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시선: 낯선 골목에서 만난 불빛

헤매다 멈춰진

by 박희남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걸으면 순간의 상황들이 슬로모션처럼 나를 스쳐간다.

나는 주변에서 인정할 정도로 심각한 길치인데

길치인 나는 특히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을 때에

확실히 길을 덜 헤매게 된다.

길을 헤매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길을 덜 헤매기 위해 걸으며 주변을 살피는 것이 좋았고 유익했다.


'길치'라는 것이 나를 많이 성장시켰었다.


길을 자주 헤맨다는 것은 많은 것이 불편하다.

일정에 맞춰 이동해야하기에 서둘러 움직여야 하고

방향을 잃었을 땐 거리의 타인들에게 길도 물어야 한다.

한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3번 정도는 걷다 멈추길 반복하며 방향을 묻기도 했다.

지인들과 어떤 장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설프게 아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함구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길을 잘못 들었다면 되돌아가야 한다.


이런 생활이 단순 1~2년의 일이 아니다 보니,

부지런히 준비하여 약속시간엔 많은 비율로 일찍 도착하고

'도를 아십니까?'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예의 있게 길을 물어볼 수도 있다.

어설프게 아는 것에 대해 섣불리 발설하지 않는 지혜도 생기고

방향이 맞지 않을 땐 과감한 판단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한다.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듯이,

나에겐 '길치'라는 불편하고 속상했던 순간들로 인해

인생을 좀 더 차분하고 여유롭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땐,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던 시절도 있었다.

어느 곳이 맞는지 혹은 맞지 않더라도 조금은 나아지는 방향인지

조언자도 없었고,

조력자도 없었다.

길을 헤매는 것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들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했다.


인생의 길을 헤맨다는 것은 많은 것이 속상하다.

작은 실수에도 위축이 되거나

과장하여 화를 내기도 한다.

방향을 잃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도움을 요청할 용기도 없었다.

길을 잃은 '길치'라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는 것조차 싫었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자립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날의 시간을 두 배는 훌쩍 넘은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은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길을 잃은 후 옳은 방향을 찾아 도전하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고

예정한 목적지에 닿게 되면 성취감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모르는 불안감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쪽이던 결과는 있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패를 경험으로 저장하고 다시 도전.

목적을 이루었다면 자축 한 번 하고 정진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길을 잃어도 속상해서 주저앉아 울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어린 날의 그 길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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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멈춘 시선: 길 잃은 좁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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