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음악가 양성원과 수학자 김민형의 대담집,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을 읽었습니다.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히사이시 조와 요로 다케시의 대담집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가 떠올랐습니다. 음악인과 비음악인, 예술인과 과학자 간의 대화라는 큰 축이 서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대화의 주제는 비슷할지언정 대화의 흐름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많이 달랐습니다.
히사이시 조와 요로 다케시는 서로 간의 생각이나 대화의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다면, 양성원과 김민형의 사이는 뭐랄까, 요즘 말하는 MBTI의 극 F와 극 T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성원 선생님이 F, 김민형 선생님이 T입니다. 양성원 선생님은 모든 주제를 감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 문제를 풀어 나가고 싶어 합니다. 음악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게 잡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보다 넓게 사회에 자리잡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대중화되는 것을 염려합니다.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음악적인 지위, 또는 오랜 세월 이어지며 쌓아 온 깊이가 자칫 대중성과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다분히 이상적인 관점입니다. 그리고 다분히 엘리트적인 관점이고요. 대화 중에 양성원 선생님은 직접적으로 본인이 엘리트주의자라고 언급합니다. 보통 엘리트주의가 소위 가진 게 많은 사람들만이 누리는 권위로 똘똘 뭉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양성원 선생님이 말하는 엘리트주의는 '완벽주의'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보다 높은 경지의 연주에 다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관객들도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듣기 쉬운 음악을 선보이는 대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김민형 선생님은 양성원 선생님의 이상적인 바람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 나갑니다. 가령 예술적인 면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술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많은 수의 음악인들의 처우에 대해서, 특정 인기 음악가 외에 수많은 2등들, 또는 그 이하의 훌륭한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식입니다. 상업성 때문에 예술성이 제약을 받는 일이 올바르지 못한 일이지만, 상업성을 배제하고 예술성만을 지향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불가피할 테고요.
글을 읽는 동안 종종 서로 간의 입장차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평행선을 그릴 것만 같은 두 사람이 한 권 분량의 대화만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 목적은, 나아가 이 책의 목적은 서로 다른 관점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이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와 다른 부분입니다. 이해와 수긍은 다릅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내 관점을 상대방의 관점에 맞출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단지 서로가 함께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또 각자의 관점에서 앞으로 클래식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성원 선생님은 이번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예술 감독을 맡았습니다. 꼭 김민형 선생님과의 대화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번 평창 대관령 음악제에서는 연주자와 관객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거리 공연, 무료 복도 공연 등의 방법을 고려하고 또 제안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더군요. 하지만 기본적인 컨셉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예술성'입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 보니 인터뷰에서 "평창 대관령 축제가 추구하는 것은 대중성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꼭 하던 말이 있습니다. 토론은 상대방이 내 의견을 따르도록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너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평생에 걸쳐 쌓아 온 관점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신 대화를 통해 관점의 폭을 넓히는 거죠. 극 T와 극 F의 만남을 통해 두 분 모두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두 사람 중 어느 한 편에 서서 주제를 바라보고, 또 반대편 생각을 들으면서 읽는다면 보다 재밌는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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