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는 'Green Delhi Clean Delhi'라는 로고를 내걸고 5층 이상의 주택 건축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가 살던 집도 4층짜리 아파트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아파트가 아니다. 그냥 마당이 있는 4층 단독 건물이다.
1층(Ground floor)에는 펀잡 출신인 집주인 6 식구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한국에 올 때까지 이사하지 않고 6년을 꽉 채워서 살았다.
1층엔 집주인 인도 펀잡 사람과 2층엔 미국인, 3층엔 우리 한국인, 그리고 4층 꼭대기 층에도 미국인 게일과 에드윈, 아들 티코가 살았다. 그런데 티코가 미국으로 대학을 가면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새로 이사 온 네덜란드 사람 토비야스 네까지 한 건물 안에 각 층별로 다국적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 한 지붕 네 가족이 산 것이다.
같은 건물에 함께 살다 보면 즐겁고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들도 많았지만, 반면 힘들고 속상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늘 현관문을 열어 놓고 오르락내리락했던 로라와 마이클 네의 존과 이샤도 떠나고, 결국은 1층 집주인 라즈 벤다 네와 우리만 계속 남게 되었다.
집주인 네 아이들 굴지와 아시스, 두 남매는 매년 샤이니와 함께 서로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며 6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딩동 딩동~~!'
"안띠, can shiny come down?(샤이니 내려올 수 있어요?)"
굴지가 샤이니를 부르는 소리다. 항상 나에게 허락을 받는다.
"Okay ~~"
샤이니는 응답하고 내려간다.
학교에 다녀오면 같이 놀자고 매일 샤이니를 불렀다.
가끔은 샤이니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면 굴지는 마음이 상했고, 굴지 엄마 라즈 벤더까지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럴 때는 참 곤란했다. 나는 샤이니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억지로는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은 샤이니를 구슬려서 내려 보내고는 했다. 굴지 네는 영화를 보러 갈 때나, 수영장에 갈 때, 친척집에 갈 때도 샤이니를 챙겨서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인도의 명절과 축제 때에는 항상 샤이니를 초대해서, 함께 축하하며 인도 전통놀이를 즐겼다. 샤이니도 좋아하며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 앞 공원
동네 아이들은 집 앞 작은 공원에서 함께 여러 놀이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놀았다. 처음에는 나도 나가서 샤이니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는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샤이니는 혼자서도 동네 친구들과 잘 놀았다.
집 앞 공원 놀이터는 3층인 우리 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여서 위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 집 경비원과 집주인 굴지 네 운전기사 로션이 아이들이 노는 것을 돌봐주곤 했다.
타국 인도에 있어도 이웃이 있어서 늘 마음이 따뜻하고 참 감사했다.
샤이니와 동네 아이들은 가끔 싸우기도, 울기도 했지만, 날마다 동네가 떠들썩하게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가끔 아이들 틈에 아이언이 보이지 않았다.
“딸, 왜 요즘 아이언은 같이 안 놀아?”
“응, 아이언 엄마랑 굴지 엄마가 싸웠대.”
“흠.... 그렇군.”
어느 날은 늘 같이 놀던 싸 키가 보이지 않았다.
“왜 요즘 싸 키는 같이 안 놀아?”
“응, 싸기 엄마랑 굴지 엄마가 싸웠대.”
“에고... 싸웠구나. 그래, 굴지 엄마 성격이 좀 괄괄하지..”
굴지는 외조부님과 함께 살았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굴지의 아빠는 보통 키였던 반면, 굴지 엄마와 굴지, 아시스의 키는 아주 작았다. 유전적인 요인이 있는 거 같았다.
처음 우리가 이사를 갈 때만 해도 사이니 키가 훨씬 작았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어느새, 샤이니의 키가 굴지를 따라잡더니 굴지보다 키가 훨씬 커졌다.
샤이니는 나한테 여러 번 물었다.
“엄마, 왜 굴지는 키가 나보다 작아? 안 커?”
“응, 굴지는 태어날 때부터 원래 키가 많이 안 커. 굴지한테 왜 키가 작냐고 물어보지 마. 알았지?
“알았어. 안 물어봐. 그런데, 왜?”
“아마 굴지가 마음이 아플지도 몰라. 속상하잖아. 샤이니처럼 키가 크고 싶을 텐데... 그렇지?”
“아... 알았어. 안 물어볼게.”
그렇게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면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아이들이 함께 집 앞 공원에서 놀고 있었다.
내가 샤이니가 놀고 있는 틈을 타 동네 가게에 과일을 사려고 나갔을 때, 샤이니가 아이들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샤이니를 달래는 동안 굴지만 표정이 굳어 있었다.
굴지는 아이들 간의 트러블을 엄마에게 시시콜콜하게 고자질해서 문제를 키우곤 했는데, 그 때문에 샤이니도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
“굴지, 무슨 일이야?”
