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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어떤 환승역

앞방 아저씨와 나

by 시언


"야야 이거봐. 별의별 걸로 다 난리네. 봐봐 한번“


나는 제육덮밥을 비비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친구는 눈앞에 휴대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스터디에 늦지 않으려면 한시가 급했지만 친구는 협조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이 한강다리 꼭대기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는 스트레이트 기사였다. 해당 고시생은 지난 3월에도 15일간 단식농성을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끝으로 기사는 마무리 됐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 사람 40대란다. 40대. 한 2~3년 해보고 안 되면 갈아탈 줄도 알아야지. 그냥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거면서 꿈이네 뭐네... 안 그러냐?“


그러게, 맞지, 어어. 대충 친구를 달래며 나는 덜 비벼진 제육덮밥을 떠먹었다. 뜨거운 제육과 밥알이 입천장을 훑었다. 찬물을 들이켰지만 입안은 여전히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뜨거워서, 눈가가 저릿해졌다.




수년전 어느 날, 고시원에서 맞은 첫 새벽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방과 방 사이가 시멘트여서 방음만은 철저하다는 고시원 총무의 너스레가 떠올랐다. 옆방 등 긁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던 한 친구의 말은 허풍이었을까.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컴퓨터 모니터보다 조금 작은 창문으로 새벽바람이 불어와 잠을 깨웠다. 나는 라디오를 틀고 나에게만 들릴만한 크기로 소리를 조절했다. 웅얼거리는 라디오 소리를 배경음처럼 듣고 있으면 잠이 올 것이다. 라디오를 튼지 약 오 분쯤 지났을까. 성마른 노크소리가 들렸다.

"앞방 사람인데요. 시끄럽네요.“


문지방을 앞두고 마주한 아저씨의 얼굴은 불쾌해 보였다. 165cm 내외의 키, 짧게 친 스포츠머리와 군데군데 고개를 내민 새치, 배꼽 높이까지 바짝 당겨 올린 베이지색 면바지, 함부로 위아래를 훑는 눈빛까지. 앞방 아저씨의 첫인상은 호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주워섬기며 나는 문을 닫았다.


그 뒤로도 앞방 아저씨는 종종 내 방을 방문했다. 우리의 대화는 "시끄럽네요"와 "죄송합니다"로만 이루어졌다. 불면증에 뒤척이던 내가 타자를 치거나 물을 마시다 물통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여지없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는 기지개 켜는 소리마저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방 사람들도 듣지 못할 정도의 소음에 왜 아저씨만 유난인걸까. 어찌됐든, 그날도 새벽 4시안에 잠들긴 글러먹은 하루였다.


아저씨를 돌려보내고 침대에 풀썩 누우면 전에 살던 누군가가 천장에 붙인 야광 별 스티커가 보였다. 완전히 꺼진 것도, 밝게 빛나는 것도 아닌 야광별을 보고 있으면 문득 서글퍼졌다. 나는 어떤 별을 잡기위해 여기까지 왔던가. 종종 "나 우울해"라고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으나 기어이 하지 못했다. 푸르스름한 야광별을 노려보며 나는 비통해지는 가슴을 달랬다. 컴퓨터로 일기라도 쓰면 조금 후련해지기라도 하련만. 앞방 아저씨는 집중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고시생입네 유세 떠는 인간일거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앞방 아저씨와 나는 생활 패턴이 비슷했다. 내가 샤워장으로 내려갈 때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올라오는 아저씨가 보였다. 되도록 멀찍이 지나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고시원 통로는 하나뿐인데다 좁았다. 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다른 한 사람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들고 있던 샤워 바구니를 만지작거리며 땅바닥으로 시선을 내리 깔았다. 3주에 한 번꼴로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인의 얼굴을 낮에도 보고 싶진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사이 아저씨는 빠르게 지나쳐 갔다. 아저씨에게선 남루한 홀아비의 냄새가 났다.


