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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자는 북카페

다시 꿈을 꾸다

by 샨띠정

이번 겨울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특히 우리가 사는 지역은 전국에서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눈을 치우고는 이틀 동안 면소재지에 있는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통증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이제 눈 치우는 요령도 생겼다. 어디를 치워야 하고, 어느 쪽은 그냥 내버려 두고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법도 배워가고 있으니 물리치료받으러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걸로도 큰 수확을 얻은 셈이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 풍경을 오래오래 눈에 담아 볼 수 있는 것도. 겨울 내내 녹지 않은 집 앞동산과 들판에 쌓인 눈은 사나운 겨울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마치 찬 바닥에 솜이불을 깔아 둔 것처럼. 나는 그런 겨울의 모습이 정겹다. 창밖으로 펼쳐진 문수산 자락에 내려앉은 설경은 오래전 유명한 산수화에서 본 듯한 장면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볼수록 아름다운 겨울 산자락에 빠져들고 만다. 수려한 그 산능선과 곡선은 감탄을 부른다. 청초한 빛깔의 옷을 입은 것만 같은 굽이굽이 겨울산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그렇게 매서운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 기온도 영하 10도에서 시작했으니 여전히 봄이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나는 봄을 기다리면서도 겨울을 보내는 게 못내 아쉽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은 현실 속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가 굳게 얼어붙은 땅 속에서 새싹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그 봄을 사랑하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비켜가기를 바랐던 A형 독감을 앓고, 한 달 동안 설사와 복통으로 고생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어서 병원에 갔다가 쓸개(담낭)에 문제가 있다는 소견을 들으면서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나의 겨울은 북카페의 겨울잠을 재워버렸다. 눈이 많이 내려서, 병원에 가야 해서, 아파서, 일정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북카페 문이 열리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중국 친구들도 명절을 맞아 중국에 많이 돌아가고 방학에 들어가 한가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들께 죄송했고, 문을 열었는지 전화를 걸어 문의하시는 분들께 더없이 송구했다. 눈이 가득 쌓인 아침에 걸려온 전화에 사과 인사를 드렸다.


"죄송해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북카페 문을 안 열었어요. 날씨가 너무 춥네요. 날이 풀리고 포근해지면 꼭 오세요.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며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겨울잠을 자는 북카페를 깨우기에는 버거워서 봄을 기약했다. 따스한 봄날에는 북카페도 기지개를 켜고 힘차게 일어나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한동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으로 머리를 싸매느라 진이 빠졌다. 지금도 통학할 일이 막막하긴 하지만 무슨 수가 있지 않겠는가? 분명히 길이 열릴 것을 믿는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신통방통한 방법으로 새 길이 예비되어 있으리라 나는 기대한다.


북카페 수익을 내는 것에 문외한인 내가 결국 실패한 것만 같아 쓰라린 마음을 몰래 훔치며 울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온갖 정성을 쏟아 가꾼 북카페를 정리해야 할지 고민고민하며 잠을 설치던 밤들도 허다했다. 내가 낳은 아이를 버리는 것과 같은 심정을 부여잡고 삼키던 시간을 지나왔다. 무능한 자신을 다독였다. 미워했다가 안아주기를 반복하며, 힘겨운 시간을 통과해오지 않았던가?


하나님께서는 북카페와 나를 묶어 놓으셨다. 내게서 떨어뜨리지 않고 계신다. 나는 버리려고 했는데, 버리지 말라고 내 곁에 북카페를 붙들어 매시지 않는가? 나는 더 큰 책임감을 부여받았다.


이제 나는 달라지고 싶다. 어중간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 아닌 더 강한 커리어우먼으로 당당하게 서는 상상을 한다. 꿈꾸는 정원에서 다시 꿈을 꾼다.


영국의 보타닉 가든과 같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받는 공간을 제공하는 행복한 꿈을. 수익을 많이 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선교사님을 지원하는 거룩한 곳간이 되는 꿈을 꾼다. 바로 이곳이 말이다. 나는 이제 실패자가 아닌 성공하는 일꾼이자, 주인에게 칭찬받는 종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죽은 것을 살려내듯, 잠자는 북카페를 깨워 일으키고 싶은 열망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저 멀리서 서서히. 나는 기다린다. 잠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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