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헤드폰/이어폰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전기/전자공학 및 음향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이었다. 소비자들은 그래프로 표시된 응답 특성과 수치로 정리된 스펙만 보고 헤드폰/이어폰의 성능을 판단했다. 좋다고 열광했던 헤드폰/이어폰은 모두 전기 신호와 전기 신호가 만들어낸 화려한 그래프와 커다란 숫자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듣는 것은 정확한 전기 신호의 그래프와 숫자가 아니라 소리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리를 느끼는 것은 사람의 ‘귀’ 다.
여기서 온갖 모순이 시작된다. 가장 평탄하고 정확한 응답 특성과 숫자가 가장 좋은 소리일까? 전기적으로 정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음이 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문제는 사람마다 소리를 인식하는 ‘귀’라는 센서가 모두 다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헤드폰/이어폰은 전기적으로 정확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런 기기들의 정확한 전기 신호 재생음이 정작 사람들의 귀 속에서는 모두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사람의 귀에 있다. 모든 사람들의 청력은 제각각이다.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 조차도 제대로 못듣는 사람도 있다. 저음, 중음, 고음 같은 주파수로 이야기하면 결과는 또 달라진다. 저음에 둔감한 사람, 고음에 집착하는 사람, 사람 목소리 같은 중음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등, 사람마다 청각적 생체 특성 중 주파수에 따라 반응하는 감도가 확연하게 다르다. 과연 이들에게 전기적으로 100% 완벽한 신호 전달이 가능한 헤드폰/이어폰을 준다한들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최고의 사운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소리는 전기적 정확성만 평가했을 뿐, 정작 듣는 사람이 느끼는 사람의 체감적 신체 반응에서의 소리는 하나도 고려되지 않았다. 좋다는 소리들은 모두 전기적 완벽함에 더 가까이 다가간, 전기적 기계적 정확성을 자랑하는 결과물일 뿐, 귀로 들었을 때 가장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사람의 생체 반응적 체험은 그 어디에도 언급되거나 고려되지 않았다. 사람의 귀는 평탄한 응답 특성을 갖는 마이크가 아니다!
호주 맬버른에 위치한 ‘왕립 시각 청각 병원’의 청각 전문의 루크 캠벨(Luke Cambell)은 이러한 문제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많은 환자들이 지나친 음량의 헤드폰/이어폰으로 인해 겪게 되는 청각적 문제를 보고 원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친 볼륨으로 음악을 듣는 문제가 청력 상실 원인의 핵심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특정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볼륨을 자꾸 높이다보면 결국 안들리던 소리는 잘 들리게 되지만, 정작 보통 음량에서 잘 들리던 다른 소리(또는 다른 주파수)들은 거꾸로 지나치게 커져서 오히려 청력을 파괴하는 과도한 유해 진동으로 귀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만약 헤드폰/이어폰이 사람마다 귀의 주파수 인식 특성에 맞춰서, 귀에 맞는 평탄한 밸런스의 소리로 음악을 들려준다면 굳이 지나친 음량으로 음악을 듣다가 귀를 다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저음 중 잘 안들리는 부분이 있는 사람은 안들리는 특정 저음만 소리를 크게 해주면 굳이 볼륨을 크게 높이지 않아도 편안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 목소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에게는 사람 목소리 대역을 낮춰주면 전반적으로 오히려 다른 저음이나 고음이 잘 들리게 되므로 이 또한 볼륨을 크게 높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헤드폰/이어폰은 사람의 이러한 소리 인식 특성은 무시하고 오직 전기적으로 모든 주파수들이 모두 똑같이 재생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 귀 속의 센서들이 과도한 소리로 인해 고장이 났던 것이다.