고시원에는 아저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졸업이 가까운듯한 대학생과 늘 넥타이를 가슴께까지 풀어헤친 직장인, 머리를 빗는 법이 없는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이 부엌과 화장실, 좁은 복도를 공유하며 생활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씩 같은 사람과 마주친 적도 있었다. 대학교 강의실이나 회사 탕비실 안이었다면 눈인사 한번 정도는 나누고도 남았을 터다. 그러나 원생들 중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 몇번 아는 체를 하다가 무시당한 후론 입을 닫았다. 이상한 인간들만 득실거리는 이곳을 하루빨리 벗어나리라 다짐하면서.


하루는 아는 형에게 전화가 왔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한 학교 선배였다. “너 이사 간 곳 00동이라고 했지? 이따 잠깐 들를게” 갖은 핑계를 대며 난색을 표했지만 형은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그러니 방만 둘러보겠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급히 청소를 시작했다. 겹겹이 쌓인 책장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에 치약을 묻혀 방바닥을 문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쓸고 닦아도 방안 곳곳에 박힌 위화감은 씻겨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누추한 단칸방의 풍경으로 나의 전 존재가 대변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형의 집안에 급한 일이라도 생겨주길 바랐다.


얼마 후 방으로 들어선 형은 생각보단 방이 넓다며 싱긋 웃었다. 방 입구에는 형이 사온 소형 선풍기와 한우 햄버거 세트가 놓여 있었다. 형은 늘 그랬다. 몇 년 전 교양 수업에서 같은 조를 한번 했을 뿐인 후배를 끔찍이도 챙겼다. 여기서 언제까지 지낼 거냐는 질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금방 옮겨야죠.“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요 뭐”


형이 돌아간 날 새벽, 어김없이 찾아온 불면증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방에서 난 소리일까 귀를 기울이는 동안 한번 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앞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옳다구나 쾌재를 부르며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디 당신도 한번 당해봐라. 콧노래가 다 나올 지경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앞방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조용히 해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앞방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는 두꺼운 법학 교재들이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형법의 정석, 헌법개론... 손때로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창문 하나 없는 단칸방의 사면을 메우고 있었다. 아저씨의 방이라기 보단 책들이 사는 방에 아저씨가 세를 든 듯 한 모습이었다. 아저씨는 커다란 박스에 책들을 담는 중이었다. 너울거리는 먼지들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저씨는 눈을 내리깐 채 혼잣말하듯 말을 건넸다.


“시끄러웠죠? 미안합니다."


다음날 아침 고시원 분리수거장에는 누군가 내다버린 고시 교재 수십권이 쌓여있었다. 분리수거 중이던 총무는 이렇게 한 짐을 버려놓고 나가면 자기만 고생이라고 투덜거렸다. 방을 빼는 고시생이 교재를 버리고 가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합격했거나, 포기했거나. 책을 버리고 떠난 사람은 누구였을까. 달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고시원이었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책들의 주인이 앞방 아저씨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앞방 아저씨의 새벽 방문은 없었다. 휴학한지 1년이 넘어갈즈음 나는 고시원을 나와 대학 기숙사로 복귀했다.




어느 소설가는 말했다. 환승역에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다고. 각자의 사연과 꿈을 따라 고시원으로 흘러든 우리는 벌집처럼 촘촘한 방안으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다음 버스에 타게 될 사람은 자신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우리는 지금의 초라함과 남루함을 견뎠다. 고시원 사람들이 서로를 못본체 한 것도, 선배 형의 집들이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환승역에 선 채 버스를 기다리는 나의 초라함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랐. 이미 만원인 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해 엄격해지고 또 치사해져야 했다. 수십 명이 살던 고시원이 그토록 고요했던 이유도, 앞방 아저씨가 조그마한 소음도 용납할 수 없어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수년이 지난 지금도 고시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앞방 아저씨를 떠올린다.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다른 환승역으로 옮겨 갔을? 거기선 버스에 올라탔을까?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앞방 아저씨’들이 각자의 환승역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 누군가는 버스를 탈 것이고 나머지는 쓸쓸히 다른 환승역을 향해 걸음을 옮길 것이다. 버스의 종착역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금 늦더라도, 우리 모두가 각자의 종착역에 닿을 수 있기를, 그런 세상이기를 소망하며 나는 제육덮밥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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