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독서 낭독 모임
'짤랑짤랑~'
북카페 문이 열리고 앳된 여자아이 둘이서 안으로 들어섰다. 딸아이가 반색을 했다. 반 친구들이란다. 환하게 미소 짓는 여고생들의 얼굴에 향긋한 꽃이 피어났다.
내가 꿈꾸던 장면이지 않은가?
나는 그동안 이런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친구들이 찾아와 주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있을까? 어린 아기 때부터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가 힘들어했던 딸아이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만신창이 같은 마음을 어떻게 다 뒤집어 꺼내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나와 딸은 오늘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한 친구의 손에 책이 들려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아이에게 물었다,
"책 읽는 거 좋아하니?"
"네, 좋아해요."
"좋은 책 읽고 있네. 우리 청소년 독서 낭독 모임에도 오면 좋겠다."
"아, 평일에는 학원에 가서 시간이 없어요."
맞다. 요즘 이곳에서 만나는 청소년 아이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만나면 두 부류로 나뉜다. 빼곡한 학원 일정에 개인 시간이 없는 아이들, 그리고 학원에 다니지 않는 개인 시간이 보장된 친구들이다. 나는 요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정되는 그들의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곁에서 살짝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졌어요. 학원에 가는 게 너무 싫어요. 도저히 못 가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지난여름, 나는 그렇게 학원 가기 싫은 아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책 한 권을 다 읽고 와서 독서토론을 하는 것은 과연 쉽지 않은 과업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모임에 빠지는 아이들을 보니, 미리 책을 읽어오는 모임은 지양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책을 읽어오는 독서모임 말고, 같이 모여서 돌아가면서 읽는 독서 낭독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아이들의 반응은 좋았다. 요즘 공부에 바쁘기도 하지만, 특히 시간이 주어진다면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 지. 책이란 것은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가 이미 많이 어렵지 어려운 부류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도 아이들의 속마음은 달랐다. 책을 읽고 싶어 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잘 읽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책 속에 빠지고 싶은 마음에 골라잡은 그들만의 책은 아이들의 눈을 오래도록 붙잡지 못하고 만다. 앞 부분만 조금 읽힌 채 구석 어딘가에 모셔지거나, 다 읽히지도 않은 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도서들.
그래서 우리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서 책을 소리 내어 같이 읽기로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주린 배를 간식으로 채운 뒤에 같이 정한 책을 분량만큼 1시간 정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새 1권을 완독하고, 두 번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옆 친구의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줄거리를 들으며 눈으로 따라 읽었다. 마음도 같이. 때론 웃었다가 때론 하품을 하기도 하지만, 꽤나 진지하게 책에 몰입하는 아이들. 대견스럽다.
첫 번째 책은 두껍지 않지만, 좋은 책 '긴긴밤'을 선정해서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개인의 짧은 소감을 5 문장씩 써서 보내라고 했더니 감동적인 문장들이 내 핸드폰으로 날라왔다. 훨씬 많은 문장들이. 아이들의 마음이 어쩌면 이리도 예쁠까? 문장 표현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이 글도 잘 쓰네.'
나는 조용히 밀려오는 감동을 부여잡았다. 비록 공부를 포기한 것처럼 보여 부모님의 마음을 절망케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했을지언정 그들은 꿈꾸는 아름다운 소년, 소녀들이었다.
누가 이들의 미래를 미리 결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가슴속에 일렁이며 꿈틀대는 그들의 꿈이 거품이 되어 사리지 않을 테니까.
근처 동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생활을 9년 동안이나 했던 아이들. 개구쟁이 친구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각각 다른 학교에 진학했어도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그들. 아파트 바로 근처에 자리 잡은 우리 북카페 꿈꾸는 정원이 그들의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다.
친구가 친구를, 그리고 또 다른 친구를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아이들이 자석처럼 이곳으로 발을 들여놓더니 들락거린다.
보통은 나를 '이모'라 부르는 아이들.
그들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사춘기가 끝나 가지만 아직 끝나지 않는 시기. 번뇌와 고민이 가득한 방황의 때다. 아직 무엇을 향해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운데다 몸속의 호르몬까지 휘몰아쳐 돌아다니니 얼마나 어려울까? 그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다소곳이 북카페 중앙의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책을 읽으며, 책 내용을 따라 솔직하게 각자의 견해와 마음을 나눠주는 게 고맙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 친구들을 통해 더 넓은 우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광활하고 넓은 그들의 세상으로. 내 삶도 덩달아 넓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작은 생각도 조금 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꿈꾸는 청소년들.
그들의 꿈이 형태를 갖추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고, 버티고 이겨내는 그들의 자라는 꿈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마침내 마주하며 기뻐할 그들만의 이야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