간의 중저음인 그녀의 목소리는 타고난 차분한 성품을 보여주는 듯했다.
"저도 아이가 어렸을 때 다니던 같은 학교 아이들 엄마끼리 시작한 책 수다모임을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여기도 독서모임을 한다고 들었어요. 가깝다면 오고 싶은데 좀 멀어서 쉽지가 않아요. 딸아이도 돌봐야 하고요."
이런 분이 우리 독서모임에 오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삶의 크기와 넓이가 있지만, 어느 누군가는 더 많은 삶의 깊이와 의미를 찾아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분에게는 마치 무언가 더 많은 가치가 내면에 쌓여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더 끄집어내어 듣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대화를 마치더니 새로 구입한 김애란 작가의 소설책 '안녕이라 그랬어'를 펼쳤다. 마침 옆자리의 손님들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어서 조용한 자리로 옮겨도 되냐고 묻던 그녀는 한적한 테이블에 다시 책과 커피를 내려놓았다. 나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책 읽는 그녀 곁에서 떨어져 내 자리에 앉아 내린 지 한참 지나 차가워진 내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노란 머그컵을 들었다. 다시 내려 마시고 싶은 충동을 뒤로하고 식은 커피를 한 잔 들이켰다. 식어도 그런대로 커피 맛이 좋아 감사했다. 읽던 책을 펼쳤다가 설거지를 했다가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를 몇 번 하고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딸아이 픽업을 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가방을 손에 든 그녀가 다른 한 손으로 냅킨을 건넸다.
"책을 읽다가 좋아서 적어봤어요. 드리고 싶었어요."
"글씨체도 너무 예쁘세요. 감사해요."
그녀가 말을 건넸다.
"모든 엄마들이 자녀를 키우느라 힘드지만, 저도 어쩌면 더 힘들거든요. 그래도 감사해요. 우리 예*이도 여기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한 번씩 들르면, 말을 걸어 인사해 주세요.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면 너무 좋아할 거예요."
"그럼요, 꼭 그럴게요."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곳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이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나는 이 아름다운 공간을 가꾸고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가 건넨 냅킨 쪽지의 문구가 떠오른다.
그냥 시간을 견딘 것들이 주는 위로가 있잖아요?
그녀 자신을 위한 좋은 문장이기도 하며, 오늘 내게 준 따듯한 한 줄 메모가 나를 위로한다.
오늘을 감사하며, 주어진 하루에 기쁨으로 마주하는 날들이 쌓이면 좀 더 수려한 인생의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그런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