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성 육아

필통을 찾습니다.

없어진 건 더 소중한 걸까.

by 임은



색색깔의 형광펜과 내손에 익숙해진 샤프. 내가 가진 모든 샤프심을 한통에 넣은 두둑한 샤프심 통. 사고 버리고를 반복하며 나와 잘 맞는 것을 찾았던 지우개. 필통은 학생이 가진 전부이자 보물이다. 내 아이에게도 그랬다. 남자아이지만 필통은 소중했다. 무거운 필통의 무게를 줄이려고 할 때면,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소중한 것들만 들었다고 나를 노려보기도 했던.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아이만의 것이었다.



필통이 사라졌다.

검은색 천가방의 두툼한 그 필통이. 사라져 버렸다.



필통이 없이 학교를 다녀온 후, 온 집안을 찾아 헤맸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도 메시지를 넣어 필통의 존재를 물어볼 만큼 필통이 중요했다. 평소 같으면 필통의 발이 달렸다고. 낄낄대며 웃거나. 필통에게 감정을 넣어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댔을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게 필통을 찾았다.



자의가 존재하지 않는 물건에게 위치를 정해주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두가 얼음이 되는 물건의 세계에선 조금의 이탈도 허락되지 않기에 힘을 가진 사람만이 움직임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왜 이곳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물건도.

발로 찼거나. 굴러 떨어졌거나. 어떠한 힘이 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 본인의 의지 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토이스토리의 영화를 처음으로 보았던 어린 아가 때의 아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울음을 터트렸었다. 사람이 모두 사라진 후, 장난감이 말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그 뒤로 초등학생이 되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토이스토리를 연달아 볼 수 있었지만, 물건이 움직이고 물고기가 말을 하는 영화는 어린 아가 때 볼 수가 없었다.



사물에게 감정을 넣어주는 일은 때론 재미있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무서운 일이 되기도 한다. 필통이 사라진건 무서움이었다. 매일 책상 위에 올려있던 필통의 사라짐은 공포였다.



이틀 동안 필통을 찾지 못했다. 익숙했던 기억들을 지워야 한다는 마음에 아이는 많이 속상해했다. 땅이 꺼질듯한 깊은 한숨 소리가 속상함을 대신할 뿐이었다. 매일 함께 하는 그것에 고마움 보단 배신이었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지 않아 찾을 수 없는 주인의 속 타는 마음의 원망이 모두 필통이라는 것에 쏠려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같이 한 그 시간을 놓아줘야 한다. 새로운 필통을 맞이해야 한다. 새 옷은 기분이 좋고. 새 양말은 왠지 깨끗하고. 새 신발은 반짝이지만. 새 필통은 그렇지 않다. 때론 새것보다 익숙함이 좋은 것도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들었던 익숙함이라는 필통을 보내줄 수가 없었다. 시무룩한 이틀을 보내게 한 것은 필통이었고, 당차고 밝은 목소리를 내주게 한 것도 필통이었다.



찾았다’ 드디어, 옷장 안 여러 가방들 중에 검은색으로 보호색을 띤 아이의 필통.

등을 뒤로 한채 숨을 죽이며 이틀을 그곳에서 보냈던 것이다. 필통이 이리도 반가운 물건이었다니.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마치 가방의 천과 비슷한 필통은. 옷을 본 듯, 가방을 본 듯 눈으로 훑고 지난 간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죽기 전에 고통과 소리쳐야 살아나는 꿈의 세계에서 목소리가 막힌 듯한 그 느낌. 필통의 감정이 있었다면. 소리 낼 수 없는 답답함은 어땠을까. 늦게 찾아봐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린 이틀의 시무룩함을 잊어버린 채. 감정의 극과 극을 경험한 그 상황이 마치 아련한 꿈이 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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