청각 전문의인 루크 캠벨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완전 백지 상태에서 헤드폰/이어폰의 컨셉을 스케치했다. 사람의 귀에 가장 정확히 반응하는 헤드폰/이어폰, 생체 공학적 특성이 반영된, 개개인의 귀에 커스터마이징된 헤드폰/이어폰을 말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는 이러한 목표를 잡고 다양한 연구 논문과 생체 관련 의용 공학 기술들을 찾았다. 그 중 그가 주목한 것은 ‘이음향(Otoacoustic) 방사(Emission)’ 이라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신생아의 청각 인지 능력 테스트 기술로, 갓 태어난 아기들이 귀머거리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단해내는 의료 테스트 시스템이다. 특별하게 설계된 특수 마이크가 달린 이어폰을 아기 귀에 꽂고 테스트 신호(소리)를 들려주면 아기의 귀 속에서 되돌아 나오는 반사음으로 아기가 소리를 듣는지 소리를 듣지 못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에 따르면, 귀 속에 고막이 움직이면 고막 뒤에 있는 ‘청소골’이라는 귀 안에 있는 작은 뼈가 달팽이관을 때리고, 사람은 달팽이관 속의 진동으로 소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소골이 달팽이관을 두들길 때, 소위 ‘뼈 때리는’ 소리가 발생되어 귓 속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음향 방사는 귀 밖으로 나오는 그 ‘뼈 때리는’ 소리를 마이크로 잡아내어 사람이 소리를 듣는지 못듣는 지 판별해내는 기술이다.
루크 캠벨은 이 기술 중 귀에서 나온 소리를 판별해내는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사람들의 청각 능력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그는 귓 속에서 되돌아 나온 소리를 분석하여 사람 고유의 청각 능력을 일종의 주파수 그래프로 분석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루크 캠벨은 청각 관련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보유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그는 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인식하는 미세음 채집 마이크를 사용하고 이를 통한 귀의 응답 특성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인체의 사운드 인식 능력을 읽어내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루크 캠벨은 새로 개발한 귀의 소리 인지 능력 분석 기술을 헤드폰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크라우드 펀딩에 올렸다.(관련링크) ‘당신의 귀를 스캔해드립니다’라는 설명으로 시작된 이들의 생체 인식형 생체 적응 커스터마이징 헤드폰은 단번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하는 펀딩 액수를 빠른 시간내에 채운 루크 캠벨의 생체 인식형 헤드폰은 여러 기술 관련 투자자들에게 알려졌다. 그 중 지인을 통해 소개 받은 인물 중 하나가 퀄컴 계열사의 이사였던 드라간 페트로비치였다. 본래 와이파이 관련 기술 및 반도체 개발을 담당했던 드라간은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퀄컴을 그만두고, 루크 캠벨과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세계 최초의 생체 인식형 헤드폰을 만든 회사, 누라(NURA)가 시작된 것이다. 이 둘은 회사 누라를 설립하고, 자신들의 생체 인식 헤드폰의 이름을 누라폰(NURAPHONE)이라 명명했다.
2016년 크라우드 펀딩용 제품 제작에 들어간 누라는 초기 제안에 맞는 헤드폰의 완성을 위해 기술적 연구를 추가했고, 업체 누라는 본격적인 스타트업 회사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를 맡고 있는 드라간은 퀄컴을 비롯하여 다양한 벤처 캐피털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여 2018년까지 200억원 규모의 펀딩을 성공시키고, 개발인력만 20여명의 총 30여명의 대규모 기술 전문 회사로 누라를 탈바꿈 시켰다.
이후 2017년 말에 크라우드 펀딩용 헤드폰이 완성되어, 펀딩 참가자들에게 제품이 발송되었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세계 최초의 상업용 생체 인식형 헤드폰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귀를 스캔하고 귀의 소리 인식 능력에 맞추는 재생 뿐만 아니라 최신예 디지털 기술들이 가미된 무선 헤드폰/이어폰 제품들의 다양한 기술이 더해진, 진짜 헤드폰/이어폰 제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2018년 CES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대중들앞에 공개된 헤드폰, 누라폰이었다.
누라폰은 누라의 첫 상업용 제품이지만, 헤드폰으로는 크라우드 펀딩 제품에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이다. 그래서 리뷰 제품인 이들의 첫 양상 헤드폰은 ‘누라폰 G2’(이하 누라폰)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누라폰의 출발점은 생체인식 기능이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헤드폰들과 달리 헤드폰 속에는 신생아의 청각 능력을 감별해내는 초미세음 인식용 마이크가 탑재되어 있다. 그리고 소리를 재생하는 고감도 이어폰이 있으며, 전체 귀를 감싸는 이어컵에는 낮은 저음만을 재생하는 서브 우퍼가 별도로 설계되어 있다. 한마디로 누라폰은 2.2채널(2개의 스피커, 2개의 서브우퍼)로 구성된 스테레오 오디오 시스템과 귀의 사운드 인식 능력을 보정하기 위한 이어 코렉션(Ear Correction) 기능의 마이크가 탑재되어 있다.
