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론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미학자 진중권 교수에 따르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감상자들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분석적 감상자’들이다. 분석적 감상자들은 작품 속에 숨겨진 여러 상징들을 찾아내고, 그 상징들이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들을 찾아내며 희열을 느낀다. 사건 그 자체가 주는 정서보단 사건이 던지는 지적 도전을 즐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셜록 홈즈에 비견될 만하다.
두 번째는 ‘정서적 감상자’들이다. 이들은 작품을 분석하기보단 작품 자체가 주는 감정적 울림에 온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작품을 보며 웃고 울고 전율한다. 작품에서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자신을 내맡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그 유명한 미치광이 기사, 돈키호테와 비슷한 부류다.
내 경우에는 전자에 가까운 감상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작품 앞을 떠나면 쉽게 휘발되는 감정에 비해, 추리를 통해 알아낸 지적 결과물들은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몇 년이고 내 곁을 지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생각일랑 저 멀리 던져두고 작품 자체의 정서에 온전히 취하고 싶은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로맨틱 장르로선 유일하게, <어바웃 타임>이 내게 그런 작품이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대대로 (과거에 한해서지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주인공 팀. 돈 같은 쓸데없는 것들 말고 진정 네가 원하는 것에 능력을 사용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그는 여자친구, 즉 ‘사랑’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남들은 이 대답을 듣고 유치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상당히 공감되는 한 마디였다. 우리네 인생에서 사랑을 빼고 의미 있는 것이 뭐가 그리 많던가. 돈? 명예? 나를 찾으며 끝도 없이 울려대는 카톡 메시지들?
심리 상담가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어보면 그런 것들이 행복의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 허무감 등을 호소하며 상담소를 찾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누군가가 없다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으니까.
그런 그 앞에 거짓말처럼 운명의 그녀, 메리가 나타난다. 수풀 속 이름 모를 들꽃처럼 상냥한 미소의 소유자인 그녀에게 팀은 완전히 매료된다. 모든 사랑의 과정이 그렇듯이 메리를 향한 팀의 사랑도 몇 번의 위기를 맞지만 팀은 자신의 시간 여행 능력을 몇 차례 남용(?)하며 결국 메리의 사랑을 얻어낸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는 별개로 <어바웃 타임>은 ‘시간’ 그 자체에 관한 메시지 역시 담고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 나름의 답이라고나 할까.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여행들을 거쳐 온 결과, 팀은 ‘시간 여행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치 오늘을 다시 살기 위해 돌아온 시간 여행자처럼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갈 것. 그 충만한 현재들이 모여 이뤄진 인생이라면 인생이 끝나갈 때도 평온히 지나온 삶을 반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팀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평온히 삶을 정리해가는 팀의 아버지는 ‘시간’에 관한 감독의 이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에만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는 ‘신은 죽었다’는 명제로 유명한 철학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닮아 있다. 영원회귀란 쉽게 말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가정 하에 살아가라는 주장이다. 만약 오늘 별생각 없이 마신 물 한잔을 100번을 환생한 후에도 정확히 같은 시간, 같은 동작으로 다시 마셔야 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순간순간의 다양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충만하게 느끼려 노력하지 않을까?
<어바웃 타임>이 웰메이드 영화인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을 보완하고도 남는 연출력이다. 원래 그 공간에서 나오던 음악인양 귓가에 조용히 내려앉는 OST들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배우들의 연기력, 미소 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익살들까지. 이 모든 요소들을 시의적절하게 배합해 낸 감독의 연출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절대다수의 로맨틱 장르물은 사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에선 누군가 우연히 부딪쳐 커피를 쏟은 것을 인연으로 사랑이 시작되거나 하는 일은 없으며, 혼전임신 소식을 식사 자리에서 당당하게 밝히고 박수와 축복을 받는 일도 없다. <어바웃 타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허나 이 비현실성이 <어바웃 타임>이란 작품의 흠이 되진 않는다. 뭐가 문제인가. 영화를 보는 동안 마냥 행복했고, 또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이름 모를 그녀(혹은 그)와의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고 싶어 졌다면 그걸로 된 거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