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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Jan 24. 2019

DMP-Z1

소니'만'의 스타일


  ‘워크맨(Walkman)’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든 브랜드이자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개발한 브랜드, 디지털부터 아날로그까지 모든 오디오 기기들을 개발함과 동시에 세계적 규모의 음반 레이블까지 보유한 브랜드. 소니(Sony) 앞에 붙을 수 있는 수식어이다. 가히 오디오 업계의 공룡 기업이라 할 만하다. 


  작년 한 해 포터블 분야에서도 소니는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업그래이드된 보급형 DAP를 내놓았고 최상급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선보였으며, 고가의 이어폰도 다수 출시했다. 2016년 시그니처 라인업을 새롭게 선보인 소니는 2018년 2세대 라인업을 통해 한층 진보시켰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세간의 이슈가 된 제품은 단연 오늘 리뷰할 제품, 캐리어블 DAP MDR-Z1이다. 


  기능으로 따지자면 휴대용 DAP에 포함시켜야 할 듯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소니의 DAP에 붙는 제품명인 워크맨이 사용되지 않은 데에서부터 뭔가 이 제품이 단순한 DAP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챘을 것이다. ‘Digital Music Player’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시작을 알린 DMP-Z1은 사실상 소니 아니면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할 만한 기기이다. 만들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무려 2.5kg의 무게를 자랑하는, 어떤 이는 소니가 만든 괴작이라고까지 부르는 DMP-Z1. 헤드파이 덕후를 위한 제품임이 분명하기에 이번 리뷰는 필자 역시 덕후의 자세로 살펴볼까 한다. 



누구를 위한 제품일까 



  다른 것보다 먼저 제품의 용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마음만 먹는다면 DMP-Z1은 얼마든지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일본의 케이스 제작 브랜드 반누이스(Vannuys)에서는 벌써 전용 캐링 케이스까지 내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범인(人)들의 영역은 아닐 터, 소니의 홍보를 따르면 DMP-Z1은 출장이 잦은 비지니스맨이 어디에서든 최고의 음질로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그리 많은 이들이 주로 사용할 만한 용도로 보이진 않는다. 보다 일반적인 용도를 따져보면 DMP-Z1은 하나의 기기로 거치형 헤드파이 시스템을 꾸리려는 이들이 주목할 만하다. 


  그렇게 본다면 DMP-Z1은 굉장히 심플한 제품이다. 보통의 거치형 헤드파이 구성을 따져보자. 음원 관리 및 재생 역할을 맡는 소스기, 디지털 신호를 처리하는 DAC, 아날로그 신호를 담당하는 앰프를 거쳐야만 최종 구간인 헤드폰에 도달한다. 적어도 두 덩이 이상으로 구성될 법한 시스템이 DMP-Z1 하나로 해결되니 얼마나 간단한가. 실제로 필자가 리뷰를 진행하며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이제껏 거치형 기기 리뷰를 진행했던 어느 경우보다 책상 위가 깨끗했다.  


  기기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서로를 연결하는 케이블 역시 추가된다. 그런데 DMP-Z1의 경우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사용되는 케이블은 DC 전원선 단 하나이다. 이마저도 충전을 위한 것일 뿐, 배터리 구동식 제품이기에 사실상 사용시에는 본체와 헤드폰 외에는 다른 준비물이 전혀 필요없다. 앞서 캐리어블 DAP의 범주에 넣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원한다면 설정에서 상시 AC 전원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소니측은 보다 깨끗한 전원을 활용하는 배터리 구동 방식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사이즈만큼 내부 구조도 다르다    


  이 정도 사이즈의 배터리 구동 방식 헤드파이 기기하면 코드(Chord)의 TT1이 떠오른다. TT1 역시 외부 전원에서 유입되는 노이즈 문제를 없애기 위해 배터리 구동 방식을 택했다. 이와 함께 순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 안정적으로 전류를 공급하기 위해 대용량 커패시터를 활용한다. 쉽게 말해 커패시터가 전류의 저장소 역할을 하며 필요한 순간마다 배터리만으로는 부족한 전류를 보급해주는 것이다. DMP-Z1 역시 마찬가지이다. 디지털단과 아날로그단을 나누어 디지털단에 1개, 아날로그단에 4개의 배터리를 배치하고 각각의 배터리에는 500mF의 대용량 커패시터가 함께 사용되어 전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https://www.sony.jp/feature/products/181101/


  비단 전원뿐 아니라 내부 설계부터 디지털단과 아날로그단을 완벽히 분리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DMP-Z1을 전면에서 바라보면 ‘H’형 섀시가 눈에 띈다. 알루미늄 통절삭으로 제작된 섀시의 윗부분에는 디지털단이, 아랫부분에는 앰프단이 위치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기기이지만 구조상 별개의 기기처럼 제작되었다. 디지털단과 아날로그단의 분리는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단순히 두 단의 배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운드 처리 역시 구분함으로써 디지털단이 아날로그단에 악영향을 끼칠 요소를 배제시키는 것이다. 


