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삶이야. 이게 겨우 삶이야”
시를 읽은지는 오래되었다. 오래였다는 사실조차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을만큼 오래였다. 물론 시답잖은 변명거리는 있다. 극도의 언어적 정밀성을 요하는 직업으로 얻은 피로감이 시어(詩語)를 음미할 만큼의 여유를 허락지 않았고, 그간 시를 사랑해 얻은 것이라곤 잠들기 전 센치해져 버린 두어시간 뿐이었으며, 기탄없이 시에 관해 논할 수 있는 친구라는 형상은 결국 망상에 불과했다.
20대의 나는 꽤 시를 사랑하는 청년이었던 것 같다. 동아리조차 취업·공모전 동아리에 들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를 끼고 다녔고, 이등병 시절 군복 건빵 주머니엔 그해 신춘문예 당선 시들이 필사된 노트를 두세권씩 우겨 넣었다. 휴가 때 맵시를 위해 건빵 주머니를 플랫하게 다림질하던 동료병사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런 몰골이었다. 물풍선이라도 든 듯 늘상 터질 듯 부풀어있던 내 군복 건빵 주머니는 필사 노트가 빠져나간 후론 속절없이 늘어져 있다.
상병쯤엔 삼사관학교 주최였던 군(軍) 시 공모전서 입상하기도 했다. 당시 날 탐탁찮아 하던 모 지휘관은 이 사실이 대대장 귀에 들어가 내게 포상휴가가 내려질까 속을 태웠다고, 전역 즈음 전해 들었다. “상관에게 보고도 없이 상만 받아오면 칭찬들을 줄 알았냐”던 냉소만은 지금도 기억한다. 일과 후 홀로 완전 군장에 연병장 100바퀴를 돌면서, ‘100바퀴 다 돌았다고 보고해줄테니 그만하라’던 아무개 중위의 만류를 고집스레 거절하며, “이게 삶이야. 이게 겨우 삶이야” 최면걸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시를 사랑한 게 아니라, 필요로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왜였을까. 가슴 속에 시 한자락이라도 품어야 숨이 쉬어질 것 같던 나의 20대.
시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사랑 그 자체 또한 내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것이었다. 복학생의 사랑이 다 그렇다고 눙치기엔, 꾸준히 사랑에 서툴렀다. 신형철의 전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머리말처럼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처럼 연애에 임했으나, ‘정확히 사랑했고, 사랑 받았다’고 자신할만한 애인이나 연애는 없었다. 그들에게 또한 그저 그런 인연이었으리란 생각이다.
웃긴 건, 실연의 상실감, 나만 아는 트라우마처럼 쉽사리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의 공감을 구할 때 가장 ‘정확했던’ 묘사들을 시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황지우 〈뼈아픈 후회〉), “스물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서정주 <자화상>),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이바라기 노리코 <자기 감수성 정도는>) 모두 그랬다. 가장 내밀한 감정과 비밀, 욕망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문장이 하필 가장 난해하다고 지탄받는 형식인 시(詩)안에 있다는 역설. 가끔, 정말 가끔씩 숙제하듯이라도 시를 읽는 이유다. 무의식 속 변두리의 언어일지언정, 아니 감추고 은폐된 내 안의 언어일수록 표현하고 공감받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글을 마치고보니 사놓고 읽지 않은 시집 몇 권이 보인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도 잊었으면서 사모으고 있었다. 이번 주는 숙제하는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