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대소를 정의하는 법
내담자에게 이런 질문을 들은 게 처음이었으리라. 상담의는 희한했다. 의사는 5분 정도 이자에게 말린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자는 꽤나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것에 능했다. 그 능력은 단순히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 잠은 좀 자요?
이자는 항상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겁이 많은 건지, 말하는 연습이 필요한 건지 혹은 정말로 울어버릴 작정이었는지. 의사는 불면증이 있었다. 그리고 이날은 유독 잠을 더 설친 날이었다. 살짝 젖혀 놓은 창으로 초여름 바람이 훅- 의사의 늘어진 머리칼을 흔들었다. 동시에 동공도 흔들렸다. 의사는 순간 내담자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자신을 모두 들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오늘 잠을 좀 설쳤네요. 많이 피곤해 보이나요?
의사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자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까만 저널 수첩을 꺼냈다. 하다 하다 내 대사를 받아적어 분석하려는 건가 싶어 의사의 기분이 삭힌 홍어처럼 나쁜 냄새를 풍기려 할 때, 내담자가 손바닥이 보이게 펼쳐 의사 앞에 내밀었다. 빈손바닥이 아니었다. 반듯하게 코팅된 네잎클로버가 있었다.
- 항상 선생님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봄의 향기와 여름의 초록과 가을의 축축함과 겨울의 짙은 한숨이 어울린다고. 1년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더는 얘기하러 오지 않으려고요. 잠은 잘 자야 해요. 곧 봄이 끝날 텐데, 그래도 이불은 꼭 덮고 자세요. 그게 안정감을 준대요. 바나나는 꾸준히 먹고 있어요. 이 수첩은, 너무 작은데 그래서 작은 하루를 쓰기 좋아요. 선생님 앞에서 다 쏟아낸 얘기를 간략하게 수첩에 적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27개의 글이 빼곡한 수첩이 생겼어요. 악필이었는데 그래서 글 쓰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말하는 일에도 글 쓰는 일에도 가슴이 울렁이는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어요. 타인의 이야기도 잘 들어줘요. 흡수력 좋은 스펀지가 된 것 같아요.
또 빛을 보는 일이 즐거워졌어요. 비 오는 날 외출하는 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제 막 자연에 적응한 올리브 나무 같아요. 하필이면 꽃가루가 지독했던 날에 만나 이렇게 화창한 날에 안녕하려 해요. 마지막이라도 아름다웠음 하거든요. 집에 가는 버스에서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ost 전곡을 들으려고요. 아 물론 올여름에도 드라마 정주행은 할 겁니다. 선생님도 보셔서 아시잖아요, 아픈 드라마라는 거.
아직 낯선 상황이 닥치면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 공간이 울렁거리면서 그냥 당장이라도 땅이 내핵까지 꺼져버렸음 싶은데 견뎌내면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져요. 이겨냈나? 아닌가? 이대로 살아도 될까? 선생님은 그러셨죠. 아주 싱싱하고 생기 있는 네잎클로버를 떠올리라고. 냄새도 생김새도 다양한 저 인간들 품에 있는 네잎클로버를 상상하면서 미소 지으라고.
선생님께 진짜 네잎클로버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아쉽게도 제가 찾은 건 아니고 지하상가에서 유명하신 할아버지께 사 온 거지만요. 생각보다 있잖아요, 파안대소보다 구김 없는 가벼운 미소가 더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게 참 잘 어울리셨습니다. 성별이 다른 제가 닮고 싶을 만큼요.
내담자는 네잎클로버를 담아온 저널 수첩을 상담의에게 선물이라며 주고 떠났다. 아직 상담 기간이 남았음에도 홀연히 자리를 비운 것을 보니 스스로 정해둔 기준이 있었으리라 의사는 생각했다. 수첩은 일기로 가득했다. 보통의 일기와 다른 점은 날짜가 가장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편지처럼.
*파안대소 :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