https://www.sony.jp/feature/products/181101/


  이제껏 출시된 소니의 기기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분리에 관한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신호의 처리 과정을 디지털로 처리하는 S-Master HX라는 고유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S-MASTER HX 대신 기성 IC를 사용하여 DAC와 앰프를 별도로 구성했다. 이는 S-Master HX의 경우 현재로써는 고출력에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현존하는 모든 헤드폰을 구동할 수 있는 높은 출력을 얻기 위함이라 한다. DAC IC는 AKM사의 AK4497EQ, 앰프단은 TI사의 TPA6120A2를 채널 당 하나씩 듀얼 구성으로 사용했다. 참고로 개발자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제품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개발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지 기존 DAP 사이즈에서는 여전히 S-Master HX의 음질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내부 선재로 킴버 케이블을 사용하는 등 모든 부분이 초호화 부품으로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금도금처리된 큼지막한 아날로그 볼륨 노브를 꼽아야겠다. 기기 내부의 볼륨단을 보여주기 위해 상판 해당 부분을 투명 처리한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소니가 볼륨 노브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는지 엿볼 수 있다. 아날로그 볼륨단은 저항 덩어리이다. 앰프에서 최대로 증폭된 신호를 저항을 조절하여 듣기 좋은 수준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볼륨단의 질은 곧 음질과 직결된다.  


  크기부터 남다른 DMP-Z1의 볼륨 노브는 아날로그 볼륨단으로 유명한 알프스사의 제품 중에서도 특별히 이 제품만을 위해 제작된 특주품이다. 황동 재질 위에 구리를 입힌 후, 다시 그 위해 금으로 마무리한 사치품이다. 총 300단의 미세 조절이 가능한 성능뿐 아니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노브 조작감은 개인적으로 DMP-Z1의 모든 부분 중 가장 마음을 빼앗긴 부분이기도 하다.  



새롭게 정의된 소니 스타일 


  본격적으로 DMP-Z1을 만져보도록 하자. 사실 전원을 켜는 순간 필자가 DMP-Z1을 사용하면서 느낀 몇 안 되는 아쉬운 점들이 모두 등장한다. 먼저 기기의 크기와 균형이 맞지 않는 작은 액정 사이즈가 거슬린다. 이 정도의 물량 투입과 정성을 들인 기기라면 맞춤형 UI를 비롯한 편의성을 고려한 패널 정도는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기존 소니 DAP의 화면과 다르지 않은 터치식 패널과 내부 UI는 DMP-Z1의 유일한 외관상 단점으로 꼽을 만하다. 이에 대해 소니에서는 음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의 최대 사이즈라 하지만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얼마든지 보다 나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는 제품의 전원을 켤 때, 그리고 메모리 카드를 삽입하거나 제거할 때마다 등장하는 지루한 자동 데이터베이스 로딩 시간이다. 혹시나 싶어 설정에서 찾아봤지만 수동으로 로딩을 끄는 기능은 찾지 못했다. 로딩 속도가 빠르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추후 이 부분만큼은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온/오프가 가능하도록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자잘한 단점들이 지나간 이후에는 본인의 성향에 맞는 기기 세팅값을 찾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다. 이 부분은 소니 워크맨 시리즈와 다르지 않게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필자가 선호하는 세팅은 DSD 리마스터링 모드와 바이닐 프로세서 온 모드이다. 두 모드 모두 여타 다른 세팅에 비해 음선을 부드럽게 처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DSD 리마스터링 모드로 들었을 때 음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상시의 경우 DSD 리마스터링 모드로 듣다가 곡에 따라 바이닐 프로세서 모드로 변경하며 사용했다. 바이닐 프로세서 안에서도 여러 가지 모드 선택을 지원해서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리뷰를 위해 동사의 MDR-Z1R 헤드폰을 함께 대여 받았다. 사실 청음 전까지만 해도 Z1R은 어디까지나 참조 용도로만 사용할 뿐 리뷰 작성은 평소 필자에게 익숙한 유토피아 헤드폰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헤드폰을 번갈아가면서 들어본 결과 Z1R로 들었을 때 DMP-Z1의 소리가 보다 잘 살아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괜히 소니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왕왕 들리는 게 아니다. 이번 소리 파트는 대체 어떤 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도출됐는지 곱씹어보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 동안 S-Master를 필두로 일관되게 유지된 소니 사운드를 떠올린다면 DMP-Z1의 조금은 달라진 소리 노선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필자가 기억하는 소니 사운드는 저역과 고역이 부각되고 컨트라스트가 강한 편이다. 이는 비단 DAP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 시그니처 헤드폰인 MDR-Z1R 역시 상대적으로 저역의 재생 능력에 강점을 둔 스타일의 헤드폰으로, 가령 NW-WM1Z와 MDR-Z1R을 매칭해서 음악을 들으면 저역의 양감과 타격감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을 띤다. 



