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거리에는 표지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속도를 내서 달리는 차량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를 본 교통학자 한스 몬더만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왜 자동차들을 속도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그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표지판을 비롯한 조치들이 정작 본질과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생의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그의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정말 어이없어했습니다. 그것은 '쉐어드 스페이스(Shared space)'프로젝트로 불리웠는데 다름이아니라 바로 도로와 보도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문제가 생긴 거리에 차도와 보도의 경계를 없앤다니 !! 충분히 황당하고 무모하다고 불릴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한스의 고집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도입한 이 캠페인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운전자들은 차도와 보도가 없어지자 오히려 주의를 집중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속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사고가 격감했습니다.
차와 사람이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몬더만의 쉐어드 스페이스 운동 이후 사람들은 거리에 훨씬 생기가 넘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보도와 도로의 경계라는 고정관념을 깨자 완전히 다른 해결책이 나온 것입니다.
# 샤인머스켓이라는 포도가 나오기 전에는 정말 단 한 번도 그만한 돈을 주고 포도를 사 먹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1송이에 1만원 가량 하는 가격. 하지만 찾아보니 이 포도는 보통 손길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에 가위질이 최소한 100번 이상 들어가고, 적정 당도 유지를 위해 수시로 알을 솎아 내주어야 함은 물론, 일일이 청색의 봉지까지 씌워주어야 합니다. 이런 고되고 철저한 원칙을 일꾼들이 잘 지키지 않기에 주인장의 손이 일일이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고 덕분에 기존의 포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탁월한 맛으로 샤인 머스켓은 4송이 한 박스에 3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에도 판매량이 1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언젠가 샤인머스캣과 청포도를 섞어서 내놓았더니 귀신처럼 샤인 머스캣만 없어졌던 사건이 떠오르네요. 샤인머스캣은 포도는 껍질을 빼고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껍질째 먹는 과육의 식감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개척한 사례입니다. 2006년 이 품종이 일본에서 등록되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배 재배면적 23% 감소, 밀감은 16% 감소하는 등 모든 일본 과일들의 재배면적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포도 시장만을 건재하도록 방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은 2011년에서 2015년까지 2.6배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제 과잉재배 우려가 나올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재배 농민들은 아직 멀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450g 한 송이에 8만 원이 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끝을 넘어설 수 있을 때 진정한 혁신은 시작됩니다. 하이엔드 제품은 그런 끝을 넘어서는 순간, 탄성 속에 탄생합니다.
# 자 그렇다면 항공 여행에서 최고의 탑승 경험의 끝은 어디일까요? 싱가포르 에어라인은 프리미엄 스위트 라인 혁신으로 이 경험의 한계를 계속 깨려고 합니다.
이들은 새로운 퍼스트 클래스 '스위트'를 발표하면서 '최고의 프라이빗한 경험'을 고객들에게 선사하는 것을 작정한 듯 보입니다. 850만 싱가폴 달러와 4년의 개발 기간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주요 변화는 12개의 일등석을 6개로 줄인 것입니다. 완전한 개인 공간을 지향하여 화장대까지 두고, 의자는 고정이 아니라 회전이 가능하게 되어있으며 싱글침대를 결합하여 더블 침대로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일어서서 하는 기내 활동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또한 웨지우드 라리크의 식기류와 함께 최고의 기내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합니다. 경쟁사인 아부다비의 에티하드(Etihad) 항공이 '1등급 호텔보다 나은 공간'을 지향하면서 상상 이상의 기준을 놓고 달려 나가자 싱가폴 항공으로서도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인 듯합니다. 보다 나은 기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혁신들이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비행기라는 열악한 공간, 공중이라는 극한의 환경을 넘겠다는 생각에서 접근하니 호텔이라는 지상의 강자보다 더 나은 공간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상상 이상의 도전이 나온 듯합니다.
싱가포르에어라인은 사실 배가 부르고 상황이 좋아서 하이엔드 전략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첫 출범 당시 싱가포르 에어라인의 재정 상황은 '처참하다' 말할 정도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에어웨이에 속해있다 독립을 하면서 홀로서게 되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광휘 총리는 '보조금은 한푼도 생각하지 말라'며 단단히 못을 박았습니다. 국영항공사는 보통 정부가 일정부분 지원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선을 딱 긋자, 싱가포르에어라인은 독자 생존에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런 암담한 처지를 돌파하고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시장 진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고 임직원이 마치 전투라도 치르듯 치열하게 만들어 낸 것이 오늘날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5성급 항공사' 싱가포르 에어라인입니다.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존의 관습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현재 세계 최고의 서비스로 고객감동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쉐어드 프로젝트와 싱가포르항공을 통해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 어떻게 감동을 만들어내는지, 나의 주변에서 오래된 관습처럼 굳어 뛰어넘을 것은 없는 지 다시 한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