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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독서가 두렵다던 당신에게

겨우 책인걸요 뭐

by 시언
“야야, 그거 그래도 돼?”
“왜 뭐가?”


친구는 당황한 같았습니다. 갓 끓인 라면 냄비가 뜨거울텐데도 친구는 발만 동동 구르며 망설이더군요. 아무래도 식탁 정중앙에 놓은 책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파우스트』, 대문호 괴테가 쓴 인류의 고전이 라면 냄비 밑에 깔리는 현실을 친구는 인정할 수 없어 했어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식탁 주위를 배회하는 친구에게 냄비를 뺐어 책(그때는 받침) 위에 올렸습니다. ‘이런 몰상식한 놈이랑 친구라니...’하던 친구의 눈빛이 지금도 선하네요.


저는 저대로 억울했습니다. 친구는 “아 뜨뜨뜨”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고, 제 자취방에 가장 흔한 건 책이었으니까요. 지 뜨거울까봐 서둘렀더니 돌아온 게 비난 서린 눈동자라니. 『파우스트』는 라면받침 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 책 좋아하는 놈이 별일이라며 중얼거리는 친구에게 저는 젓가락을 건네며 타일렀습니다.


“야. 겨우 책인데 뭐”




약 1년동안 독서 동호회의 임원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총 회원수가 200명을 넘었으니 동호회치고는 큰 편에 속했죠. 신입 회원들에게 나는 인사 차원에서 가입동기를 묻곤 했습니다. “혼자만 읽으니 심심해서요” 정도의 답을 기대하면서요. 예측은 늘 빗나갔습니다. 열에 아홉의 대답은 전부 “제가 책을 너무 안 봐서요...”로 동일하더군요. 무슨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숙인채로요.


동호회(同好會)는 한 가지 ‘동(同)‘자에 좋아할 ‘호(好)‘자를 씁니다. 같은 한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거죠. 당구 동호회에 온 사람은 당구를 좋아하거나 최소한 관심 정도는 있다는 뜻이 될 겁니다. 그러나 독서 동호회는 달라요. 제 경험상, 독서 동호회는 다른 동호회와 달리 ‘부채감’을 동기로 삼는 회원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당구를 너무 안쳐서요...” 같은 가입동기는 상상할 수 없지만, “책을 너무 안 읽어서요..”는 어딘지 말이 되는 것 같지 않나요? 책을 즐기기는커녕 관심도 없지만,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이 그들의 등을 세차게 떠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리나라는 책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명사나 기업인 인터뷰만 봐도 어지간하면 책장을 배경으로 삼는 경우가 많죠. 라면받침이 된 『파우스트』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제 친구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독서를 ‘숙제처럼 열심히’ 하는 친구였거든요.



“ Ego sum operarius students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
- 한동일, 『라틴어 수업』 82p

방금 세보니 제 방에는 총 62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 중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건 15권을 겨우 넘기는 정도입니다. 책을 꽂아 두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책을 꽂으면 어지르기 싫어서 결국 안 보게 되더군요. 1년에 한번 펴볼까 말까 한 책들만 책장에 꽂혀 있고 나머지는 책상과 침대 머리맡에 산재해 있습니다. 손 가는대로, 눈에 띄는대로 집어 읽다보니 가끔은 찾던 책이 이불 속에서 나올 때도 있더군요. 이 모든 건 “책은 도구다”라는 제 신념 때문입니다. 책은 더 좋은 삶을 위한 작업에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도구와 친해지려면 늘 손에 닿는 곳에 두고 부지런히 만지작거려야 할 겁니다. 마음대로 줄도 긋고 낙서도 하고, 가끔은 냄비 밑에 받치기도 하면서요.


책을 너무 대단하고 신성한 것으로 생각해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들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인생의 진리가 든 지식의 보고가 널려 있음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며 자신을 삼엄하게 학대하는 분들도 여럿 봤고요. 그분들만의 탓은 아닐 겁니다. 그간의 한국 교육은 책과 친구를 맺어주기보다는 무조건 읽으라 명령해 온 편에 가까웠죠. 모든 어른들이 책을 읽으라고 했지만, 독서의 당위와 장점에 대해 가르쳐준 어른은 없었습니다. 어른들 그 자신도 책을 불편해하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든 책을 경외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아이러니랄까요.


누군가 독서 고민을 토로해 올 때마다 저는 한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힘 좀 빼셔도 되요. 겨우 책인데요 뭐”라고요. 한두권으로 인생이 뒤바뀌는 일은 없으니, 그냥 책과 친해져 보라고요. 손 가는대로 꺼내읽고, 지루하면 다른 책을 뒤적이기도 하면서요. 책과 나의 사소한 우정이 크레페 케이크처럼 쌓일 때, 비로소 뭔가가 변할 거라고. 너무 대단하고 잘 나셔서, 매번 정장을 차려입고 만나야 하는 친구와 친해지기란 요원할 겁니다.




독서로 너의 저질 인생을 개조하라 부추기는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집니다. 어떤 저자는 365일 동안 365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강변하기도 하더군요. 음미되지 않은 삶이 가치가 없듯, 음미하지 않는 독서에 무슨 효용과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꾸역꾸역 책을 읽는다고 단번에 역전될 만큼 우리들의 인생은 만만하지도, 시시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애학 개론서를 수십권 읽는다고 사랑의 천재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언제나 인생이 우선하고 책은 그 인생을 조각하기 위한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서가 주는 자기계발의 효과를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모 서점의 슬로건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독서만큼 다층적인 지식과 감정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죠. ‘이래서 책을 읽으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매혹적인 독서가들을 우리는 한두명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는 너무 대단한 행위여서 감히 시작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에게 저는 책을 조금은 막 다뤄도 좋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마음껏 밑줄도 긋고, 제멋대로인 단상들을 끄적여 보기도 하고, 읽다 지겨우면 던져두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책이 지저분해지겠죠. 하지만 뭐 어때요.


겨우 책인걸요 뭐.


사람이든 책이든, 친해지는 게 뭐 다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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