헤드폰은 기본적으로 무선 헤드폰으로 동작하므로 별도의 유선 연결없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들과 블루투스로 연결되고 각종 컨트롤 기능을 제공한다. 물론 원할 경우, 전용 케이블을 연결하면 유선 헤드폰으로도 동작한다. 블루투스는 여러 코덱이 지원하는데 아이폰에서는 AAC, 안드로이드 계열에서는 APT-X HD를 지원한다. 따라서, 블루투스로 최대 24비트의 음원 재생도 완벽히 소화한다. 다양한 고음질 코덱과 더불어 무선 헤드폰으로서는 효과적인 보조 기능인 노이즈 캔슬링 기능도 탑재하여 어디서나 최적화된 음향 상태에서 안정된 음악 재생 및 고음질을 선사한다.
누라폰의 시작은 먼저 스마트폰에 전용 앱 NURA를 설치해야 한다.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누라폰에는 별도의 전원 버튼이 없는데, 누라폰을 머리에 쓰면 자동으로 동작을 인식하여 누라폰이 켜진다. 그 뒤에는 스마트폰의 블루투스를 켜고 기기 검색을 시작하면, 누라폰이 연결 가능해진다. 누라폰의 블루투스 연결이 이루어지면 누라 앱을 실행하여 누라폰 셋업에 들어간다. 앱은 누라폰을 자동을 찾고, 이내 귓구멍에 누라폰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를 알려준다. 제대로 귀에 꽂혀있지 않으면 꽂혀있지 않은 귀를 완벽하게 장착하도록 메시지를 보여준다. 완벽한 장착 상태가 되면 곧바로 귀의 청각 능력을 스캔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수 십 초 동안 전용 테스트 신호를 들려주는데, 테스트 신호 후에는 마이크가 귀에서 나오는 소리를 채집하고 앱은 이 신호를 분석하여 내 귀의 청각 능력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귀를 스캔한 결과물은 대략 귀가 어느 주파수에 민감하고 둔감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데, 그림은 12시 방향이 20Hz이며 여기서 360도 시계 방향으로 가청 주파수인 20kHz까지의 주파수 대역을 나타낸다. 그리고 원에서 움푹 들어간 곳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대역이며, 원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귀가 아주 민감하게 소리를 인식하는 주파수 대역이다.
귀를 스캔한 결과물은 대략 귀가 어느 주파수에 민감하고 둔감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데, 그림은 12시 방향이 20Hz이며 여기서 360도 시계 방향으로 가청 주파수인 20kHz까지의 주파수 대역을 나타낸다. 그리고 원에서 움푹 들어간 곳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대역이며, 원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귀가 아주 민감하게 소리를 인식하는 주파수 대역이다.
귀의 장착 상태에 따라 미묘하게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가급적 초기 스캐닝 셋업 과정은 세 차례 정도 반복하여 스캔한 결과를 비교해서 보는 것이 좋다. 세 번 정도 테스트 셋업을 거치면 정형화된 그래프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귀의 소리 인식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누라폰이 부정확하게 장착된 상태에서 테스트를 하면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세 번 정도해서 정확한 귀의 주파수 인식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누라폰의 또 하나의 장점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다. 요즘은 대다수 헤드폰/이어폰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어서 노이즈 캔슬링이 똑같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써보면 노이즈 제거 능력이 전혀 다르다. 누라폰은 기본 구조가 이어폰이 귀에 꽂히고, 귀 전체를 덮는 이어컵이 더해지므로 물리적으로 누라폰 자체의 차음 능력이 기존 헤드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누라폰이 켜지면 뛰어난 노이즈 캔슬링 동작 여부를 앱에서 설정할 수 있는데, 이 기능이 동작되면 다른 헤드폰과 달리 거의 두 차례에 걸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동작하는 셈이다. 외부 노이즈가 전혀 귀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여기에 외부의 공기 소음 등의 노이즈가 모두 전기적으로 제거되므로 마치 무음향 상태에 빠져있는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약간 막막할 정도로 정막한 음향 상태가 익숙치 않을 수도 있는데, 음악을 틀면 곧바로 음악 사운드에 몰입되어버린다.
