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버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좋겠다)
오늘 내 브런치 스토리 프로필을 "작가지망생"에서 "작가"로 변경했다. 드디어 내 책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쓴다는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고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내 원고를 실물 책으로 받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책을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보겠다.
그동안 음지에서 유투브 영상만 만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윈의 서재라는 출판사에서 내 유투브 내용을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메일이 왔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 것 같아서 좋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니 좀 미심쩍었다. 메일의 내용이 너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나 말고도 아무에게나 이 메일을 보내도 통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종 사기수법인가? 나를 외딴 곳으로 데려가서 장기라도 빼가려는 속셈인가?
그래서 난 바로 승낙하지 않고 답장을 보내서 내 어떤 컨텐츠를 책으로 내면 좋을 지 물어봤다. 사기꾼이라면 답장을 쓸 정도로 노력은 안 할테니까 앞에서처럼 일반적인 내용으로 답장을 못하겠지. 며칠 뒤에 답장이 왔다. 내가 만들고 있던 유투브 내용에 관해서 아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시장 상황까지 담겨있었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준 유일한 출판사였는데 그동안 출판사의 진의를 의심해서 미안했다. 어쨌든 바로 승낙하고 다음 주로 미팅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호기롭게 미팅 전까지 초고를 보내드리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사실 책 쓰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유투브가 있으니까 이걸 순서대로 엮으면 구성은 금방 짤 수 있고, 자료도 다 있고, 내가 말로 했던 것을 글로만 바꾸면 되니까 Ctrl+C, Ctrl+V 수준에서 책 하나는 금방 완성하겠지 라고 안일한 마음을 가졌다. 와! 근데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기니까 문체가 너무 경박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문어체와 구어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미팅 전날 겨우겨우 초고를 완성해서 보냈다. 내가 3년 동안 했던 유투브 컨텐츠를 5일 만에 책 한권으로 완성한 셈이다. 하루 8시간 이상 자던 내가 7시간 밖에 못 자고 무리를 했더니 너무 힘들었다.
미팅 날에는 출판사 대표님과 나를 빛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실무자, 이렇게 두 분과 30분간 대화를 했다. 내가 유투브를 만들게 된 계기나 앞으로의 계획 같은 개인적인 내용이 반이었고, 출판사에 대한 소개가 반이었다. 사실 내가 미팅에서 기대한 것은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내 초고에 감탄하고 박수를 받으며 그 자리에서 바로 출판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다른 부서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먼저 했으면 바로 계약하는 거 아니었나?
검토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3일 만에 출판계약서에 서명하자는 메일이 왔다. 전자서명을 해도 되었지만 나는 옛날 사람이라 계약서에는 직접 서명을 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메일이 여러 번 왔다갔다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출판사에 직접 방문해서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초고 원본과 관련 자료들을 넘겨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에 난생 처음으로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해보았다.
계약하기 전에 주의할 점에 대해서 미리 알아봤는데 표준계약서라는 것이 존재해서 그렇게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한 계약을 맺을 거라는 두려움은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다만 저작권료, 전자책 출판 여부, 저자에게 제공되는 책 부수 같은 것들을 협상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처음 책을 내는 입장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 이후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출판사에서 표지에 들어갈 홍보성 문구를 요청해서 간단하게 작성해줬고, 5주 정도 후에 1차 시안 파일이 도착했다. 계약 당시에는 2~3 주면 책이 출판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었나보다. 어쨌든 이틀 만에 피드백을 작성해서 보냈고, 그 후 최종시안이 완성되었고, 결과적으로 계약과 동시에 초안을 보낸지 4개월 만에 드디어 내 책을 만져볼 수 있었다. 이 기간은 책의 성격과 출판사의 역량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내 책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니 기분이 좋은데 이걸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의 얕은 문학적 소양이 원망스럽다. 지금까지 내 지식은 실체없는 컴퓨터 파일로만 존재했었는데 이렇게 손에 잡히는 실체화된 모습을 보니 예술가들의 느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미술, 건축,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감각을 자극하는 물리적 개체로 현실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진짜 예술가 여러분이 이 문단을 보고 나를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을 전혀 모르니까 저런 무식한 소리를 하나보다 하고 너그럽게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POD 로 출판되기 때문에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가 없다. 도심의 큰 서점에 가서 내 책이 진열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것이다. 내 책은 존재하지만 누군가가 찾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내용이 워낙 일반적이지 않고 가격이 좀 비싸게 책정되었기 때문에 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든지, 갑자기 인세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기대도 안한다. 다만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내 책을 펴들고 이집트 상형문자를 공부하는 장면이 TV 에 방영되면 좋겠다는 상상은 가끔 한다.
혹시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