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머수리에서 보낸 7주

고산 지대에서 보낸 여름

by 샨띠정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놀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인도의 환경적인 요인들 때문에 샤이니는 줄곧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처음 인도에서 밖에 나가는 일에는 큰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했다. 찻길을 건너는 것도, 공원에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외출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인도는 샤이니가 친구를 사귀며 놀기에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감사하게 아비가일과 사무엘 남매는 샤이니와 자주 어울려 놀았다. 우리 집에는 한국에서 가지고 간 장난감들이 있었다. 인도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만지고 싶고, 가지고 놀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샤이니는 누군가가 자기 장난감과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진 내가 샤이니를 달랬다.

"같이 가지고 놀아야지. 한 번만 만지게 해주자."

그런데도 샤이니는 여전히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달래고 구슬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그저 막무가내였다. 당황스러운 엄마의 마음은 전혀 개의치 않는 샤이니가 내심 야속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밖에서 만나면 재미있게 놀곤 했다.


'이제 또래 친구를 사귀며 사회성을 길러야 할 텐데..."

유치원도 보내지 않고 있어서, 내게는 샤이니의 또래 집단과의 놀이가 가장 큰 과제였다.

어느새 델리에 여름이 왔다.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인도의 여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건 물론, 움직일 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얼굴 앞에서 헤어드라이어가 윙 소리를 소리를 내며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고, 사우나 한증막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전기가 수시로 나가서 에어컨을 계속 틀 수도 없었다. 샤워를 하고 싶어도 마음껏 샤워를 할 수가 없다. 아침 수돗물 공급 시간에 물탱크에 받아 두었던 물이 햇볕에 뜨겁게 데워져서 뜨거운 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탓이었다.

차가운 물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은 오히려 쉽지만, 샤워기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물을 식히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여름 동안 7주를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무수리에서 보내기로 했다.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에서 힌디어 공부도 더 집중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발 2300미터에 있는 무수리 랜도르 힌디어 학교는 100여 년 전에 영국 선교사들이 힌디어를 공부하기 위해 세웠는데, 그때도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원들이나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일대일 힌디어 수업을 받고 있었다.


택시에 김치 한 통과 쌀, 옷가지와 부엌 살림살이를 챙겨서 싣고, 10시간을 달려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는 무수리 랜도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아무리 가도 끝없이 펼쳐진 평지만 보이던 길은 어느덧, 꼬불꼬불 산으로 이어졌다. 가로등도 없이 좁은 낭떠러지 길을 따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의 목적지를 찾아 계속 올라갔다. 다행히 샤이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지만, 내게 공포가 밀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 아무도 모르게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히말라야 산꼭대기 마을 머수리의 랜도르

그렇게 무사히 도착한 무수리의 랜도르는 우리가 사용하던 핸드폰 네트워크도 없었고, 인터넷도 연결이 안 되었으며, 산꼭대기 마을이라 대중교통도 없어서 매일 등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야채를 파는 곳도 없었다. 걷기 싫어하는 샤이니를 아빠는 등에다 가끔은 목마를 태워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돌아보면 샤이니와 우리에게 다시 가질 수 없는 빛나는 추억들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랜도르 힌디어 학교

우리는 무수리에서의 7주를 기대하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특별히 나는 샤이니가 또래의 친구를 만나서 함께 즐겁게 놀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밖으로 나갔을 때 한 꼬마 여자아이를 만났다.

샤이니가 반가워하며 아이에게 달려갔다.

내 가슴이 같이 뛰기 시작했다.

"하이~"

"굿모닝~"

"What's your name?"

아이가 물었다.

"Shiny."

"You?"

"Zoe

“Joy”

“No!”

샤이니는 Zoe로부터 ‘조에’도 아니고, ‘조이’도 아닌 발음을 여러 차례의 연습과 교정을 받고 난 후에, 두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샤이니와 나이가 같은 또래 여자아이를 만난 것이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조이는 힌디어 공부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서 왔는데 4 자매 중 막내였다. 언니가 많아서 그런지 조이는 샤이니와 다르게 똑 부러지고 야무져서 샤이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줄곧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다려~ 이건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응, 조심히 올려서 담아 봐."

"응... 알았어."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여기는 올라가도 된다고 했어."

"진짜? 같이 올라가고 싶다."

조이가 미션을 주면 샤이니가 따라 했다.

'샤이니 보다 더 용감하고 활동적인 여자 아이가 있다니..'

난 속으로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두 여자아이는 서로 격려하며 모험을 즐기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산꼭대기 마을에서의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동안 샤이니가 사회성이 부족한 것 같아 나는 적잖이 애를 태웠는데, 조이와 어울리며 달라지는 것을 보자 감격스러웠다.

조이는 우리에게 미리 예비된 큰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좋은 친구가 된 조이와 샤이니

조이와 샤이니는 함께 물놀이를 하고,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에는 함께 소꿉놀이를 하며, 두 아이의 우정은 깊어져 갔다. 샤이니도 어느덧, 친구들을 어떻게 사귀고, 양보하며 놀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서서히 사회성이 길러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각 흩어지게 되었지만, 지금도 샤이니는 가끔 조이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 함께 마음을 나누던 친구를 아직도 잊지 않고 가슴에 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이런 소중한 추억이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 샤이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느린 편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학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이였지만, 항상 마음은 밝고 건강하며, 자존감이 높았다.


앞으로도 계속 조금은 느리지만 자존감이 강하고,

공감 능력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나기를...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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