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야, 인도 가자!

인도로 출발

by 샨띠정

"샤이니야~ 우리 인도 가자. 이제부터 네 이름은 샤이니(Shiny)야."
“응.”
“이제 너는 샤이니야, 알았지?”
“응.”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을 한다. 그저 '엄마 아빠랑 같이 있으면 아무 문제없어'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우리는 딸의 한국 이름의 뜻 '밝고 빛난다 '에 따라 딸의 인도 이름을 '샤이니(Shiny '빛나다'는 의미다.)라고 지어 줬다.
우리 세 식구는 인도로 가기로 했고, 딸아이의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이 모든 걸 다 결정하고 난 후에 딸에게 통보했다.


샤이니는 겨우 만 두 돌이 지났고, 한국말을 막 배우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할 줄 아는 한국말도 몇 마디 안 되어 본인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 인천에서 인도의 수도 델리로 가는 직항이 없었다. 우리는 인도로 가는 길에 태국 방콕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는 방콕 경유 타이항공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인도 뭄바이 항구로 가는 배에 컨테이너를 싣기로 하고 장거리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인도에서도 가구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지만, 샤이니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며 책, 이불, 피아노까지 컨테이너로 가져가는 건 타국에서 겪을 문화 충격을 우려한 탓이었다.


샤이니는 막 배변훈련을 시작해서 아직 기저귀를 완전히 떼지 못한 상태였다. 준비해야 할 품목 중에 아기 기저귀와 물티슈가 필수 목록에 들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도에서는 아기 기저귀와 물티슈를 흔하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먼저 인도에 가서 살고 계신 지인의 조언을 따라 집에서 사용하던 휴지통까지 컨테이너에 실어 넣었고, 특별히 화장실에서 사용할 두루마리 휴지를 가득 사서 컨테이너 구석구석을 채워 넣었다. 인도에서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지 않기에 휴지를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흔한 뽀로로 비디오 영상 파일 하나 준비하지 않고,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날았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다.'라는 나의 철학 아닌 철학, 나만의 개인적인 육아 교육 신념을 갖고 아이에게 한국에서도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나는 인도에도 샤이니를 위해 비디오 파일을 가져갈 의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2년이 지나서 시동생과 제부로부터 내가 부탁한 샤이니를 위한 디즈니 영화와 애니메이션 비디오 파일이 든 외장하드를 받아야만 했다. 딸아이가 한국어와 영어, 힌디어의 3중 언어 속에서 한국어 습득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뿐이었던 딸에게 좀 더 한국어에 노출시켜줘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풀어야 할 에피소드가 아주 많이 있다.

델리로 가는 길에 경유해서 들른 방콕은 쉼을 불러왔다. 풍성한 먹거리와 열대과일들 그리고 살갗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따뜻한 공기는 우리 세 식구를 휴식으로 인도했다. 인도로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 한번 하고, 우리 세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을 맘껏 누리며 하루의 휴가를 보냈다.
샤이니에게는 선물인양 방콕에서 유명한 아쿠아리움에 데려가 바닷속 구경을 시켜주었다. 사실은 앞으로 닥칠 인도에서 샤이니가 겪어야 할 힘들고 어려울 상황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깔깔거리며 해맑게 웃었다. 마치 웃음으로 자신을 충전시키기라도 하듯 맘껏 신나게 뛰어다니며 주어진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도 어린 딸처럼 긴장을 늦추고 주어진 하루의 휴식을 누리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내일이면 곧 펼쳐질 인도에서의 삶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12월의 추운 겨울날,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방콕을 거쳐 인드라 간디 델리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한밤중이었다. 한국에서 인도로 오고 가는 비행기는 거의 한밤중에 뜨고 내린다.


12월, 후덥지근한 델리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승무원의 허락을 받고 보라색 비행기 담요로 아이를 내 등에 업었다. 다행히 전기자동차로 노약자들을 실어 나르는 델리 국제공항의 직원들이 이미 전동차에 타고 있던 인도 남자에게 전동차에서 내리라고 하며 우리를 태워줬다. 속으로 난 환호를 질렀다. ‘인도가 우리를 환영해~!’
마치 인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며 환영을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기다리던 지인과 함께 공항을 나왔을 때는 우리에게 인도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다만 불결해 보이는 환경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샤이니가 인도에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아이들이 뽀얀 피부색의 앙증 맞고 귀엽게 생긴 외국 여자아이를 구경하러 와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그을린 검은 피부지만 건강해 보이고, 눈은 동그랗게 크고 코가 오뚝해서 잘생기고 다들 예뻤다. 하지만 그들의 눈엔 하얀 피부와 작고 검은 눈을 가진 단발머리 꼬마 숙녀가 신기하기만 하고 마치 인형처럼 보였나 보다.
눈이 크고 생김새가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하니 샤이니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그냥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행여라도 울음을 터뜨려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반갑게 인사하는 인도 아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샤이니가 울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들의 관심에 반응을 보이자 어색한 순간이 무사히 지나갔다.
같이 미끄럼틀을 타고, 손을 잡아주며 단발머리 외국인 소녀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주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인도에서 샤이니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고 어딜 가든 인도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멈추어 줘야만 했다. 때로는 인도 사람들이 샤이니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으니 그 인기는 슈퍼 스타만큼이나 높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 진 풍경을 서서 구경하곤 했다.
나는 '샤이니 모델료 받고 사진 찍어줘야겠어'라며 은근히 흐뭇하게 그 광경을 즐기기도 했다.
그 후에 누군가가 내게 "아마 인도 사람들 SNS에 샤이니 사진이 돌아다닐지도 몰라요."라고 말했을 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번은 인도 사람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인도 사람들은 샤이니랑 사진을 찍고 싶어 해요?" 그랬더니, 대답한다.
"사실은 인도의 카드나 엽서에 나오는 아이 사진이 샤이니와 비슷해요."
인도 사람들이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고 예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제야 어려운 수수께끼 하나를 푼 거 같았다.

아무튼 신기하게도 샤이니는 짜증을 부리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모델처럼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짜증을 내고 울음보를 터뜨릴 법도 한데, 잘 인내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샤이니가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하다. 아마도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낯설거나 무섭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샤이니는 그 순간들을 기억하며 종종 얘기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인도에서 샤이니의 자존감은 아주 튼튼하고 강하게 자라 갔다.
우리는 그렇게 샤이니와 함께 하는 인도에서의 아주 특별한 삶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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