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4장 하늘의 시민권-정치 너머 행복의 나라

(복음과 정치의 변화)

by 향상

하늘의 시민권 - 우리 충성의 최종 주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


시민권이 바뀌면 충성의 대상이 바뀐다

정치는 국민을 향해 충성을 요구한다.

그것이 국가라는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권위 체계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는 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너는 어느 국가에 소속된 사람인가?" 바울은 유대인이며 동시에 로마 시민권자였다.

그는 법을 알았고, 제도를 적당히 활용하고, 정치와 권력의 언어를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주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발 딛고 선 삶의 현장과

그 자신의 소속에 대한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울에게 깊은 갈등을 던져줌과 동시에,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환희와 소망이 되었다.


'시민권'이라는 단어의 무게 — 원어로 본 의미

빌립보서 3:20의 '시민권'은 헬라어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서 소속과 정체성과 권리와 의무의 총합을 의미하다.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 도시였다.

도시는 마케도니아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로마법으로 살았고 로마의 질서를 따랐다.

바울은 이 구조를 정확히 활용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을 설득한다.

"너희가 땅에서는 로마 시민처럼 살 수 있듯,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 살지만 다른 나라의 질서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울이 딛고 선 나라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산다는 것 — 순례자의 정치

성경은 신앙인을 '국경 없는 개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동시에 '이 땅에 완전히 동화된 시민'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성경이 택한 단어는 나그네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행인이라." (벧전 2:11)

나그네는 책임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정착지가 아니기에 더 조심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성경이 지지하는 신앙인의 정치적 위치다.
참여하되, 종속되지 않는다.

그것이 흔들리면 되려 커다란 혼란과 문제가 야기된다.


예화) 우리가 잘 아는 가수 유승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민권(legal status)"과 "삶의 자리(relationship, belonging)"가 충돌할 때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며 큰 사랑을 받던 가수였다.

미국 시민권자 인 그는 자주 공적으로 한국 군대 입대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군 복무를 할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입대를 앞둔 그의 최종 선택 국적은 미국시민권이었다.

이것으로 그는 그 길었던 기대의 종지부를 찍고 병역의 의무를 피해 갔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결국 법적으로 가능한 권리 행사를 한 것이지만

사회적 신뢰와 소속감이 무너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입국 금지 조치했고, 여론의 뭇매는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그의 활동 무대였던 한국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국이 되어 버렸다.

지금의 그의 힘겨운 싸움은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예수의 나라 — 보이지 않으나 가장 실제적인 통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이 말은 정치적 무관심 또는 사회적 소외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의 근원이 다르다는 실제를 말하고는 것이다.

세상의 나라는 힘으로 유지되고, 경계로 구분되며, 문화로 결속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와 사랑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예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이었다.


순교자들은 왜 정치적이었는가?

역사 속 순교자들은 정치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를 최종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 세례 요한은 권력의 도덕적 한계를 이야기했다.

- 본회퍼는 국가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거부했다

- 마틴 루터 킹은 법을 넘어선 양심의 회복을 호소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시민으로 살았다.

그래서 권력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고, 증오로 싸우지 않았으며, 끝내 폭력이 아닌 희망을 남겼다.


오늘의 정치 불안 속에서 — 우리는 어디에 발을 둘 것인가?

오늘 우리는 정치의 출렁임을 피부로 느낀다.

법조, 경제, 외교, 안보—모든 영역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양 극단의 정치에 선량한 사람들이 멱살 잡혀 살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삶의 영역에 정치가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불안은 커지고, 확실한 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너의 발은 이미 다른 나라에 속하여 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정치는 우상이 되고, 이념이 구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 반대편은 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잃을 때 땅의 정치의 과부하에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혼란과 충돌에 부딪힌다.


신앙인의 정치적 태도 — 충성의 서열

성경은 신앙인에게 정치적 침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성의 대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한다.

국가는 헌신의 대상이지만,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다

이 서열이 무너지지 않을 때 신앙인은 정치 속에서도 한 없이 자유롭다.


끝으로 — 흔들리지 않는 나라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히 12:28)

정치는 흔들린다.
나라는 변한다.
제도는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미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상속받은 하늘의 시민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다하여 절망을 넘어선 견딤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다.

그 경계와 한계성 속에서 하늘의 시민으로 충성되이 살아가는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묵상

오늘도 나는
어느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어느 나라의 방식으로 분노하며,
어느 나라의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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