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버드맨>;끝나지 않는 연극, 인생

by 시언


너 자신이 되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CF, CM, 자기계발서 표지 등 어디에서나 너 자신이 되라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헌데 이 말을 비틀어 보면, 일부러 애쓰지 않는 한 우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아닌 상태로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묘한 표현이다. ‘내가 아닌 나라니. 오늘 다룰 영화 <버드맨>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적나라한 초상이다.


알코올 중독, 이혼한 아내, 약물중독인 딸, 바닥난 돈까지.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왕년의 톱 배우 톰 리건은 막다른 길에 몰려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리건이 견딜 수 없는 건 사람들에게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20년 전의 구닥다리 히어로는 이제 흔해 빠진 추억의 편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경쇠약 직전의 리건은 과거 잘 나가던 자신의 모습, 버드맨의 환청에 시달린다.


수세에 몰린 리건은 천재 작가 故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란 작품을 연극화하고 주연 겸 감독을 자청한다. 그로선 인생 막바지의 마지막 승부수인 셈. 하지만 연기의 진실성 운운하며 삐딱하게 구는 상대배우부터 당신의 연극을 부숴버리겠다며 협박하는 평론가 등등...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비협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리건은 구르고 깨지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그는 연극을 포기할 수 없다. 연극이라는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연극은 그저 다시 사랑받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허물어져 가는 일상을 부여잡고 그는 꾸역꾸역 연기를 지속해 나간다. 이 죽일 놈의 사랑. 그의 심정은 그가 연출한 연극의 대사에도 절절히 나타난다.


헌데 흥미로운 점은, 연극의 백 스테이지, 즉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실제 생활 역시 다분히 연극적으로 연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대배우와의 우스꽝스러운 격투, 아무도 없는 방에서 보이지 않는 청중이라도 있는 듯 독백을 중얼거리는 장면을 볼 때 관객들은 마치 또 한 편의 연극을 보는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연출 기법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인간은 세계라는 무대에서 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무대요, 우리 인간은 무대 위에 선 배우이다’
- by. 월리엄 셰익스피어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결과적으로 ‘거짓말’에 불과하므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연기가 아닌 실제 생활에서 정상적인 성인들은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이나 할까? 놀랍게도 약 200번 내외라고 한다. 연기해야 할 배역도 없는 일반인들이 이토록 많은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야 간단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라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 없는 친구가 못 보던 사이에 살이 더 쪘다며 이죽거려도 곧장 주먹을 날릴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30분 전까지만 해도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화를 내던 상사가 다가와 내 맘 알지?’라며 어깨를 토닥거려도 뿌리칠 수는 없다. 대신 상냥한 미소와 함께 상사의 눈을 마주 보며 그럼요. 잘 알죠라고 답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가 이 모든 수모와 피로를 견뎌내는 이유, 리건이 주위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연극을 포기할 수 없는 절실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사랑받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사랑받고 싶지 않다면, 200여 개의 죄책감들을 감수해가며 '나'를 연기해야 할 이유 역시 사라진다.


영화 후반, 리건은 총으로 자살하는 연극 장면에서 실제 총으로 자살을 시도해 자신의 코를 날려 버리게 되고, 이를 리얼한 연기라 받아들인 관객과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게 된다. 인정받기를 포기한 순간 인정과 관심이 찾아오는 삶의 아이러니. 헌데 성형 수술 후 얼굴에 붕대를 감은 리건의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맞다. 영화 내내 리건을 괴롭히던 리건의 화려한 과거, 버드맨을 쏙 빼다 박았다. 리건은 다시 한 번 버드맨이 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리건은 병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뒤이어 들어온 딸이 창문 밖을 살피다가 허공을 보며 미소 짓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신경쇠약이던 리건은 그간의 압박감에 굴복하고 기어이 자살했고, 약쟁이인 딸은 약기운에 취해 환각상태인 채로 피식한 걸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시 한 번 날아오른 것이다. 세계라는 넓은 무대를 향해, ‘라는 지긋지긋한 배역을 향해.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사랑받기 위해서 그는 기꺼이 날아오른 것이리라.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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