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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인사가 늦었습니다. 시언입니다.

구독자 3,000명 감사인사.

by 시언

오랜만입니다. 꼬박 한 달을 고민한 첫 문장인데, 써놓고 보니 시시한 첫 문장이네요. 어떤 말로 시작해야 옳았을까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날은 종일 면목이 없었고, 어떤 날은 몇 번씩 미소 지으며 감사했으니 두 말 모두 정당한 저의 진심일 것입니다. 진심을 쏟아놓고자 시작한 글인만큼 어지럽고 갈팡질팡하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듭니다. 하지만 저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 같네요. 이 글은 어지럽고 갈팡질팡 해온 시간에 대한 글입니다.


브런치 앱의 진동은 문자 메시지가 왔을 때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징-지이잉. 새로운 구독자의 탄생을 알리는 짧고 긴 진동이 제 손안에서, 바지 뒷주머니에서, 베개 옆에서 무시로 울렸습니다. 오늘부로 정확히 3,036번을 진동했을 구독자 여러분의 존재감은 기진한 저를 기어이 키보드 앞으로 몰아세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자판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마냥 노려 보았습니다. 지금의 내겐 글을 쓸 힘도, 쓸 수 있는 말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시인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지 않듯이, 글을 쓰지 못한다 해서 여러분들을 잊은 적 없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 진다”. 제겐 구독자 여러분들의 존재가 그 짐이었습니다. ‘해야할 일’을 간신히 끝마치고 쓰러지듯 방바닥에 누울 때면 ‘글을 써야 한다’는 또 하나의 짐이 도리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잘 시간을 줄여 책에 밑줄을 그었고, 두 끼 식사값인 현재 개봉작 리스트를 닳도록 들여다 보았습니다. 왜였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데.


브런치에 쓸 글감을 고민하는 잠시 동안, 저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작가다. 내겐 내 글을 기다리는 3,036명의 구독자들이 있다. 이 생각은 평준화하고 수량화하길 좋아하는 세상에 대한 방어기제였을까요, 아니면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 중에서 굳이 저를 택해준 구독자분들에 대한 의무감이었을까요. 분명한 건 책장을 뒤적이며 글감을 찾는 찰나의 시간동안 저는 행복했다는 사실뿐입니다.


구독자가 100명도 안되던 시절부터, 구독자 3,000명이 되면 한번쯤 구독자 분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막연히 꿈꿔 왔습니다. 물론 모든 구독자들이 저의 팬이라고 믿을 만큼 철없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심심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추천 작가에 간혹 뜨길래 구독했다고 답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글을 받아보겠다고 결정한 3,000명 중 한두 명쯤은 내 글에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진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들과 맥주 한잔 사이에 두고 앉아 책과 영화와 글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밝히면 좋겠다. 막연했지만 떠난 적 없는 이 꿈의 실현을 아쉽지만 다음으로 기약하고자 합니다. 역시 삶은 녹록치 않고,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까닭입니다. 그 다음이 왔을 땐, 제가 여러분께 한잔 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나, 구독자 여러분께선 오랜 시간 동안 제 자존감을 지탱해 준 한 축이셨으니까요. 지난 2년 간 감사했습니다.


이런 류의 감사인사를 전할 때, 크리에이터는 더 유익한 영상으로, 상인은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 약속하는 것이 오랜 관례죠, 자주 찾아뵙겠다는 약속도, 좋은 글을 써내겠다는 다짐도 할 수 없는 제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과 읽는 이의 마음을 1cm라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는 초심만이 남았습니다. 다음 인사 때는 티없는 웃음과 모셔서 대접하고자 한다는 초대의 말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늘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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