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겨울, 특히 델리의 겨울은 12월에서 1월까지 두 달 정도인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첫 인도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특히 집 안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인도의 주택은 난방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남향집이 많은 반면, 인도 집들은 모두 북향이다.
지붕이 없이 옥상만 만드는 네모 상자 모양인 인도의 대부분의 집들은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 여름에 햇볕이 들어오지 않도록 집을 짓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을 가능한 차단하기 위해서다. 대신 집집마다 테라스를 크게 만들어 겨울이 되면 햇볕이 드는 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짜이를 마시곤 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인도 사람들이 왜 밖에서 햇볕을 따라다니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긴 여름을 보낸 인도 사람들은 사리를 입고, 어깨에 두터운 숄을 두르고는 각자 자신의 의자를 들고 햇볕을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따뜻한 햇살과 함께 겨울을 보냈다. 밖에서는 화로 같은 것에 불을 피워 차가운 손을 불에 쬐어 녹이기도 했는데, 이런 풍경은 정겹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겨울 풍경
우리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이게 무슨 겨울인가 싶기도 하지만, 뜨겁고 무더운 10개월간의 여름을 보낸 인도 사람들에게는 무진장 추운 날씨이기 때문이다. 델리의 추운 겨울밤에 도로에서 자던 사람들이 영상 기온에도 동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이 짧은 인도 학교의 겨울방학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더운 긴 여름방학은 두 달 가까이 된다.
겨울에는 아침마다 샤이니를 학교에 데려다주려면 차에 히터를 틀고, 치마 교복을 입은 샤이니 몸에 따듯한 숄을 둘러줘야만 했다. 하지만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올 때는 차에 에어컨을 켜야만 했다. 아침에 히터에 맞췄다가 오후에는 에어컨으로 다시 바꿔야만 하는 인도의 겨울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델리의 겨울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은 여름 햇살처럼 뜨거웠기 때문이다.
하교 길에 몸을 움직여대는 샤이니의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이렇듯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탓에 몸이 약한 사람들은 인도에서 겨울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겨울에는 장티푸스나, 바이럴 피버(Viral Fiver)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에 많이 노출되곤 했다.
샤이니도 인도에서 맞은 첫겨울에 바이럴 피버(Viral Fiver)로 아주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다.
열이 많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샤이니에게 한국에서 가져 간 해열제를 먹이고 달래 보았지만 딸아이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의 몸은 불덩이 같았다. 축 쳐진 몸은 혼자 가누기도 어려워 보였다. 평소에 그렇게 잘 먹고 씩씩하던 샤이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물조차 마시지 않으려 했다. 나는 딸아이가 아프면 꿀물을 타 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꿀물조차 마시려 들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바라보며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샤이니의 눈빛이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러다가 열이 계속 내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혹시라고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겠지?'
'괜히 인도에 데리고 와서, 우리 샤이니 아프고 잘못되면 어떡하지?'
'우리는 어떻게 해요? 주님, 도와주세요. 제발...'
마음이 급해지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샤이니가 이렇게 많이 아픈 적이 별로 없었다. 인도에서 처음 겪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먼저 의사인 샤이니 작은 아빠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우선 제가 준 약을 먹여보고, 안 되면 빨리 병원에 가세요."
그날은 하필 일요일이어서 응급실 외엔 선택이 없었다. 급히 옆집에 물어봤더니, 인도에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자신의 집에서 근무 외 시간에 따로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 의사들이 살고 있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소아과 선생님 댁을 알려주셨다.
일요일 저녁이었지만, 우리는 의사 선생님 댁 대문 앞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다행히 중년의 여자 의사 선생님께서 현관문을 열어 주셨다. 잠시 거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샤이니가 거실 바닥 위에 토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내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나오시더니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씀하셨다.
“그냥 토하게 두세요.”
“네..”
“다 토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애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아이의 등을 두드려줬다.
소아과 선생님 댁의 거실 바닥은 샤이니의 토사물로 가득 차게 되었고, 샤이니는 계속 토해냈다. 계속 구역질을 하는 샤이니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안쓰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샤이니가 안정을 찾는 듯해 보였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다 토해냈으니까요.”
약은 많이 필요 없다며 항생제만 처방해주셨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선생님 댁 거실을 급한 대로 휴지로 닦아 청소를 해드리고는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괜찮겠지만, 아이가 다시 아프면 아무 때나 오세요.”
“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뒤로 샤이니는 정말 감쪽같이 열이 내리고, 몸이 다시 건강해져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너무 아찔해서 앞이 깜깜해지고, 현기증이 나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샤이니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혀 상처가 났을 때, 우리는 또 동네에 사시는 다른 의사 선생님 댁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샤이니를 붙잡고, 울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의사 선생님 댁으로 안내해 주신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서 소독하고 드레싱만 해주셔서 무사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때도 얼마나 무섭고 놀랐는지 하늘이 노랗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는데, 동네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인도의 겨울을 추억하며, 우리와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델리에서 우리는 눈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델리에서 10시간 동안 차를 타고, 히말라야 산으로 올라가야만 겨우 눈 구경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