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완독의 이유, 올리버 색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씨! 거 좀 조용히 좀 하세요!”
의사의 호통은 느닷없었다. 그의 짜증 섞인 미간은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귓구멍을 메운 의사의 소형 메스에서 한기가 전해졌다. 내 왼쪽, 그러니까 내 할머니의 맞은편 모니터엔 그의 메스에 찢긴 채 검붉은 피를 토하는 내 귓속 혹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70대 노인에겐 너무 잔인한 장면이라고, 초등학생인 나는 상상했다.
귀가 먹먹하다는 손자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30대를 갓 넘겼을 의사는 ‘혹이 있다’는 외마디와 함께 곧장 메스를 들었다. 시술은 어떻게 이뤄질지, 마취는 할지, 아물 때까진 얼마나 걸릴지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말해봤자 노인네가 뭘 알겠어, 라고 넘겨 짚었을지 모를 일이다. 환자에게 당연히 고지됐어야 할 그 정보들을 할머니는 이미 수술을 시작한 의사에게 초조하게 물었다. ‘아이고 선생님 우리 애기...’로 시작하는 초라한 노인의 질문이 그로선 같잖고 성가셨을 테다. 감히 신성한 의술을 집도하는 와중에.
그 순간 업어키운 손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 자신이 아닌 의사였다. 의사의 준엄한 지시대로 할머닌 두 손을 꽉 그러쥔 채 입을 다물었다. 노인 공공 일자리를 다니며 거칠어진 손가락이 모욕감에 하얗게 질렸다.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지금도 나는 그 의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바드득 가는 어른이 됐다. 그날 내 마음 속 어딘가가 뒤틀리고 말았겠지. 후천적 역린이랄까. 되도록 그렇게 이해하며 살아왔다. 딴 건 다 참아도 의사에게 받는 냉대만은 참을 수 없어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기 전까진 말이다.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형을 좋아했어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노회찬 전 의원 추도사 中
올리버 색스란 의사. 그 역시 완벽한 의사는 아니라고, 이번이 4번째인 완독을 끝내며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책 속 환자들 중 그가 고친 환자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의 저술 목적이 자신의 의술을 뽐내는데 있지 않다는 점과 그가 유달리 겸손한 의료인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완벽한 의사’라는 타이틀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올리버 색스란 의사를 아주 좋아하고, 그의 환자들에겐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왜일까. 난 그 비결이 그의 ‘후회’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상상이지만, 피로에 절은 어떤 의사의 눈엔 환자가 질병이 담긴 패트리 접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어디 의사 뿐인가. 나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언제나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될 것 같은 사람들만 골라서 퉁명스럽게 굴어본 적, 타인의 사정이야 어떻든 1초라도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했던 적,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너무 자주 그랬다.
내가 올리버 색스란 의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완벽한 의사여서가 아니라 그가 ‘후회’할 줄 아는 의사여서다. 환자를 대할 때 취했던 언행이 적절했는지, 난 뭘 더 잘해낼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을지 고민하고 후회하는 의사여서 그를 좋아한다. 환자 하나하나마다 소설 뺨치는 ‘희한한’ 케이스라는 사실에서 오는 놀라움은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을 때 이미 그 빛을 바랬다. 거듭된 재독의 이유는 세상엔 이런 의사도 있다는 사실의 발견에서 오는 훈훈함과, 나도 언젠가 대항할 길 없는 병마에 빠졌을 때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길 바라는 기대감에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향한 질투의 연유다.
20년 전 그 의사는 그날 우리 할머니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후회했을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증오는 누구보다 증오를 품은 당사자를 소진시킨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그 역시 ‘그 할머니한테 그러면 안됐다’고 후회했길 바란다. 좀 더 친절했어야 했는데, 하고 다 식은 소주를 홀로 들이키는 초라한 밤을 보냈길 바란다. 그런 일말의 기대감만으로도 나는 그를 덜 미워할 수 있다.
그 초라한 후회의 밤을 나는 충분히 보내고 있을까. 좋은 인간을 향한 길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