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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Mar 28. 2017

<암살교실>: 여기가 끝이 아니야

행복과 성장에 관한 은유


 졸업을 맞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1년 간 함께한 담임 선생님에게 잊지못할 작별을 선물하고 싶어했다. 손재주 있는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분필로 '담임 선생님 사랑합니다' 따위의 문구를 칠판에 새겼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아이들과 담임 선생님 간 작별의 축복이 오갔다. 그리고 내겐, 이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쉼없이 눈물을 훔치며 서로를 끌어안는 그들을 보며 나는 그들과의 좁혀지지 않는 괴리감을 재확인했다.


 "내 반에서 모든 대학에서 떨어진 학생은 용납할 수 없어"

 고심끝에 상향지원하겠다고 밝힌 내게 담임 선생님이 한 말은 '스승'이라는 오래된 신화를 깨뜨렸다. '내 반''용납'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내 뜻대로 지원한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말을 아끼는 인간이 되. 추락한 교권등에 대해 토론할때면 '선생님'이라는 대신 '교사'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가르쳐야 했고, 가르친 걸 배웠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필요에 의했을 뿐이므로 미워할 것도, 아쉬워 할 것도 없다고 믿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모교에 발길을 끊었다. 시골 본가를 찾을때도 학교만은 고집스레 외면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나 어른들은 서울에도 차고 넘쳤다. 보고싶은 선생님이 있는것도, 교실에 정이 남은것도 아니었다. 내가 찾아간다고 해서 반가워할 사람이 있기나할지도 의문이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형식적인 인사 몇번과 잡담으로 끝날, 사랑도 미움도 없는 관계. 내가 느낀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그정도였다.


출처 = <암살교실> 캡처

  "그럼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살선생(殺先生)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쿠누기가오카 3학년 E반 학생들은 숨겨놓은 총을 들어 쏘기 시작한다. 호흡은 거칠고 총구는 흔들리지만, 죽이겠다는 의지만은 진짜다. 너무 촘촘해 벽처럼 보이는 탄막(彈幕)을 마하20의 속도로 피하면서도 태연히 출석을 부르는 괴물이 E반의 담임이다.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을 죽여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선생이 지금으로부터 1년 후, 지구를 폭파시키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 1년간 E반의 담임이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 괴물의 목숨값으로 100억엔(1000억원)을 걸었다.

 

 E반 학생들의 암살은 다급한만큼 허술하다. 명문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의 수치로 불리는 문제아 E반 학생들에게 암살은 하나의 동아줄이다. 담임을 자처하는 이 괴물만 죽이면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돌아갈 수 있다. 칼을 쥔 학생들의 눈은 인정을 향한 갈급함과, 나 따위가 성공할리 없다는 자조적 확신으로 뒤섞여 복잡하다. 만약 암살이 성공해 그들이 E반을 떠나면 또 다른 낙제생들이 E반으로 유배될테지만 알 바 아니다. 함부로 휘둘러진 칼날은 번번히 타겟을 빗겨간다.


 교실에 넘실대는 살의(殺意)에도 불구하고 살선생의 교무 일과는 빡빡하다. 흔들리는 칼끝을 교정해주며 다음에는 좀 더 침착하라고 충고하고, 반성적을 끌어 올리기 위해 학생 한명마다 따로 문제지를 만들어준다. 수류탄을 목에 걸고 안겨오는 학생도 기꺼이 안아준다. 정부의 저격수가 심장을 겨누는 건 웃고 넘겨도,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쫓아서라도 처단한다.  살선생이 이 지난한 노력을 지속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선생님이니까요".


 1954, 하와이 카우아이섬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종단연구(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연구)가 시작된다. 당시 카우아이섬 주민 대부분은 전과자이거나 알콜중독등 정신질환자였다. 연구자들은 가정환경, 사회, 경제환경 등이 개인의 행복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싶어했고, 연구는 아이들이 30세가 될때까지 계속됐다.


심리학자 에이미 위너는 이 중 성장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201명의 아이들을 '고위험군'으로 따로 분류하고 집중추적 했다. 그 결과 고위험군 아이들의 약 35%가 학생회장에 당선되거나 대학 장학생이 되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했음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상식과 어긋나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를 지속했다.

 

 고위험군 출신임에도 모범적으로 자란 아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의 주변에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주는 어른이 최소 1명 이상 있었다는 점이다. 부모나 학교 선생님, 동네 주민.. 누구라도 상관 없었다. 자신에게 조건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어른들과 교류하며 자란 아이들은 재앙에 가까운 환경 앞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출처 = <암살교실> 캡처

"선생님에게 '버린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믿고 뛰어내리도록 하세요."

                                                                                                                                               - <암살교실>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살선생의 노력은 문제아 E반을 변화시켰다. 1년간의 암살교실 생활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건 사격이나 격투술 따위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배운 건 '여기가 끝이 아니다'는 단순한 명제였다. 시험에 낙제해도, 암살에 실패해도 괜찮다. 끝까지 나를 지지해줄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변한다. 고민의 하중이 힘에 부칠때면 선생님을 찾아가 털어놓으면 된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고 말해줄테니까.




 <암살교실>이 끝난 후 나는 고3반은 처음 맡아본다는 말로 조례를 시작했던 담임 선생님을 생각했다. 현실은 <암살교실>이 아니다. 현실의 선생님은 마하 20의 속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학생의 표정만 보고도 어떤 조언이 필요한지 알아맞추는 선견지명도 없다. 불완전한 나의 조언이 아이들에게 갖는 무게감에 짓눌리면서도 늘 초연해야 한다. 그는 아이들의 선생님이니까.  


 내가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그리고 내 학생이 자신을 믿어달라며 상향지원만을 고집한다면?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네 선택을 믿겠다'라며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줄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거다. 나의 말 한마디가 학생에게 갖는 무게감을 생각했을 것이고, 나로인해 뒤바뀔지 모르는 학생의 앞날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을터다. 반면 '안전하게 지원해라'처럼 판에 박힌 조언을 하면 꼰대가 될지언정 최소한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선생님도 나처럼 두려웠던거다.


신뢰 늘  두려을 동반한. 나중에 배신당하지는 않을까, 지금은 신뢰보단 비판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패의 책임이 나한테도 돌아오면 어쩌지.. 염려는 끝이 없다. 그러나 <암살교실>과 카우아이섬 실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보이는 신뢰의 제스처만이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가능케 한다고 증언. <암살교실>은 묻는다.


당신은 과연 누군가에게 조건없는 신뢰를 보여온 사람이었는가.


* 배경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rrhc0528/220739396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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