사실 이런 막막한 음향 상태는 위험할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는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외부에 걸어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상황이라면 주변으로부터 음향적으로 완벽히 격리된 상태가 되어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칫 교통 사고나 사람과 부딪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고 방지를 위해 노이즈 캔슬링 기능과 반대 되는 외부 소음을 마이크를 통해 헤드폰 내부로 증폭시켜 전달해주는 소셜 모드가 있다. 간단히 헤드폰을 한 번 쳐주면 동작되는 소셜 모드는 외부의 모든 소리들을 좀 더 큰 소리로 증폭시켜 전달해주므로 누라폰 장착 상태에서도 헤드폰을 쓰지 않은 것과 동일하게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기능은 이머전 또는 몰입도라 불리우는 기능이다. 이 기능은 누라폰이 지닌 저음 조정 기능으로, 낮은 저음들을 자신의 선호도에 맞춰 그 세기를 조정하는 기능이다. 쉽게 말해서 홈시어터나 하이파이에서 서브우퍼 음량을 조정하는 기능과 같다. 마치 콘서트 장에서 무대 가까이서 대형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음을 몸으로 느끼는 듯한 저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단순히 저음을 부스트 시키는 EQ 기능보다는 전체 음악 분위기의 진동 에너지는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기능에 가깝고, 음악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간단히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을 다이내믹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유용한 기능이다.
이 외에도 누라폰에는 음량 조정 및 음악 트랙 전후 이동 같은 다양한 컨트롤 기능들이 있는데, 모든 기능들은 누라폰 좌우에 배치된 로고의 정전식 터치 버튼을 활용하여 온갖 기능들을 조정할 수 있다. 버튼의 기능은 앱에서 원하는 기능을 설정해주면 해당 기능으로 동작하므로 사용하기가 대단히 편리하다.
누라폰은 크게 2가지 사운드 퀄리티로 나누어 평가할 수 있다. 아무런 동작이 없는, 기본 상태에서의 중립 모드의 사운드 그리고 귀 스캔에 의한 생체 인식 모드의 사운드. 일단 중립 모드의 기본 사운드는 전반적으로 안정된 저역 위에 평탄한 보컬의 중역을 들려준다. 고역은 아주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드럼의 스내어나 어쿠스틱 녹음들의 원거리의 잔향이나 디테일을 들려줄 정도의 기본 해상도 그 이상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특히 보컬 대역의 중음역은 튀거나 부풀려 놓은 편은 아니라서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중저역으로 스무드한 음을 들려준다. 물론 서브우퍼 역할의 이어컵과 이어폰의 사운드 사이에 약간 빈듯한 대역도 간혹 느껴지긴 하는데 전반적인 대역 밸런스는 스무드하고, 고역 끝이 밝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다. 100점 기준으로 점수를 준다면 70-80점 정도 수준의 사운드이다.
귀를 스캔한 생체 인식 모드로 바꾸면 사운드는 완전히 돌변하다. 평탄하게만 들렸던 보컬은 주변에 공기 냄새와 분위기가 발생되면서 입체적인 사운드스테이지 연출이 시작된다. 고역에 숨겨져있던 (다소 가려져 있던 무디게 느껴지던) 디테일들이 또렷하고 선명한 음으로 살아나면서 디테일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드럼의 스내어나 다양한 효과의 부수적 악기음들이 들리면서 악기와의 거리, 악기의 배치에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가운데 평면적으로 묻혀있던 드럼이 갑자기 세세한 디테일의 드럼 연주로 변하면서 중앙에서 약간 좌측에 그리고 좀 더 멀리 배치된 입체적 음상의 형태로 연출된다. 보컬은 가운데에 한층 선명한 형태로 또렷하고 진한 보컬로 제 목소리를 낸다. 이런 주변 악기들과 중앙의 메인 이벤트가 되는 사운드가 서로 대비를 이루어 입체적인 무대의 사운드 이미징을 그려내는 것이다. 마치 DVD를 보다가 Full HD의 고해상도의 정보량 높은 영상을 보듯 선명도가 높아진 듯하며 색이 진해진 사운드를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면서 귀를 피곤하게 만들거나 자극적인 고역의 사운드를 쏟아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팝이나 가요 같은 대중적인 음악에서 훨씬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살아있는 음악적 흥을 즐길 수 있으면서 귀에 자극이나 피로가 거의 없다. 