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음식들은 막 해서 따뜻하게 먹을 때 정말 맛있다. 지금도 여전히 인도에는 배지 테리언(채식주의자, Vegetarian)이 주를 이룬다. 음식에 고기가 들어간다 해도 기껏해야 닭고기나 양고기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도 인도에 살면서 거의 반 배지 테리언(Half Vegetarian)으로 살았다. 달걀은 거의 매일 먹었지만 고기는 거의 먹지 않았다. 고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쇠고기는 비밀리에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살 수 있었다. 닭고기는 비교적 구하기가 쉬웠지만, 샤이니는 닭고기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것도 어쩌다 한 번씩 먹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우리 가족은 야채 위주의 식단에 만족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침마다 집 앞으로 야채 파는 섭지 왈라(야채 파는 사람)가 신선한 야채를 리어카에 싣고 나를 기다렸다.
우리 식탁은 토마토와 브로콜리, 시금치가 주를 이루었고, 섭지 왈라는 날 위해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버섯을 항상 준비해 오곤 했다.
매일 아침 일찍 집 앞에 오는 야채 리어카
그런데 내게 어려운 과제 하나가 주어졌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샤이니를 위해 매일 점심 도시락과 스낵 박스를 준비해야 했다.
인도 학교는 더위 때문에 모든 학교의 수업이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항상 학교에 7시 50분까지 도착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침 9시가 넘으면 스낵을 먹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을 못 먹고 오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에서였다.
샤이니 학교의 학생들은 배지 테리언(채식주의자)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신경을 써서 샤이니를 위한 도시락을 준비했다. 달걀을 입힌 오므라이스나 볶음밥, 짜장밥 등을 싸주곤 했다. 인도의 맛있는 과일과 함께 정성스레 도시락을 준비하며 나는 샤이니가 부디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샤이니는 도시락을 다 비우지 않고 남겨오곤 했다.
인도 학교
"왜 도시락을 다 안 먹었어?"
"그냥."
뭔가 이유가 분명히 있어 보였다.
"괜찮아, 엄마가 도와줄게. 얘기해봐."
"...."
"얘기하기 싫구나. 그럼 안 해도 돼."
그제야 아이가 입을 열었다.
"나 점심시간에 캐슬(성, Castle)을 만들었어."
"진짜? 왜 그랬지? 무슨 캐슬?"
"친구들이 똥 이래... 그래서 책으로 캐슬 만들어서 혼자 하이드(숨겨서)해서 먹었어."
"똥?"
"응, 짜장밥이 똥 이래. 그거 싸주지 마."
"아.. 그렇구나, 친구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서 그래. 솔직히 콩으로 만드는 노란 인도음식 달(Dhal)이 진짜 똥같이 보이는데..."
마음이 짠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힘들고 속상했을까? 그동안 말도 못 하고....
사실 미리 준비해두고 싸주기 좋은 메뉴였지만, 아이의 요구대로 더 이상 짜장밥을 싸주지 않았다. 이후, 샤이니가 좋아하는 달걀찜을 싸줬을 때도 아이들이 놀렸다고 했다.
"엄마, 나도 인도 도시락 싸줘."
처음엔 도시락에 김치를 싸 달라고 졸라서 '김치는 집에서만 먹는 거다.'며 아이를 달랬었는데, 이제는 인도 음식을 싸 달라고 하길래 나는 한국음식과 인도음식을 살짝 섞은 인도식 퓨전 메뉴를 준비했다.
"엄마, 도시락 보여줘 봐."
그 후로 샤이니는 아침마다 도시락 메뉴를 꼭 확인하고 학교에 갔다. 나는 딸아이에게 도시락 퇴짜를 맞을까 봐 신중하게 도시락 메뉴를 정해야만 했다.
아침마다 샤이니 도시락을 싸는 일은 내게 엄청나게 큰 과업과도 같았다. 인도 아이들 눈에 괜찮아 보이는 도시락을 싸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샤이니의 담임이신 들입다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상황을 바로 이해하시고는, 반 학생들에게 잘 이해를 시키겠다고 하셨다.
샤이니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갔는데, 아이의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엄마, 나이스(Nice)!!"
"기분 좋은 일 있었어?"
" 응, 선생님이 다 얘기해줬어."
"그래? 무슨 얘기?"
"나는 Korean(한국사람)이니까 korean food(한국음식을 먹는 거야. 친구들도 다 이해했어."
"와, 다행이다. 이젠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친구들은 korean food를 잘 몰라서 그래."
"아마 친구들이 한국음식 먹어보면 엄청 맛있어서 좋아할 텐데, 잘 모르잖아."
의외로 인도 사람들은 새로운 음식이나 문화에 대해 다소 배타적인 면이 있는 거 같다. 아이들도 한국음식을 먹어 보라고 주면 먹는 걸 두려워하고 주저주저하며 잘 먹지 않는다.
반면에 감사하게도 샤이니는 인도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었다.
샤이니도 손으로 먹는 것이 익숙해져서 음식을 인도식으로 손으로 잘 먹는다.
도시락을 쌀 때마다 포크와 숟가락을 함께 넣어 줬지만, 샤이니도 학교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고 깨끗한 체 그대로 집으로 가져올 때가 다반사였다.
사실 인도음식은 손으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는 거 같다.
샤이니는 한국에 와서도 인도음식을 찾는다.
"엄마, 로띠 먹고 싶다. 만들어 봐."
그 많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다가도 인도 음식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나도 막 구워 낸 따끈따끈한 로띠를 오른손으로 찢어서 달하고 섭지와 함께 먹어 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맛있는 인도 음식
한국에 오니 도시락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평온한 아침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
샤이니도 매일 학교에서 먹는 점심 자랑을 한다.
돌아보면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지만, 귀한 추억이 되어 고맙고, 이러한 작은 경험들이 삶에 귀한 거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