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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May 04. 2022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1.왜 사냐건 웃지요!

-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

전도서 3장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도다


오늘 어떻게 사셨는지?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을 되새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셨어요?라고 질문하면 고수의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성숙한 어른처럼 삶의 원리를 터득한 듯 그렇게 답변하면 참 좋으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세월의 누적 속에 살아도 좀처럼 인생에 대해서 더 나은 답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머리에 살구꽃이 피는 백발의 시기를 맞으면 젊은이들이 선뜻 받아들일 해답을 손에 쥐면 얼마나 좋을까? 그 끝도 없는 방황 앞에 서 있는 청춘의 아픔을 덜어 주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답답할 노릇을 지속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래를 준비하는 이것. 



그 속에서 꾀를 내어 발견한 답변이 있다. 웃으면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빙그레 웃는다. 그렇게 웃으면 고수처럼 보일 것을 안다.
달관한 모습으로 웃으면 질문자는 뭔가 해답이 있는 듯 안달하며
"왜 웃어요 말해 보세요" 그렇게 다그친다.. 실상은 별것이 없다. 김상용 시인의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시를 보면서 나는 시인의 마음도 공감하고 왜 그가 그렇게 웃는지 알 듯 했다.



어떻게 매일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나 분주하고 그리고 예상치 못한 그림의 퍼즐들이 즐비하다. 맞추고 맞추어도 희미한 모습의 그림은 딱히... 형체를 알 수 없고 가끔은 예측해 내기도 어렵다. 다만 희망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그림의 조각들이 자기 몫을 다하고 선명한 하나의 형체를 드러내는 그것이다.  그때야 우리는 알게 된다. "나의 불안은 곧 나의 조급함 에서 온 것임"을 


조급하지 말자.. 그저 오늘에 헌신하고 살아가자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면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면 새들의 노래를 공으로 듣는 시간도 찾아온다. 작고 푸르던 잎사귀 그 정체를 알 수 없던 떡잎이 옥수수가 되어 익어 가는 모습도 보게 된다. 


매일의 일상 그 자체를 삶의 의미로 세기고 그런 단순한 일상을 반복적인 일상을 삶의 가치로 여기면 불현듯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결실이 다가올지도 예측 가능한 날이 서서히 찾아온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건대 조급하지 말자.. 우리에겐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1924년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말로리가 원정전에 필라델피아의 강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한 내용처럼 

우리 이렇게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은 어떻까?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


그렇게 산을 정복하게 된다. 김상용 시인처럼 그렇게 남으로 창을 내는 날이 찾아온다. 가벼운 웃음으로 고된 삶을 노래하자. 그저 단순한 언어와 편안한 호흡을 잃어버리지 말자. 


나에게 공감하고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공감하자 그러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생을 정복하는 일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면 다만 그 하루를 잘 살자. 한걸음 앞만 보고 걸어간다면 절대 넘어 지지도 않고 그리고 호흡의 모자람도 시간의 부족함도 없다. 


어느 날 눈 위에 발자국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처럼 그 한걸음이  우리 인생이 될 그때가 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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