덕분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볼륨을 크게 듣지 않아도 충분한 저음의 에너지나 저역의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고, 중고역은 큰 볼륨이 아니어도 높은 선명도와 입체적인 스테이징으로 음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제작자인 루크 캠벨이 원했던 귀에 무리를 가하지 않으면서 충분한 저음과 음악적 감흥 및 쾌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 만의, 내 귀에 커스터마이징 된 헤드폰이자 사운드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팝이나 가요가 아닌 클래식에서도 누라폰은 빛을 발한다. 대중적인 음악과 달리 어쿠스틱한 녹음들인 클래식 음악에서는 전체 녹음 현장의 무대의 입체적 재현, 무대 앞 뒤 그리고 악기 주변의 공기 흐름 같은 분위기들이 중요한데 생체 인식 모드의 사운드 이러한 입체적 분위기와 무대 앞 뒤의 깊이감 같은 전반적인 공간 입체감을 훨씬 높여준다. 코플랜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 같은 곡을 들으면 평면적으로 붙어있던 팀파니와 트롬본 사이의 거리는 넓은 미네소타 콘서트 홀로 바뀌주며 금관 악기들의 뻗침과 음색이 훨씬 선명하고 투명해진다. 팀파니 또한 그 위치를 더 선명히 알 수 있도록 존재감이 개선되며, 이머전 모드의 레벨 조정을 통해 초저역의 울림의 깊이를 한층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한마디로 기분좋은 하이파이적 쾌감, 오디오적 재생의 극대화를 선사한다.
마커스 밀러의 <Laid Back> 중 'Trip Trap'을 들어보면 밀러의 베이스 연주의 리듬의 선명도는 DVD와 UHD를 보는 듯한 차이를 들려준다. 둔중하고 밋밋한 흐릿한 베이스에서 마치 손가락이 보이는 듯한 진하고 또렷한 리듬의 베이스로 커튼이 벗겨지며, 드럼 또한 한 가운데에 묻혀 있던 둔중함으로부터 벗어나 조명을 받으며 제 모습이 보이는 드럼으로 자기 자리를 찾는다. 키보드의 디테일들과 잔향들도 선명하게 부각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중립 모드에서는 이 모든 악기들이 한 가운데에 몰려있다가 생체 인식 모드로 동작하면 갑자기 무대 위에 악기 다섯가지가 확 펼쳐지며 입체적인 무대위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누라폰은 지금까지의 헤드폰과는 전혀 다른 개념과 기술 그리고 전례 없던 체험을 선사하는, 한마디로 헤드폰의 개념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이다. 지금까지 기계적, 전기적 정확도만을 추구해왔던 전통적인 오디오적 개념에서 실제 사람의 귀에 초점을 맞추고 가장 생체 공학적인 사운드 재생이라는 신개념의 사운드 재생 장치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살아왔던, 내 귀의 감도, 내 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헤드폰이 스스로 인식하고, 귀의 청각 능력에 가장 잘 맞는 상태의 사운드로 녹음에 담긴 음악의 감흥을 극대화시켜 음악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청각 전문의가 설계한 덕분에 귀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응답 특성으로 청력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즐거운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생음은 기존 헤드폰들과 차원이 다른 고음질, 고해상도의 사운드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누라폰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이어폰과 이어컵이 동시에 장착되어야 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귓 구멍에 이어폰을, 귀 전체에는 이어컵을 씌운 상태로 장시간 음악을 듣기란 익숙치 않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단순한 이어폰 내지는 헤드폰 하나만 썼을 때보다는 귀 전체가 느끼는 답답함은 적응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장착에 대한 익숙함만을 제외하면 이 새로운 게임 체인저는 놀라운 청각적 체험의 신세계를 안겨준다. 풀이 죽어있던 음악이 마치 강력한 에너지를 받아 한껏 폭발적인 음악 연주로 살아난 것 같은 음악 감상을 보여주니 말이다.
테스트를 마치고 나니, 얼마 전 인터뷰에서 ‘수 년 내에 Bose를 따라 잡겠다'는 포부를 밝힌 제작자 루크 캠벨의 말이 결코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신개념 헤드폰은 새로운 게인 체인저로 전체 헤드폰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올 것이다. 머지 않아 이 세계의 모든 헤드폰/이어폰들은 너도 나도 ‘당신의 귀를 스캔해드립니다’ 라고 하는 시대가 될 것 같다. 더 이상 과거의 헤드폰은 설자리가 점점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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