“경찰 놀이를 했는데, 나는 도둑이고 샤이니가 경찰이라서 나를 쫓아오다가 밀어서 내가 넘어졌어요. 샤이니 잘못이에요. 엄마에게 말할 거예요.”
샤이니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지켜보시던 이웃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셨다.
“내가 봤는데, 샤이니는 잘못이 없어요. 굴지가 그냥 혼자 넘어졌어요.”
나는 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는, 샤이니를 달래고 나서 굴지에게 어서 같이 놀라고 하고는 과일을 사러 갔다. 몇 발자국 발걸음을 뗐을 때, 굴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샤이니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아... 나도 들어서 알아요. 아이들이니까 이해해요.”
“샤이니가 굴지에게 잘못했어요.”
“내가 들었는데, 샤이니가 밀지 않았대요.”
“샤이니가 너무 나빠요.”
“It’s okay, 아이들이잖아요. 내가 곧 갈게요.”
굴지 엄마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고,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사고는 바로 아이들이 놀고 있던 공원으로 갔다. 샤이니가 보이지 않았고, 굴지는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나는 굴지에게 다가갔다. 나도 벼르고 벼르던 터라 오늘은 확실히 해두리라 마음을 먹었다. 매번 샤이니가 상처 받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굴지, 샤이니 어디 있지?”
“집에 갔어요.”
“왜 샤이니가 집에 갔지?”
“우리 엄마가 샤이니는 집으로 가라고 보냈어요.”
나는 그 순간 이제 더 이상 그냥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굴지에게 물었다.
“굴지, 너는 샤이니하고 같이 노는 거 행복해?”
“예스.”
“그럼, 왜 샤이니에게 그렇게 하지? 네가 샤이니와 같이 노는 게 행복하지 않다면 앞으로 샤이니를 부르지 마!” 내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굴지가 조용히 대답했다.
“예스.”
“알겠어? 이해했어?”
나는 한국 엄마의 파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네가 샤이니와 같이 행복하게 놀고 싶으면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로 부르지 마.” 굴지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스. 이해했어요.”
주위의 다른 동네 아이들과 경비원이 나와 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샤이니를 위해 엄마의 힘을 보여줘야만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니 굴지 엄마는 나와 굴지의 대화를 다 듣고는 내게 물었다.
“지금 우리 굴지에게 뭐라고 했어요?”(이건 물론 한국식 표현이다. 절대 존댓말이 아니다.)
“들었으면 알겠네요.”
“샤이니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네, 알아요. 샤이니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갑자가 굴지 엄마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렇지 샤이니가 아주 나쁘게 행동해요.”
“그래요? 굴지도 나쁘게 행동하던 걸요.”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왜요? 당신은 늘 그렇게 말하잖아요.”
내가 평소에는 한 번도 목소리를 높여서 말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굴지 엄마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정말 나빠요.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해요?”
“미안해요. 하지만, 나도 오늘은 말을 해야겠어요.”
“샤이니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에요.”
쾅!! 굴지 엄마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가슴이 벌렁벌렁거렸고 팔딱팔딱 뛰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너무 과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 후 얼마 동안 굴지 엄마와 나는 서로 얼굴을 피하며 외면했다. 굴지도 샤이니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도넛 한 상자를 사서 샤이니와 굴지 네 현관을 두드렸다. 굴지 엄마가 살며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과하면서 건네는 나의 도넛을 사양하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굴지 엄마의 마음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샤이니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로 나를 걱정했다.
“엄마, 나 때문에 어떻게 해?”
“괜찮아, 엄마는 샤이니 엄마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 미안해.”
“아니야, 왜 네가 미안해? 하나도 안 미안해. 괜찮아. 엄마는 네 편이야.”
우리 집 베란다의 알로에
그렇게 2 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굴지 엄마가 나를 불렀다. 우리가 베란다에 키우던 알로에 한 가지만 달라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장 싱싱하고 좋은 알로에 가지를 하나 잘라주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굴지 네 집에서 짜이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굴지도 나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샤이니하고 놀아도 괜찮아요?”
“그럼, 같이 놀아. 샤이니 불러 봐.”
굴지가 부르자 샤이니는 반가워하며 달려 내려왔다.
한국 엄마와 인도 엄마의 대첩이었다. 누구도 승자는 없었다. 엄마들은 아이 앞에서, 아이를 위해 가끔 이렇게 이성을 잃는 가 보다,
지금도 샤이니는 종종 굴지 생각을 한다.
우리 집 강아지 ‘장군이’와 ‘꽃순이’ 이에 대한 이야기도 인도에 있는 굴지에게 꼭 들려줘야 한다며, 비디오와 사진을 보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