  그런데 DMP-Z1과 MDR-Z1R 조합은 이와 달랐다. 소니끼리의 조합에서 필자의 기준에는 조금 과하게 느껴지던 저역의 양감이 덜어지며 입맛에 맞는 적당한 음역대 밸런스가 맞춰진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소니 기기들이 만들던 음역대 밸런스와 DMP-Z1은 다르다. 저역은 줄고 고역은 늘었다. 구체적으로 <50 Best of Blue Note>에 수록된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Alternate Take)’을 들어보자. 우측에 위치한 베이스와 드럼의 배치가 어떤 매칭으로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평소 사용하는 코드 데이브와 포칼 유토피아 조합으로 곡을 들었을 때 익숙한 배치는 드럼 심벌이 베이스 뒤편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소리나는 것이다. 그런데 DMP-Z1에 포칼 유토피아를 물려서 들을 경우 심벌이 도드라지면서 베이스의 자리를 침범해 버려서 굉장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반면 Z1R을 물릴 경우 심벌이 다시 본인의 자리로 물러나며 베이스와 균형을 맞추었다.  



  데이브, 유토피아 조합과 DMP-Z1, MDR-Z1R 조합이 들려주는 표현력 차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따져보자. 음악을 들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흥이 느껴지느냐가 아닐까.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오디오의 좋은 소리에 대한 답은 결코 한 가지만이 아니다. 필자에게 있어 이번 DMP-Z1 리뷰는 이 부분을 체감케 해준 귀중한 경험이었다. 데이브, 유토피아 조합은 다른 기기에 대한 호기심은 생길지언정 욕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소리를 들려준다. 이때의 만족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칼같은 정확함이 주는 쾌감 정도가 적절하다. 한편 DMP-Z1, MDR-Z1R 조합은 이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다. 세밀한 해상력 부분에 있어서는 데이브, 유토피아 조합에 미치지 못하지만 온도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음색과 윤기 흐르는 음선은 듣는 이에게 또다른 만족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덧붙이자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으로 언급했을 뿐 DMP-Z1의 절대적인 해상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리뷰를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소리평보다는 함께 사용할 제품에 대한 고민에 치중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DMP-Z1은 최근 리뷰한 어느 때보다 함께 사용한 헤드폰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달라졌다. DMP-Z1, MDR-Z1R, 그리고 DSD 리마스터링 이 세 가지의 팀워크가 최고라는 것은 분명하다. 세팅에서 DSD 리마스터링을 끄거나 혹은 사운드 설정에서 바이닐 프로세서 없이 DSEE HX 업샘플링 모드만 켰을 때에는 보다 날렵한 음선의 소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매력이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DMP-Z1만의 매력만 사라질 뿐 무언가 득이 되는 부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로 비춰봤을 때 포스텍스의 TH-909나 미스터스피커스의 이더 시리즈와의 궁합도 괜찮지 않을까 예상한다. 어느 정도 궁합이 맞는 제품을 찾았다면 DMP-Z1은 잘 만든 기기가 그렇듯 어느 한 장르에만 특화되지 않는, 어떠한 장르의 곡을 들어도 수준급의 소리를 보증한다.  


   

앞으로의 소니 스타일은 


https://www.sony.jp/audio/products/DMP-Z1/index.html


  DMP-Z1을 듣다보니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먼저 제품의 지속적인 개발 여부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과연 DMP-Z1의 수요층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제품을 사용하면서 헤드파이가 주가 되는 마니아라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말자. 이 제품은 덕후를 위한 기기이다. 일반인의 마음으로 무작정 제품 가격이 높다고 악평할 만한 기기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만약 후속기 개발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몇 가지는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먼저 액정 비율과 DMP 시리즈만의 독자 UI 개발을 통해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넉넉한 기기 뒤편에 아날로그 아웃 단자를 추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사실상 휴대용 기기로서의 용도보다는 책상파이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액티브 스피커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궁금증은 앞으로 출시될 소니 제품들이 지향할 소리에 대한 것이다. 소니는 여전히 S-Master HX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적어도 워크맨은 앞으로도 S-Master HX를 기반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발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들었던 DMP-Z1의 소리는 이제까지의 소니 스타일과는 달랐다. 따라서 새로운 제품 개발 과정에서 사운드 튜닝 방향을 기존의 소니 스타일을 유지할지, 아니면 DMP-Z1에서 추구한 새롭게 바뀐 사운드가 새로운 소니 스타일로 자리잡을지도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프리미엄헤드폰가이드 2019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덧, 얼마 전 포터블웨이브에서도 영상으로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지요. 말 잘 듣는 타자기가 친구와 함께 정말로 출장 중에 사용해본 영상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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