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한국의 결혼율과 출산율은 공익광고 속 북극곰과 비슷한 처지라고 오래간 생각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데, 북극곰이 앉아 쉴 얼음까지 없어져서, 휴식 없이 수영하던 북극곰들이 익사하고 있다는 취지의 광고들. 문제가 심각하다는 대안 없는 경종을 듣고 산지 너무 오래인 나머지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되려 적어지는 그런 문제.
그럼에도 역시 인간이란 자신의 문제에서만은 객관적일 수 없는 것 같다. 남들 다 못하겠다고 아우성인 결혼을 나만은 언젠가 하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걸 보면 말이다. 평범한 여성 직장인이 잘생긴 재벌 3세의 옷에 커피를 쏟는다는 식의 드라마 클리셰를 조소하면서도, 정작 내 미래에 대해선 별반 다르지 않은 판타지를 간직했다. 이게 정녕 한 사람이 갖춘 덕성이 맞나 싶을만큼 다 갖춘 사람이, 하필 나와 사랑에 빠져서, 내 쪽의 비루한 조건에는 유독 너그러운 마음으로 결혼을 약속하겠지. 나도 언젠간. 막연히 그리 믿었다.
자기객관화의 시작은 수개월 전 소개팅이 연속으로 망한 뒤 귀가길에서였다. 어쩌면 ‘망했다’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았다. 망했다는 말은 잘해보려던 노력이 좌절됐을 때 쓸 수 있는 단어다. 내가 애프터를 신청하는 일도, 설령 한다 해도 상대 쪽이 응하는 일도 없으리란 사실을 우리 두 사람 모두 만난지 10여 분만에 깨달았다. 요컨대, 둘 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테이블 밑 두 다리를 배배 꼬았다는 뜻이다.
역시나 집에 도착할 때쯤 ‘좋은 분이신 것 같지만’으로 시작하는 예의 그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나 또한 ‘좋은 인연 만나시길 바랍니다’로 끝나는 말로 답했다. 데자뷰인가 싶기도 했지만, 며칠 전 사실상 이와 동일한 메시지를 다른 여성과 주고받은 기억이 실제로 있었다. 이런 것도 데자뷰라고 칠 수 있나. 같은 연극 대본으로 다른 회차의 공연을 마친 기분이군. 그런 하나마나한 생각을 하다 잠들었던 기억이다.
“그 후 그들은 툭하면 고독해서 그러는 거야, 엉뚱한데다 그 말을 쓰곤 했는데, 버스 뒤꽁무니를 바짝 따라가는 자전거 선수이든, 로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순경의 경우든 (...중략...) 모조리 그럴싸 한데는 놀라고 만다”
- 최인훈, 『광장』 中
우리들은 대단히 역설적인 세대다. 그 어떤 세대보다 결혼이란 전통의 의무에 적대적이면서, 한편으론 소개팅앱이나 결혼정보회사에 수십 만원을 쓰는 게 점차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꼰대식’ 회사 내 허례허식에는 진저리 치면서, 결혼식과 신혼집만큼은 앞선 그 어떤 세대보다 번듯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세대다. 이 모든 역설을 한심하다는 듯 관조하는 체하는 나도, 불과 얼마 후면 소개팅 상대 앞에서 수컷 공작새마냥 꼬리를 최대한 부풀리고 있을 것이다. 나와 우리는 그런 세대다.
매사에 나름의 논리적 해석을 덧붙이지 않곤 못 견디는 내겐 이 모든 아이러니가 버겁기만 하다. 사는 게 원래 이렇게 엉망진창인 걸까 답답하다가도, 『광장』 속 이명준처럼 ‘고독해서 그러는거야’하고 혼자 뇌까리면 또 나름 납득이 되는, 그런 이상한 요 며칠이다.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