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유기

목도하다를 정의하는 법

by 에디터 Rii


죽었대요, 그 사람들.

글쎄, 정말?

저들이 그 사람들이에요?

아닐 거예요! 그럴 리가! 말도 안 돼요!

그 신혼부부? 저렇게 생겼군요.

정말인가요?


우르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광장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가운데엔 커다란 수족관이 있었다. 그 안에는 물고기도 인어도 없지만 박제된 남녀의 시신은 있었다. 충격적인 현장을 목도한 자들은 제각각 사건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떠드는 사람들. 핸드폰을 켜고 빠르게 타자치는 사람들. 놀란 얼굴로 굳어버린 사람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그럼 우리 돈은요?


안 씨는 영화 속 소란이 마치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웅성거림이 잦아들 때쯤 맥주 캔을 쥐었다. 묵직할 줄 알았는데 가볍게 들린 맥주에 안 씨는 의아했다. 이런 속도라면 영화를 보는 110분 동안 11캔은 마실 수 있겠다 생각하며 다음 캔의 입구를 티슈로 닦고 대사에 집중했다.


보라색 여성 : 죽을만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으시던데. 적당함을 모르던 사람들이었잖아요. 죽어 마땅한 타이밍이었어요. 애도는 해드리겠지만 제 진심은 홍시 정도예요. 무르고 떫은 시늉일 테니까요. 다들 입은 피해를 생각해 보세요. 어마어마하지 않았나요? 전 제 돈 돌려받을 수만 있다면 백 번이고 죽였을 거예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죽인 사람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거라고 장담해요. 이 기회에 뭉쳐야 하지 않을까요? 강력하게 몰아붙여서 그 가족들에게 우리 돈을 돌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피해자들이 여기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참지 않을 거예요. 박제당한 수치를 넘어서 저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예요.


사람들은 동요했다. 신혼부부가 그 정도로 나쁜 사람들이었나, 죽은 자들을 다시 심판대에 올렸다. [보라색 여성]은 영화 내내 꾸준한 혐오를 드러냈다. 그녀는 모두를 제물로 바라봤다. 비속어도 쉽게 뱉었다. 그런데 왜 보라색일까.

안 씨는 색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그 특성에 맞는 색으로 보였다. 연기하는 캐릭터의 색을 띤다는 얘기다. 그러나 보라색 여성은 캐릭터와 맞지 않는 애매한 색을 보였다. 안 씨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뒤 화면 속 여성의 색채에 집중했다. 까칠한 초록색도 띄면서 상냥한 노란색도 훑었다가 배려가 많은 주황색을 거쳐 열정적인 빨강과 방금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파란색이 짙어지기도 했다.


안 씨는 보라색 여성의 연기에 몰입했다.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이겠거니, 언젠가 저 여성의 놀랄 만한 심연의 사연이 드러나겠거니. 안 씨의 기대와 다르게 영화는 반전 없이 흘러갔다. 보라색 여성은 결국 자신이 쥐고 있다 자신했던 심판대에 올랐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자업자득.

박제당한 보라색 여성을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잘못된 정의감을 표출하던 여성은 박제 당한 뒤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불쾌한 검은색이었다. 악취도 나는 듯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검은색은 손목을 넘어섰다.


“어라.”

안 씨는 혼란스러웠다. 보라색 여성이 마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고통이 냄새로 풍겼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는 좀비 영화를 보면서도, 심지어 실제 죽은 사람을 목격했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기름과 짠 바닷물이 섞인 머리 아픈 냄새였다. 안 씨는 여성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확신했다. 누구든 자신을 알아채달라는 몸부림을 치는 중이라고.


안 씨는 무작정 밖으로 뛰었다. 그전에 김이 다 빠진 맥주를 단숨에 마셨다. 안 씨는 김이 빠진 맥주에 취한 건지 여성을 구하러 달려 나온 자신에 취한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에 맞춰 발을 굴렸다. 그냥 이 길로 달리면 그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온통 그늘진 싸늘한 공원에 들어서자 악취가 더 짙어졌다. 바닥엔 축축한 검은 이물질이 퍼져있었다. 안 씨는 심호흡하며 이물질을 따라 걸었다. 고개를 들자 반쯤 검은색이 돼 버린 여성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팔을 뻗은 안 씨는 재빠르게 손을 말아 넣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냄새나는 그녀 곁을 지켰다. 끈적이는 검은 물질을 버티고 서 있었다. 안 씨는 당장이라도 구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여성이 빠르게 검은색에 잡아먹힐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았다.


슬슬 해가 졌다. 안 씨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둘렀다. “이제 추워요. 거절하지 마세요. 2시간 동안 그쪽 옆에 있었던 자격으로 이러는 거니까.” 목 끝까지 검정으로 물든 여성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안 씨는 여성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 순간 주위에 반짝이는 것이 생겨났다. 그녀의 눈동자에도 빛이 일렁였다. 도심에서 유기됐던 반디들이 주위로 모여든 것이었다. 여성의 몸에서 검은색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헛구역질을 불러내던 악취도 희미해졌다. 바닥에 빈틈없이 차지하던 이물질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반딧불은 더욱 반짝이며 기세를 떨쳤다.


안 씨는 낮게 감탄했다. 시선이 여성을 벗어나 엄청난 수의 반딧불로 향했다.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이제 여성에게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어떠한 색도 띠지 않았다. 반딧불들처럼 빛날 뿐이었다. 오묘했다. 그녀는 오로라처럼 금세 사라질 것 같았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다가갈 수 없이 뜨거운 태양열 같았다가 총명한 꼬마전구 같았다.


엄청난 수의 반디들은 그녀의 눈동자를 따라 빛을 조절했다. 이윽고 안 씨와 여성의 눈이 마주치자 조업을 나간 오징어잡이 배처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추위도 잊었다. 안 씨는 이 반디들이, 이 여성이 다시는 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이들은 금쪽같은 지금을 박제해 굴절되지 않은 영원한 빛을 누리며 살 것이다.





*목도하다 : 눈으로 직접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